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강도사님(시광교회)이 ‘책 본문을 끝까지 꼼꼼하게 정독한 후’ 쓰는 ‘슬로유 리뷰’, 그 두 번째 선정 도서는 새물결플러스의 <성경 연구를 위한 손안의 서재>입니다.

상세정보 

성경 연구를 위한 손안의 서재

데이비드 R. 바우어 | 새물결플러스 | 594쪽 | 25,000원

목회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어야 하기에 신자이고, 주님께서 맡기신 무리들을 목숨을 걸고 섬겨야 하기에 목자이며, 또한 죽을 때까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제반 사항을 다루어야 하기에 학자여야 합니다. 유능한 학자가 되기 위해, 그는 수많은 책들에 대강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필요한 정보가 어느 책에 있는지, 성도들이 성경을 알기 위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아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유능한 목회자는 또한 유능한 기독교 문헌정보학자이기도 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적게는 대여섯 번, 많게는 열 번이 넘는 설교와 성경공부를 소화해야 하는 일선 목회자입니다. 그 중 최소 세 번은 전문적 주해방법론에 입각한 정교한 성경연구를 해야 하며, 이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도구가 필요합니다.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만 해도 원어성경, 본문비평 장치(apparatus), 각종 사전, 지도, 서너 종류 이상의 좋은 주석들 등 열 권이 넘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특히 주석들은), 목회자는 어떤 책이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I. 이 책의 장점

데이비드 R. 바우어가 쓴 <성경 연구를 위한 손안의 서재(Essential Bible Study Tools FOR MINISTRY)>는 이러한 목회자들의 필요에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유익을 얻었습니다.

1. 목회자의 성경 연구에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줌

보통 목회자나 신학생들은 그냥 성경과 주석만 가지고 성경 연구에 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원문주해(개인 번역을 포함한)를 잘 하지 않고, 한글 성경만 가지고 본문을 보다가 주석을 참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자료들이 필요합니다. 주석은 본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줄 수 없고, 그런 주석이 있다 하더라도 보통 다양한 정보를 주는 데 치중한 나머지 주석 본연의 임무인 설교를 돕는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일단 이 책의 차례(p.12-14)를 먼저 살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차례에 ‘무엇이 필요한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언어사전 뿐 아니라 신학사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본문의 편집본이 BHS(구약)와 NA28(신약) 뿐 아니라 다양한 관점의 책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신학과 성경윤리, 특정 주제에 대한 연구(p.425)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당장 참고할 수 있는(또는 해야 하는) 자료의 종류만 해도 방대하다는 알게 되지요. 성경 본문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연구자는 이렇게 참조해야 하는 자료의 방대함에 기가 질리기보다는, 오히려 내 성경 연구를 돕는 자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환호성을 지를 것입니다.

2. 다양한 신학적 전통의 자료를 소개함

저자가 소개하는 자료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학적 전통을 망라합니다. 그는 개신교 복음주의와 비평학계 뿐 아니라 로마가톨릭과 유대교·정교회까지 넘나듭니다. 즉, 성경을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수준 높은 저작 전체를 망라합니다. 특히 제게는 상당히 많은 비평학계와 감리교 계열의 중요한 성경신학적 저작을 많이 알게 해 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습니다.

또한 소개하는 2,200권의 자료 중 700여권의 책에는 저자 자신의 간단한 논평이 실려 있어, 이 책이 어떤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유용한지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책을 신중히 구입하여 이용하려는 독자에게 중요한 참고자료가 됩니다.

3. 국내 번역서의 서지정보 제공으로 인한 유익

이런 종류의 책은 번역된 책들에 대한 한국어 편집자(혹은 역자)의 역주가 없는 경우, 그 효용이 엄청나게 감소되기 마련입니다. 또한 서지정보를 다루는 책이 색인이 없다면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역자와 편집자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국내에 번역된 책인 경우(현재 절판되었더라도) 반드시 서지정보를 수록했고, 색인도 꼼꼼하게 넣었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찾은 인명정보와 해당 페이지가 다른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뜻밖의 수확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Howard I. Marshall이 쓴 NIGTC 누가복음이 국내에 번역된 사실이 있었음을 알게 됐지요(p.463). 상당히 도움이 되는 주석이고 목회자와 학자 모두에게 유익할 책인데, 이미 번역되어 도서관에서라도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II. 아쉬운 점들

1. 주로 소개하는 자료들의 신학적 경향

이것은 아쉬운 점이라기보다는, 이 책의 추천도서가 어떤 일관된 신학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바우어는 비평학에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대부분 강하게 추천하는 책들은(사실 그가 ‘추천’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지만) 성경의 영감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지닌 책들입니다.

저자는 ‘복음주의적 학풍을 반영하는 책들을 추천한다’고 말하지만(p.15), 성경의 영감이나 저자 문제에 있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입장을 취하는 책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드뭅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천재적인 성공회 주교인 Henry Alford의 신약주석에 대하여 “공관복음이 상호 독립적으로 기록되었다는 등 다소 특이한 주장을 한다”고 평가함으로써(p.415), 사실상 교회사 내내 주된 의견으로 제시된, 복음서 저자가 각각 상호 독립적으로 성령의 영감을 받아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주장을 ‘특이한 주장’으로 치부합니다.

2. 소개하는 자료들의 서론적 내용에 치중

특히 주석 소개에서 두드러지는데, 데이비드 바우어는 주석 소개의 대부분을 저자 문제, 통일성, 본문의 형성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는 데 할애합니다. 정작 주석의 저술 특징(주석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꽤나 중요한)과 난해구절 해설에 대한 입장, 주석 저자의 신학적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설교를 위한 주해와 적용에 있어서 각 주석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3.고전 자료 소개의 부족

물론 데이비드 바우어는 서론에서 “주된 관심사는 오늘날의 학계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겠다”고 말하긴 했지만(p.17), ‘고전’ 자료 소개가 거의 없는 것은 이상할 정도입니다. 정교한 주해를 위해서는 최신의 학문적 경향이 반영된 자료들이 좋겠지만, 설교와 성경공부를 위한 인사이트는 고전에서 훨씬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리즈 주석으로는 필립 샤프가 편집한 교부들의 주석인 NPNF를 소개하지만, 각 권별 주석에서 다시 소개되는 일은 없습니다.

종교개혁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갈라디아서 주석을 소개할 때 루터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가 없을 정도입니다. 로마서 주석을 소개할 때도 존 머레이나 찰스 핫지는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특히 16-18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방대한 주석자료들을 거의 전혀 소개되지 않습니다(칼빈 주석을 제외하고).

▲주석들을 소개하는 bestcommentaries.com 홈페이지.

III. 기독교적 문헌정보학의 발전을 기대하며

물론 위에서 언급한 아쉬운 점들이 이 책의 단점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신학적 전통과 자신이 옳고 좋다고 믿는 바의 자료에 대한 소개에 충실했을 테니까요. 단순히 제가 지적한 자료들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혹평을 하기에는, 이 책은 정말 방대한 자료들의 서지정보와 리뷰를 제공합니다. 물론 독자들은 http://bestcommentaries.com/ 이나 키이스 매티슨의 주석리뷰(http://bestcommentaries.com/) 등을 더 참조할 수 있겠지만요.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권별로 주석을 추천해 준 글들을 여러 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범위와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체계적으로 성경 연구를 위한 자료들을 소개하는 책은 드뭅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메타데이터(metadata·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데이터, 즉 여기서는 책의 내용이 아닌 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그것은 목회에 유익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정규 강도사.

따라서 앞으로 이 책을 보완하는 더 좋은 문헌정보에 관한 책이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성경관에 있어 보수적 입장을 지지하는 교회들이 대부분인 한국교회의 현 상태를 감안하면, 더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 신학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저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루는 책들의 종류도 성경신학 뿐 아니라 교리나 교회 역사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면, 목회자들의 책 고르는 안목도 높아지고 강단도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정규 강도사(시광교회, ‘갈라디아서: 통합적 성경공부 시리즈’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