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1927년 7월에 시작된 <성서조선>은 매달 쉼 없이 출간되다, 1942년 3월호에 실린 조와(죽은 개구리를 곡하노라)라는 글로 인해 일제 당국으로부터 폐간당했다. <성서조선>지는 독자라 해 봐야 300명이었다. 월간지라고는 하나, 격식을 갖추어 편집 인쇄된 책이 아니었다. 두께도 얇은 잡지이었거니와 종이의 질이나 제본이나 요즘 기준으로는 책이랄 것도 못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교신 선생은 달마다 정성을 기울여 제작하여 자전거에 싣고 300명의 독자들에게 배달하곤 하였다. 그렇게 볼품없는 책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신앙과 정신에 깊이가 있었다. 지금 읽어도 깊은 예수 사랑과 뜨거운 겨레 사랑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내용이다.

일본 경찰은 <성서조선>지와 책 주위에 모여든 지사들을 눈의 가시처럼 여기다, 드디어 1942년 3월호에 실린 <죽은 개구리를 곡하노라>란 제목의 글을 트집잡아 잡지를 폐간 처분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검거하여 ‘성서조선지 사건’을 일으켰다. 다음은 그 글의 한 부분이다.

조와(弔蛙:죽은 개구리를 애도한다)

작년 늦가을 이래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다. 가느다란 폭포 밑에 … 한 사람이 꿇어앉아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마련해 준 성전 같았다. 이 반석 위에서 기도하다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것은 담 속에서 바위 색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때로는 5-6마리, 때로는 7-8마리.

늦가을도 지나 연못 위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개구리들의 움직임이 날로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을 가리운 후로는 소식이 막힌 지 무릇 수개월!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 얼음덩어리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연못 속을 구부려 찾아보았더니 오호라. 개구리 시체 두어 마리가 연못 꼬리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추위에 작은 연못의 물이 밑바닥까지 얼어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옛날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얼어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1942년 3월, <성서조선>의 마지막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