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4년 12월 7일
본문: 요한복음 5:1~18
설교: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제목: 배려, 사랑의 다른 이름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어느 안식일에 여러 성문 가운데 “양의 문”이라 부르는 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에 가셨습니다(본문 1-2절). 거기에는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본문 3절). 왜냐하면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이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본문 4절). 거기 누워있던 사람들 가운데는 삼십팔 년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본문 5절).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가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본문 6절) 그 병자는 “네 낫기를 원합니다. 낫게 해주십시오.”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안식일을 범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낫기를 원하는 뜻을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본문 7절) 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본문 8절) 그 말씀에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기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본문 9절).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베데스다 못가에서 있었던 일 속에서 예수님의 두 가지 행동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는 베데스다 못가로 가신 것입니다. 베데스다 못가에는 온갖 병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정결법에 예민한 사람들은 가려 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곳에 가신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며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는 안식일에 병자를 낫게 해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식일 범한다는 이유로 비난과 정죄와 박해를 받을 것이 뻔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정결법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한 병자의 고통을 끝내주시려는 배려가 앞섰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베데스다 못가에서 있었던 일 속에서 예수님의 언행과 대비되는 두 무리의 사람들의 언행을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행하신 그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목도한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삼십팔 년 동안이나 앓던 사람이 깨끗이 나아 걸어가는 것을 보고도 기뻐하거나 축하하거나 감사하지는 않고 병 나은 사람에게 말하기를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본문 10절) 한 것입니다. 그가 답하기를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본문 11절) 하자 그들은 그에게 묻기를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본문 12절) 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못 고치는 병을 고친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들은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을 해서 안식일을 범하느냐고 비난하고 정죄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병을 고친 이가 예수님이심을 안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런 일을 행한다고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습니다(본문 15-16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꾸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셨습니다(본문 17절).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는다고 예수님을 아예 죽이려 했습니다(본문 18절). 그들에게는 오랜 세월 고통 가운데 사는 병자에 대한 배려나 그를 불쌍히 여기고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무리는 베데스다 못가에 모여 있던 병자들입니다.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말하기를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했습니다. 거기 모인 병자들이 다 그 나름대로의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불리한 신체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치유경쟁이라 할 수 있는 생존경쟁에서 늘 쓰디쓴 패배와 좌절을 겪으며 무려 삼십팔 년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베데스다 못가에 모여 있었을 병자들의 심리상태를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다 병이나 장애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낫고 싶은 갈망이 말로 다할 수 없이 컸으리라고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다 보니까 그들에게는 다른 병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일 때마다 내가 먼저 들어갈 생각만 했지 우리 중 누가 더 불쌍하고 치유가 더 절실한지를 헤아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삼십팔 년이 되어도 나을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일 서로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알고 그래서 순번을 정해서 그 순서대로 물에 들어가게 함께 도와주었다면 삼십팔 년씩이나 물에 못 들어가서 고통의 세월을 연장하고 있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이에 대한 배려 없음이 자기를 포함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배려는 남을 생각하고 그의 입장에 서서 그를 이해하며 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배려, 그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는 사랑, 그래서 남을 불편하게 하고 부담스럽게 하며 불쾌하게 만드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제 아내가 “카톡”으로 보내준 이야기 하나 소개하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집 며느리가 쓴 시어머니 이야기인데 실화입니다.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는 이 며느리는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전업 주부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습니다. 자연히 여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지 2년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만1년 만에 친정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어머니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 했습니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내일 돈을 융통해 볼 터이니 오늘은 푹 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다음 날, 친정어머니를 입원시키려 친정에 갔지만 그 어머니는 선뜻 나서질 못했습니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몇 개 있으니 4일 후에 입원하자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때 그녀의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은아(그 며느리의 이름입니다), 너 울어? 울지 말고 내일 3시간만 시간 내 다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그녀는 시어머니와의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시어머니는 무작정 한의원으로 며느리를 데려갔습니다. 미리 전화예약을 했는지 원장님은 “간병하셔야 한다고요?” 하고 물으며 맥을 짚어보고 몸에 좋은 약을 한 제 지어주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또 며느리를 백화점에 데려가서 트레이닝복과 간편복 네 벌을 사주었고 선식도 사주었습니다. 솔직히 속으로 좀 답답해하고 있던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고 있지 마라.” 그리고는 봉투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병원비 보태 써라. 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니.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네 남편이 병원비 구해오면 그것도 보태 써.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 유치하고 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싸움 할 때는 꼭 친정으로 돈 들어간 거 한 번씩은 얘기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우리 둘만 알자.” 며느리는 마다했지만 시어머니는 끝끝내 그 봉투를 손에 꼭 쥐어주었습니다. 며느리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시어머니에게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2천만원이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그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치료도 받았지만 이듬 해 봄에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했을 때 남편에게 전화한 그녀는 갑자기 시어머니 생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울면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에 남편보다도 빨리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의식이 없는 친정어머니의 귀에 대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엄마, 작년에 엄마 수술비 어머님이 해주셨어. 엄마 얼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그러나 어머니는 미동도 없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서 친정어머니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며느리와 아들의 결혼사진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 말고 사돈처녀 정은이도 걱정 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요 사돈처녀도 내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줄 게요.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어머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들이 다 왔고 어머니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한 채 그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며느리를 붙잡고 시어머니도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만 집에 들어가시라는 데도 3일 내내 빈소를 함께 지켜주었습니다. 며느리에게는 친척도 없었습니다. 사는 게 벅차서였는지 어머니는 따로 연락 주고받은 친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하신 시어머니 덕분에 어머니의 빈소는 3일 내내 시끌벅적했습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동생까지 잘 챙겨주었습니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여행 갈 땐 꼭 며느리의 동생도 챙겨주었습니다. 그 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또 다시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며느리는 “어머님, 남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 마련해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 게요.” 하며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다달았을 때 문자가 왔습니다. 며느리의 통장으로 3천만원이 입금된 것입니다. 며느리는 그 길로 다시 시어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짜증도 부렸습니다. 안 받겠다고. 시어머니가 함께 울면서 말했습니다: “지은아, 너 기억 안나? 친정 엄마 돌아가실 때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잘 보내주겠다고. 나 이거 안하면 나중에 네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어.”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에게 혼자 하신 약속을 지켜준 것입니다. 며느리는 그 날도 또 엉엉 울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말하시기를 “순둥이,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에 쓸꼬. 젤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을 땐 목 놓아 울어버려.” 했습니다. 동생의 결혼을 앞두고 제부 될 사람이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따로 인사드리고 싶다 해서 시부모님과 며느리 부부와 동생네가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때 시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돈처녀 혼주자리에 우리가 앉으면 좋겠는데...” 언니는 사실 동생 결혼식 혼주자리에 자기 부부가 앉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녀의 시아버지가 다시 말했습니다: “다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그 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친정 부모님 안 계시다고 말씀 안 드렸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며느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시부모는 헤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생네는 너무나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언니 시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했습니다. 동생 부부는 언니 부부 이상으로 언니 시댁에 잘 해주었습니다.
그토록 며느리를 배려하며 많이 사랑해주셨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49제를 드리고 돌아온 날 그녀는 10년 전 시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 때 친정엄마 병원비 어머니께서 해주신 거”라고. 부부는 서로 부둥켜안고 어머니 그리움에 엉엉 울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아들이 둘 있습니다. 그녀는 생활비를 쪼개서 적금을 들고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해준 것처럼, 자기도 나중에 며느리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그녀의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시어머니입니다. 항상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녀는 오늘도 이렇게 다짐합니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들 시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어머님,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제가 꼭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요.”

며느리에게 이런 사랑 한 번 주어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설 생각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아들 잘난 줄만 알지 남의 딸 귀한 줄은 모르고 며느리를 압박하고 핍박하고 구박하고 쪽박 깨는 무지한 시부모들 되지 말아야 합니다. 금지옥엽같이 자란 남의 집 딸 데려다가 종처럼 부려먹으며 툭하면 흉보고 욕하고 때리고 내쫓을 권리를 누가 부여했습니까? 자녀들이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함께 행복하게 잘 살기만을 바라야지 혼수 때문에 평생 며느리 미워하고 아들 힘들게 하며 살아서 되겠습니까? 혼수 타령하는 것은 자기 아들을 내다팔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짓에 불과합니다. 그러지들 맙시다. 며느리 둔 부모님들은 언젠가 며느리를 위해 요긴하게 쓸 사랑의 예금통장 지금부터 아들 숫자만큼 하나씩 마련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얼마 살지 모르는 세상,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에 여한 없이 실컷 사랑하다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기에도 너무나 짧은 세월을 미워하고 헐뜯고 비방하고 싸우며 사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삶은 없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내 식으로,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사랑하는 우리가 됩시다.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합니다. 사랑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기쁨과 이 세상 살 가치를 느끼게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위대하게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하나님을 닮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