“온 세상을 섬기기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2장 14절)

존귀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해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또한 성탄의 기쁨이 이 땅의 55,000교회와 1,200만 성도, 2,500만 북녘 동포들과 해외에 흩어져 있는 모든 한민족 위에 충만하고 한반도를 넘어 온 누리에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온 세상을 섬기기 위해 낮고 천한 곳, 외양간의 말구유에 임하셨습니다. 그 분은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을 먼저 품으셨고, 온 인류를 위해 친히 자신을 희생하셔서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이신 ‘임마누엘’의 주님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완전한 인간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것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았고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었으며 사람들의 흠모를 받을 만큼 아름답지도 못했습니다(사 53:2).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류의 허물과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단 한 번의 영원한 속죄 제사의 제물이 되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 권세의 옷을 입지 않으시고 오직 인류 구원을 위한 사랑, 희생, 섬김, 나눔의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 모습은 화려하지도 부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삶은 자기를 비우는 삶이요, 한없이 낮아지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헌신적인 희생, 지극히 낮아진 섬김, 아낌없는 나눔으로 인해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지친 이들이 참된 위로와 소망과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한국교회에 원하시는 모습은 화려함과 부요함의 모습이 아닙니다. 절망과 고통의 골짜기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웃들을 향해 나아가는 겸손과 섬김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그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지고 가는 헌신과 희생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작은 예수’가 되어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갈 때만이 세상도 우리가 전하는 성탄의 기쁜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열어 주신 길은 화해의 길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소통 뿐 아니라 화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대화 뿐 아니라 평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동서, 좌우, 노사, 빈부, 노소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갈등했던 이유는 소통과 서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대화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식어지고, 화해와 평화를 찾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참된 화해와 평화를 얻는 길이 곧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길 되신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한국 기독교와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모든 교회들과 기독 단체들이 하나 되고 연합해야 합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이 온 누리에 퍼지는 이때에 우리 한국 기독교와 교회가 예수님을 닮은 사랑, 희생, 섬김, 나눔의 모습으로 하나가 된다면, 아기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이 땅에는 하늘의 평화가 가득 넘치게 될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4 성탄절 메시지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양병희 목사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복된 성탄절에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구원의 선물이며 성탄절은 이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야말로 이 땅에 사는 모든 인류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속한 온갖 질고와 시련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기아와 질병, 테러와 전쟁, 반인륜적 범죄, 경제적 불평등의 굴레에서 인류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인류의 희망과 구원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탄생이 부자들의 놀이문화로 전락하고 그 그늘에서 들리는 절규에는 귀를 막고 있는 것이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모두에게 비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낮은 데로 임하신 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비워가며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의 목숨을 비워 나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권력을 누리며 호의호식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가난하게 되며, 가진 것을 나눠 구제에 힘쓰고,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는 것이 참된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 많은 이유 중에,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누는 데는 인색하다는 평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온 기독교적 구제와 봉사의 정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항변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바르게 실천했는지 반성하고 뒤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교회가 이웃과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을 많이 하고 있음에도 비판적인 평가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주님의 모습을 닮기보다 자기들만의 축제라고 생각하는 곱지 않은 일부의 시선과 질책까지라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합니다. 특히 성직자들은 일반 성도들보다 더욱 엄격한 잣대로 평가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고 더욱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내 모든 것을 드려 사랑을 나눌 때 비로소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탄절은 이제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친숙한 절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탄절만큼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신 뜻과 목적이 아무 거리낌 없이 훼손되고 왜곡되는 날도 없을 것입니다.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캐롤과 화려한 성탄트리로 치장된 이날은 사람들의 축제일이 아닌, 하나님이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생명의 구원을 선포하신 날이라는 것을 기독교인들부터 바르게 인식하고 절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주님이 2천 년 전 우리에게 오셨던 그날처럼 여전히 죄악과 대립, 갈등에 휩싸여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오늘 우리 사회에는 화해와 위로, 치유의 따뜻한 손길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작은 자들, 병들고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가슴으로 품고 가진 것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임을 깨닫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평화가 온 땅에 충만하기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누가복음 1장 51~53절)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만물과 더불어 우리 모두 크게 기뻐합니다. 또한 그분의 평화가 온 땅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아기 예수는 평화의 구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 가운데 평화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평화는 사랑의 평화이고, 낮은 자들의 평화이며, 자신을 희생하는 평화입니다. 그분의 평화는 힘 있는 자들의 평화와 다른 평화였습니다. 그분의 평화는 무력으로 세운 로마의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대로, 광야 같고 사막 같은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평화의 길을 여십니다. 낮은 곳은 메워 높이고, 높은 곳은 깎아서 평탄한 큰 길을 내십니다. 이 땅에 교만한 곳도 비천한 곳도 없이 만드십니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서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오래 전 이사야가 전한 말씀의 뜻을 다시금 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 예수를 통하여,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시고,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며,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십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평화는 정의를 세우는 평화입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권력 있는 자들을 내리시며, 가난한 사람들을 풍족하게 하시고 부를 넘치게 누리는 자들의 손을 비우심으로써 이루는 평화입니다. 그분의 평화는 불의를 물리치고 불평등을 시정하여 모두가 화해하게 하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평화는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써 이루는 평화입니다. 아기 예수는 갈등과 분열, 억압과 살육이 자행되는 바로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고통과 슬픔, 절망과 눈물이 넘치는 이 땅 한가운데 오십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싸안고 그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평화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고 슬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평화입니다. 그분의 평화는 끝내 생명을 품어 살리는 평화입니다. 자신의 가슴을 찢어 우리의 눈물을 그치게 하고, 스스로의 몸을 찢어 우리를 살리는 평화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은 그분의 평화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2014년 한 해, 이 나라에는 결코 역사책에 기록으로만 남겨놓을 수 없는, 지금도 사람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하는 슬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가족들과 어린 자식들을 떼로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의 눈물과 분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과 탄식,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로 삶의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고통과 비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짓밟히는 사람들의 신음과 아우성, 군대에 보낸 자식의 주검 앞에 선 부모들의 분노와 통곡 등, 이 한 해는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슬픔과 분노와 절망과 아우성과 갈등이 넘쳐났습니다.

이런 절망과 슬픔 가운데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이 큰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또한 이 땅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고 모든 슬픔과 눈물이 마르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강력한 천상의 힘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연약한 아기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손에 안기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평화는 우리의 참여와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아기 예수는 우리에게 안겨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감싼 포대기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누인 구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됩니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그분의 평화를 널리 알리는 나팔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평화를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슬픈 이들과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아멘.

 

즐거운 성탄, Merry Christmas!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황수원 목사

2014년 성탄의 기쁨이 대한민국과 온 누리에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성탄의 기쁨이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는 이유는

첫째, 예수님의 탄생은 철저한 희생적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화려하고 좋은 집에 오시지 않고, 냄새나고 추운 외양간 말구유에서 탄생하신 것은 하나님의 희생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떡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먹어 구원에 이르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몸까지 다 주신 예수님의 희생의 의미를 확인하고 우리도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하여 잘살고 많은 것을 누리고 살게 되었지만 우리 민족의 특유의 ‘우리의식’ 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을 가지고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부가 갈라지고, 부모 자식간에 갈등하고, 교회안에서 사회안에서 하나되지 못하는 많은 아픔이 있습니다.

이 때에 성탄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희생의 사랑을 가정에서 사회에서 실천하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북한 동포들을 품에 앉을 수 있는 힘이 될 것이고 그것이 통일의 길이 될 것입니다.

둘째,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A.D.와 B.C.의 중심에 있는 예수님의 탄생은 새 시대의 빛이 되셨습니다. 어둡던 이 땅도 예수님이 빛으로 오심으로 어두움을 벗고 밝은 대한민국으로 세계 속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 귀하신 예수님이 어두운 외양간에 임하셔서 어두움을 밝히고 빛의 희망이 되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불안과 두려움과 우울의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이웃에게 밝은 빛의 자유를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어두움의 북녘 땅에 성탄의 빛으로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수 있도록 우리 장로교인들이 기도와 뜻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다가오는 2015년에는 대한민국 광복 70주년을 맞게 됩니다. 성경의 남유다가 바벨론 포로 70년 만에 자유를 얻게 되어 조국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이, 우리 대한민국도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1945년에 자유를 찾은 듯 했지만 다시 북쪽에 공산주의가 자리를 잡고 세월이 흘러, 이제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 됩니다. 남북의 통일된 그 날이 온전한 한국의 광복이라고 볼 때, 우리 장로교인들이 사랑으로 통일을 준비하여 이루어야 할 사명을 다시 확인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실천하는 성탄절이 될 때에 성탄의 기쁨은 더하여 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난한 자들에게, 억압된 자들에게, 병든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눕시다. 우리 국민의 평안을 위하여 불철주야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60만 국군장병들에게, 그리고 주님의 복음을 가지고 세계 곳곳에 나가 예수님을 전하는 25,000여명의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또한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저 낮은 곳을 향하여
미래목회포럼 대표 이윤재 목사

2014년 성탄절을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지평을 넘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성탄의 의미를 또 다시 깊이 새겨 보아야 합니다. 도대체 왜 예수님의 오심이 기쁘고 복된 소식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주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우리 시대상황에서 깊이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재확인하였으면 합니다.

우리는 성탄을 맞을 때마다 교회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 가정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 한국에 오실 예수님은 서울역의 노숙자로, 거리의 나사로로, 죄수의 옷을 입고, 아니면 병자의 옷을 입고 오실지 모릅니다. 크리스마스 잔치에 정신없이 바쁘다 보면 그를 문 앞에서 쫓아낼지도 모릅니다. 성탄절은 마음으로 반기고 행동으로 뜨겁게 맞이하는 계절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뜨겁게 사모하는 그분을 친근하게 만나려는 모든 ‘예수 따르미’들로 인하여 한국교회가 더욱 빛을 발하고 소금이 되어 사회와 역사를 더욱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성탄의 축복이 온 누리에
2017종교개혁500주년성령대회 대표대회장 소강석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주셨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 마구간의 초라한 구유를 통해 예수님은 소외되고 거절당한 자들의 낮고 낮은 삶 깊숙이 찾아오셨습니다.

고요하고 거룩한 그 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낮고 천한 우리들을 어루만지시며 위로하시는 사랑의 손길을 친히 보여 주셨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보호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하나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분단과 분열로 하나 되지 못한 이 민족과 전쟁의 상처로 고통 받는 곳에도 성탄의 기쁜 소식이 울려 퍼져 미움과 상처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듬어 안고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성탄의 기쁨과 축복이 온 누리에 함께 하는 2014년 성탄절이 되길 소망합니다.

 

암울한 세상을 밝히고 소망을 주고 섬기는 교회가 되자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 대표 김영한 박사

성탄절은 아기 예수님이 하늘 보좌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날이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가운데 평화로다.’ 성탄의 빛은 제멋대로 헝클어진 무신론의 세상을 향하여 비치고 있다. 욕심에 가득 찬 세상을 향하여 비친다. 이 빛은 허물 많은 모습을 나무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새 희망을 심는다. 이 빛은 더럽고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땅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구속자 하나님의 다함없는 지혜·겸허·사랑을 찬란히 빛내고 있다. 샬롬나비행동은 세상을 구원하시고 온 누리를 밝히는 빛이신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성탄절의 의미를 다음같이 천명한다.

1. 성탄절은 절망에 빠진 우리 사회에 희망을 준다.
아기 예수의 영광스러운 빛은 절망에 빠진 우리 사회에 희망을 준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 보편 가치에 바탕을 둔 도덕성과 사회 기본 질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욕의 정치가는 본연의 임무를 잊은 채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탐욕의 기업가는 공정치 못한 기업 활동을 하며, 불법의 사람들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삐뚤어진 차별 의식이 부당한 갑을관계의 폐단에 이르게 하고, 극심한 양극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권이 위협받는다. 특히 올해 일어난 세월호 침몰 참사, 구원파 교주의 탐욕, 판교 공연장 붕괴 사고, 오룡호 침몰, 엽기적 살인 등과 같은 끔직한 사건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아울러 어이없는 국가와 공공 기관의 무사안일주의와 적폐 및 비정상적인 관행들은 사람들이 분노하게 한다. 이러한 안전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 현실에서 사람들은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을 나타내 보이기까지 한다.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섬기는 종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빛은 이러한 절망에 빠진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시면서 이기주의와, 항상 갑의 자리에 있는 가진 자들의 특권의식, 약자에 대한 수탈과 사회구조적인 무책임이 부당하며, 무의미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2. 성탄절은 우리 사회와 인류에게 평화를 주신다.
아기 예수는 갈등과 전쟁 속에 불안해하는 인류에게 평화를 주신다. 이 평화는 개인의 영적이고 내면적인 삶에 머물지 않고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까지 이른다. 아기 예수는 그 모든 분야를 주로서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 평화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화해하는 것이다(롬 14:19). 또한 그것은 인류가 창조물과 화목을 이루는 것에까지 미친다(골 1:20).

아기 예수가 주시는 평화는 정치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새로운 인류’가 됨으로써 실현된다. 그것은 폭력에 의해 입은 상처를 고치는 것이다. 또한 그 평화는 공동체가 일상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평화는 언제나 정의와 함께한다. 정의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몫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법이 정의 구현에 필요하나 궁극적인 정의는 오직 자기 희생의 사랑을 통해서 성취된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이 잠간 위임받는 것임을 각성하고 약자와 소외된 자를 섬기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3. 성탄절은 한국교회가 착한 행실로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몫을 하도록 독려한다.
아기 예수의 거룩한 빛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몫을 하도록 독려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신뢰도가 5점 가운데 2.62점에 그쳐 보통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부끄러운 결과는 그동안 예수 믿는 사람과 공동체가 도덕적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는 한국교회가 착한 행실을 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신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삶은 윤리와 도덕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의 대상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다. 모두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믿음의 활동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모든 영역을 주로서 다스린다. 따라서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분야는 믿음을 실천하는 자리다.

4. 한국교회는 세상에 본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 안에서 한국교회와 사회는 희망을 갖는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미래가 잘될 것이라 여겨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된 것이 현실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삶의 자세다. 그것은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여 사람들이 아기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의 다스림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약하고 소외된 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의로운 사회변혁적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교회가 평화를 누리는 공동체가 됨으로써 세상에 본을 보여 주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을 다짐하는 것이 베들레헴의 어느 작은 집 말구유에 만왕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는 참된 뜻이다.

5. 한국교회는 자기 갱신과 낮춤과 섬김과 희생의 태도로써 우리 사회를 비추는 등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성탄에 오신 아기 예수는 정의와 평화의 빛으로 암울한 세상을 비추고 계신다. 그는 자기를 낮추시고 인간을 섬기기 위하여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이 되기 위하여 오신 참 빛이시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은 참 목자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빛을 바르게 비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마구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의 낮아지심를 배우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권력쟁탈과 명예추구에 치중하고 양들을 진정으로 돌보는데 소홀한 것을 진심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이 성탄절에 암울한 세상을 비추는 빛, 부패를 막는 소금, 절망을 삼키는 희망, 증오를 태우는 사랑, 불화를 없애는 화목(和睦)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