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오늘은 김구 선생의 경우를 살펴본다. 선생께서는 구한말 일본인을 죽인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 감방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옥중에서 전도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 후 주위 사람들의 권고와 도움으로 탈옥을 하여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선생은 중국 망명생활 중에서도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지켜 나갔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이래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주석 자격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후 선생이 거하시던 집을 경교장이라 하였다. 선생은 경교장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부터 안두희에게 암살당하던 날 새벽까지 하루도 새벽기도회를 빠뜨리지 아니하였다. 새벽 6시면 꼭 기도회를 열고나서 국사에 임하곤 하였다.

1945년 11월 초순경 선생께서 대중 앞에서 강연한 강연 내용 전문이 김구 전집에 실려 있다. 나의 서재에는 12권으로 된 김구전집이 꽂혀 있다. 나는 수시로 전집 중 한 권을 뽑아 읽으며 선생의 애국애족하시던 정신을 접하곤 한다. 요즘 이 나라의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그런 글을 꼭 읽혀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조상 선배들이 민족의 수난기에 무엇을 고민하며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하여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요즘처럼 그냥 영어 토플 점수만 많이 받으면 다 되는 것처럼 젊은이들을 길러서는 겨레의 장래가 없다.

1945년 11월 선생께서 대중 앞에서 강연하신 글 중에 다음 같은 부분이 있다.

“동포 여러분, 이제 세워질 새 나라 대한민국은 기독교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새 나라에는 경찰서 10개 세우는 것보다 예배당 하나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나는 이런 부분을 읽을 때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승만 박사가 그러하였듯이 김구 선생 역시 겨레사랑과 하나님 사랑, 동포 사랑과 예수 사랑을 한 가슴에, 한 비전으로 품으셨다. 우리는 선배들의 이런 신앙, 그리고 인격과 비전을 이어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냥 자기가 속한 교회 울타리에만 매여 겨레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교회의 장래에 대한 꿈을 잃은 채 교회 안에만 머무르고 있다. 우리들이 그런 소인배의 근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교회와 겨레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겨레의 미래를 생각하여 통일한국 시대를 꿈꾸고 민족 복음화와 예수 아시아 시대를 꿈꾼다면, 당연히 선배들의 그런 신앙과 애국정신을 이어 나가야 한다.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함께 꾸는 꿈은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