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신 6:8)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라고 한 것은, 자녀교육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다. 물론 부모 자신들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모범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말씀을 매고 붙여야 하는 손목과 미간은, 신체 부위 가운데 중요한 두 기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네 손목’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단수(your hand)이므로, 한 쪽 손목만을 의미한다.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말씀을 매는 곳은 왼쪽 손목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오른편 손이 ‘힘’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곧 말씀이 참된 ‘힘’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반대편인 왼쪽 손목에 매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호’로 번역된 히브리어 ‘오트’는 구약 전체에서 79회 나오는데, 그 중 39번이 오경에서 사용되었다. 그 어원은 불확실하지만, 일부 학자는 ‘표시’ ‘징조’들을 의미하는 아카디아어의 ‘이투’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네 미간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원문의 문자적 의미는 ‘눈 사이에’(between your eyes)다. 우가릿 문헌에서는 ‘눈 사이’가 ‘머리’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미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표’로 번역된 ‘토타포트’의 어원적 의미 역시 불확실하다. 단지 ‘떨어뜨리다’ ‘늘어뜨리다’ 등에서 파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학자들은 이 단어가 이집트 왕들의 이마에 부착하는 뱀의 형상을 의미하는 이집트어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라는 명령은, 앞 절들에서 언급된 내용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앞부분의 내용(5-7절)이 하나님께 대한 내적인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면,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으려는 외적인 노력과 의지를 보여준다. ‘손목’과 ‘미간’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의 두 기관이다. ‘손’은 신체적 노동과 관련된다면, 미간으로 표현된 ‘머리’는 지적활동을 의미한다. 전자가 보이는 활동이라면, 후자는 보이지 않는 활동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강조가 담겨 있다.

하나님 말씀을 신체 부위에 ‘매라’는 명령은, 잠언과 같은 지혜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한다(잠 3:3; 6:21; 7:3). 그런데 잠언에서는 문자적으로 맨다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선생의 가르침을 늘 지니고 다니며 지킨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출애굽기 13장 9절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도 문자적으로보다는 출애굽과 관련된 유월절 의식을 항상 준수해야 함을 강조하는 비유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 절 내용을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주장의 근거로는 고대 사회에서 흔하게 시행되었던, 신체 부위에 문신을 하거나 부적을 지니고 다니는 관습을 들기도 한다. 또한 고대 사회에서 이마에 특별한 표시를 새긴 띠를 부착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종교적 관습이었다. 이마에 띠를 부착하는 것은 자신이 섬기는 신을 항상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관습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긴, 금으로 장식된 관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출 28:36-38). 고대 이스라엘에서 성경 내용을 새긴 패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관습이 있었음은, 최근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주전 6-7세기경의 은장색 패를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그 패에는 민수기 6장 24-26절의 제사장 축도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한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실을 꿰어 몸에 맬 수 있게 되어 있다.

신약시대를 포함한 제2성전 시기 말에는 ‘쉐마’ 신앙고백문을 써 붙이는 ‘테필린’ 관습으로 발전하였다. ‘테필린’은 ‘기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다. 그러나 이 명칭은 ‘손’과 ‘미간’이 언급되어 있는 성경의 네 구절(출 13:1-10, 11-16; 신 6:4-9; 11:13-21)이 기록된 양피지를 담아 넣은 사각형 모양의 작은 가죽상자를 지칭한다.

테필린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왼쪽 손에 매는 것과 머리에 매는 것이다. 쿰란에서 발견된 ‘테필린’에는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쿰란에서 발견된 ‘테필린’은 넓이가 2cm 정도인데, 그것이 점차 넓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면서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마 23:5)라고 하신 것이 그것과 관련된 내용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