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전하는 이영훈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할렐루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누가복음 3장 3~6절의 말씀을 가지고 “주의 길을 준비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주의 길을 준비하라”(주의 길을 준비하라), “주의 길을 준비하라”(주의 길을 준비하라).

우리는 참 바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뭐가 그렇게 바쁜지를 몰라요. 자고 깨어나면 또 하루가 지나가고 한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우리 인생길에서 우리는 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과연 나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내가 세상을 떠나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12월은 성탄절이 있는 달입니다. 성탄절이 있는 4주간을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으로 교회력으로 말하면 대강절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다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과연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천년 전 예수님이 오심을 준비했던 침례요한의 그 외치는 음성이 오늘 우리 마음 가운데 울려퍼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1. 회개하라

첫 번째로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따라해 주세요. 회개하라.(회개하라)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침례요한이 회개를 촉구하며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 3절에,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침례는 물에 잠기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고 침례 받는 것은 물에 잠길 때 옛사람이 죽고 물에서 올라올 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몸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옛사람의 모습에 묶여서 삽니다. 쉽게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늘 살펴보고 주 앞에 회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침례 요한이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할 것에 대해서는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4절에,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침례요한이 와서 주의 길을 오실 길을 “준비하라”, “준비하라”, “준비하라” 그가 그 사역을 감당할 것을 말씀하고 있고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라 옛날에 왕이 행차할 때는 미리 군사들이 나가서 길을 정리합니다. 파인 곳은 메우고 거친 데는 그 길을 평평하게 하고 장애물은 제거합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미움과 원망이 가득해서 주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철저히 회개해서 돌이켜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설교학의 대가이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회개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적은 없다. 당신의 삶에 ‘회개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 버리는 것이 낫다.”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도 회개에 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에,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회개란 무엇입니까, 잘못된 데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돌아서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동으로 가던 사람이 서로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죄악의 길을 향해 가던 사람이 걸음을 바꿔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마음에 뉘우치는 것과는 다릅니다,

회개란 돌아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길, 영의 길로 표현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육에 속한 사람 육을 따라가는 삶, 예수 믿고 나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영을 따라가는 삶에 대해서 그가 로마서 8장 5절로 6절에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죄를 따라가면 결국 우리에게는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데 사망 뒤에는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영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천국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을 바라보거나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께 딱 시선을 고정시키고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영어 성경에는 예수님께 눈의 초점을 맞춰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그 첫사랑을 회복해야 돼요.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 그 첫사랑의 감격 기억하십니까? ‘아니, 저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그럼 오늘 그 첫사랑의 감격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1966년 2월 달에 성령체험을 하면서 그때 첫사랑의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저 기도만 하면 예수님 생각이 나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특별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통곡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라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 기도실에 그 사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 또 십자가에 달려서 고난당하신 예수님 모습이 떠올라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첫사랑의 그 강한 그 감동이 오늘의 저를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첫사랑의 기억을 갖고 계십니까?

김효근 교수라고 하는 좀 독특한 분이 계세요. 이 분이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오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를 하고 나서 현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이신데,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중고등학교 때 음악을 하려고 그랬는데 부모님이 말리셔가지고 자기가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갔는데, 거기 가서도 음악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작곡도 공부하고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MBC대학가요제에서 ‘눈’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아가지고 이 곡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곡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에는, 성가곡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는 것을 음반으로 내기도 했는데, 이분이 지은 곡 가운데, 작사 작곡한 곡 가운데 ‘첫사랑’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거기 가사 가운데 제가 일부를 소개합니다.

내 영혼이여 간절히 기도해
온 세상이여 날 위해 노래해
언제나 그대에게 내 마음 전할까
오늘도 그대만을 생각하며 살다

내 영혼이여 즐거이 노래해
온 세상이여 우리를 축복해
내 마음 빛이 되어 그대를 비추라
오늘도 그대만을 생각하며 살다 첫 사랑

여러분, 여러분의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 이 얘기를 들으면서, 아 나도 옛날에 첫사랑이 있었지.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시냐 그 말씀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생각으로 가득한 그러한 모습으로 첫사랑의 감격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제가 오늘 그 질문 하는 것입니다. 왜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받았는지 아세요? 요한계시록 2장 4절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따라하세요.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첫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주님 앞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면 어떤 현상이 다가오느냐 예배에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가 사라집니다, 주님에 대한 열정이 사라집니다, 형식적인 신앙인이 됩니다. 이게 다 첫사랑이 사라진 그러한 증거에요. ‘아, 저거 내 얘기 하는구나’ 그런 분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늘 마음이 설레야 돼요. 왜,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고 첫사랑의 감격이 너무나 내게 강하게 임했기 때문에. 할렐루야.

뉴욕에 퀸즈 한인교회라고 하는 큰 교회를 세우신, 그 섬겨 오신 한진관 목사님이 계세요. 지금 은퇴하시고 원로 목사님 되셨고요, 지난번 뉴욕에 갔더니 몸이 좀 불편하셔서 누워계신 분인데, 제가 목사님 댁을 방문해서 기도해 드리고 왔는데, 원래 음악을 전공하셨고 장로교 목사님이세요. 성령이 무엇인지를 모르시고 목회하시는 목사님, 그런데 그 교회에 미국으로 이민가신 우리 순복음교회 권사님이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마다 안 빠지고 나오셔서 기도하시는 기도 제목이 목사님의 귀에 들리도록 ‘우리 목사님 은혜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 목사님이 그 말만 들으면 막 속이 뒤집어 졌데요.

‘아니, 왜 자기가 은혜 받을 것이지 나보러 은혜 받으라는 거야..’ 알아보니까 순복음 교회에서 왔다는 거에요. 아이 저 권사님 순복음 교회로 가라 그러라고, 왜 우리교회 와서 날 갖다가 자꾸 번거롭게 하느냐고. 그런데도 요지부동으로 늘 그 자리에 앉아서 주여 우리 목사님 은혜 받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 받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가지고요 이분이 무언가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오산리 기도원에 와서 기도하다 성령 체험을 하고, 그때 첫사랑의 감격을 체험하고, 삶의 전환점이 다가왔습니다.

목회하시는데 교회가 크게 부흥해서 뉴욕에서 가장 큰 교회 세우시고 섬기시다가 은퇴하셨는데요, 제가 워싱턴에서 사역할 때 우리 한진관 목사님 모시고 세 번을 계속 매년 삼년동안 부흥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진관 목사님이 그래서 미국에서 여의도 교회 구역 공과를 쓰고 계십니다. 그렇게 목회하셨어요. 그런데 첫 번째 부흥회 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여러분들이 만일 가슴에 손을 얹고 아주 진정으로 ‘사랑의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10번을 고백했을 때 마음에 감동이 없고 눈물이 나지 않으면 엉터리라고, 엉터리 신자들이라고. 그런데 그게 마음에 찡하게 와 닿았어요.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 열 번 해보라고 하지 않겠어요. 혹시 아무런 감동이 없을까봐.

그러나 여러분 조용하게 정말 주님과 일대일의 만남 속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그런 고백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예수님, 제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사랑의 예수님, 제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한 번 손을 얹고 고백해 볼까요? ‘사랑의 예수님, 제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사랑의 예수님, 제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이렇게 열 번을 여러분이 조용하게 주님과 일대일의 만남 속에서 고백해서 아무런 감동이 없다면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그런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변화 받고 치료받고 용서받고 새롭게 되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첫째로 주님 말씀이 회개하라,

2. 겸손하라

둘째로, 주님 말씀이 ‘겸손하라’입니다. 따라하세요, 겸손하라. 누가복음 3장 5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그 왕이 행차할 때 파인 데는 메꾸고 언덕들은 깎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적으로 볼 때 우리 마음속에 그렇게 파인 골짜기가 많다는 겁니다. 깊은 상처의 골짜기 그것을 메우지 못하고 평생 동안 그 상처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 때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가도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그 상처가 다시 확 솟구쳐 올라와서 그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또 가라앉고, 또 가라앉고.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 이러한 비참한 최후를 맞는, 선택하는 그런 분들도 있어요. 주여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상처의 골짜기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료받고 매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자라나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상처, 실패의 상처, 상처가 많죠. 지존파라고 하는 여러분 흉한 범죄를 저질렀던 청년들 기억하십니까? 그 대여섯 명이 모여가지고, 다 결손 가정에서 자란 청년들인데 세상을 저주하고 아버지 어머니 때에 있던 사람을 다 미워하고 죽이려고 그랬어요. 특별히 돈 많은 사람은 다 죽여 버리겠다, 그래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차를 납치해서 그 차에 타고 있던 분을 다 죽이고 그 살을 먹기까지 했던 아주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입니다. 왜, 그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었기 때문에.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착한 사람들인데 나중에 예수 믿고 변화되고 감옥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세상을 떠났지만은, 미리 예수 믿고 상처를 메꿨더라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터인데.

주여 오늘 이 시간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크고 작은 상처의 골짜기들이 메워지고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평안함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오늘 이 평안함이, 이 치료가, 이 사랑이 여러분에게 넘쳐서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변화 받고 새로운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위대한 선언이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지나갔다는데도 또 끌어다 안고 또 움켜쥐고 살지 마시고 내던져버리시고, 상처 입은 옛 모습 내던져버리시고 새롭게 변화 받은 모습으로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크고 작은 교만의 산들을 깨트려야 합니다. 인간은 원래 교만덩어리입니다. 자기 밖에 몰라요. 옆에 사람이 피해를 보더라도 나만 잘되면 되었다고 하는 그러한 이기주의가 가득한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교만이 무서운 것은 교만이 독선을 낳고 독선은 범죄를 낳습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성경을 잘 알고 있다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 서기관. 그들이 교만해서, 자기들만이 옳다고 생각해서 독선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왜! 그들의 교만 때문에. 그래서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히,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고백을 해야 됩니다. 누가복음 17장 10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여러분, 모두가 낮아져서 섬기며 삶을 살아가면 그때로부터 마음에 평안함이 다가옵니다. 마음에 평화가 임합니다.

여러분, 교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요. 자기한테는 늘 관대해요. 자기가 잘못한 것은 눈 감아주고 남이 잘못한 것은 용서를 하지 못해요. 막 짓밟아버립니다. 물고 뜯습니다. 교만해서 그래요. 주여, 우리가 겸손히 낮아지게 하여주옵소서. 마태복음 23장 11절, 12절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주여,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겸손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주옵소서. 내가 더 많이 가졌을 때에, 더 많이 배웠을 때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쓰임을 받을 때에 겸손히 섬기는 주님의 일군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에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3. 온유하라

셋째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온유 하라’는 말씀입니다. 따라해 주세요. ‘온유 하라’ 누가복음 3장 5절에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굽어있는 것이 펴져야 되는데 문제는요, 육신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인 것입니다. 마음이 굽어져있는 사람. 늘 삐닥하게, 삐뚤어지게 보는 분들.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평생이 불행합니다. 왜! 마음이 굽어져있으니까 모든 것이 불편해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입을 열면 부정적인 말만 쏟아냅니다.

우리 한국 사회가 치료받아야 될 것이 이렇게 마음이 굽어진 사람들의 모습. 치료받기 전에는 우리 한국사회가 선진국가로 발전할 수가 없어요. 얼마나 부끄러운 일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마음이 굽어져있으니까 고위공직자들끼리 서로 물고 뜯고. 여러분, 신문을 볼 수가 없어요. 도대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인가. 아무도 몰라요. “이건 또 무슨 애기요?” “아, 그런 일이 있는가 봐요.”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습니다.

마음이 굽어져서 남을 사랑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 마음의 굽어진 것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펴지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맘에 누르고 있는 모든 것에서 우리가 자유함을 받게 하여주옵소서.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여러 가지로 마음에 상처 받고 짓밟힘 당해 눌려서 거칠어진 인생이 예수님 은혜로 변화 받아 그 인생이 온유로 무장한, 주의 사랑이 충만한, 그러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거칠어요.

요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걸 보면 욕을 쏟아내는데 영화에서도 막 그런 거친 욕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거친 마음이 거친 말을 쏟아내기 때문에 우리들이 우리 언어를 순화시켜야 됩니다. 따뜻한 말, 사랑의 말, 용서의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 위로의 말을 쏟아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굽어져있어서 그래요. ‘주여, 굽어진 마음이 펴지게 하여주시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하여주옵소서.’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디모데전서 6장 11절, 12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거친 마음, 쉽게 분노하는 마음을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잠언서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서 4장 23절을 다같이 고백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성격이 거칠고 강한 분들이 있어요. 그러나 예수 믿고 나서는 바뀌어야 됩니다. 부드러운 성품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강하면 부러지는 것입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바뀌어서 상처 입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랑의 사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서 온유와 겸손으로 옷 입고 우리 주위에 상처입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을 주의 사랑으로 품어주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지내야 되는 생활의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 또 마음이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 겨울을 보내야 되는 분들, 홀로 사시는 어르신, 소년소녀가장, 다문화 가족, 장애우 형제자매들, 우리들이 사랑으로 돌봐야 됩니다. ‘주여, 사랑의 마음을 갖고 그들에게 나가게 하여주옵소서. 우리에게 넉넉한 마음, 여유 있는 마음을 주셔서 그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마음이 굽어지고 거칠어져서 미워하고 다투며 싸우지 말게 하여주시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게 하여주옵소서. 후회 없는 인생 살게 하여주옵소서. 할렐루야.

강원도 산골짜기에 오셔서 평생 한국인으로 사셨던 대천덕 신부님. 약 50년 가까이 강원도 태백 땅 정선군 하삼 2리에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린 많은 시골의 우리 한국 교회의 소외된 분들을 섬기다 천국가신 신부님이신데요. 제가 1977년 7월 달에 그곳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 때 제가 그곳에 함께 섬기시던 조병호 목사님한테 들었던 말씀 하나 소개합니다.

예수원을 시작한 초기에 대천덕 신부님이 워낙 한국이 어렵고 가난한 사람이 많으니까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이 구호물자를 얻어 오셔 가지고 구호물자를 동네 분들에게 계속 나누어주셨답니다. 그래서 구호물자를 가져 온 것을 창고 안에 다 쌓아놓았는데 거기에 자가 발전기, 모터가 하나 있어가지고 늘 자가 발전을 하고 있었는데 대천덕 신부님이 서울에 말씀을 전하러 간 동안에 이 자가 발전기가 돌아가는데 그 위에다가 누가 코트를 걸어놓아 가지고 과열이 돼서 불이 난거예요. 불이 나서 그냥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거기가 산 정상이기 때문에, 거기 산꼭대기 가까운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소방차가 올라오기 전에 다 타버렸어요. 올라오는 길도 좁아서 올라올 수도 없어요. 제가 그 당시 갈 때만 해도 하루에 한 번밖에 버스가 없었고 그 입구에 내려서 30분을 산길을 올라가야 되요. 그러니 신부님이 떠난 곳에서 예수원을 지키고 있던 조병호 목사님께서 큰일 났습니다.

조병호 목사님을 우리 서대문 천막교회시절에 처음 조용기 목사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박종선 목사님과 함께 목사 안수 받은 두 분 중의 한분인데. ‘야휴, 큰일났구나. 이거 다 불이 나서 어떻하나. 신부님 돌아오실 시간이 되었는데.’ 너무너무 마음에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이제 돌아오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차가 황지역에 도착을 해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 들어오시는데. 밑에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 신부님을 모시고 걸어 올라갑니다. 30분 동안 올라가는 길인데, 30분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신부님” 빙그레 웃으면서 쳐다봅니다. “아니, 아니에요.” “신부님”, “왜 말을 해요.” “그런데요.” 말을 차마하지 못하겠는 거예요. 올라가면서 “저, 글쎄요.” “말을 하시오.” “아, 그게요.” “아, 말을 하시라니까” “그게요. 신부님 가신 중에 그 창고의 모터에서 과열되어가지고 거기 걸려있던 옷에 불이 붙는 바람에 거기에 있던 모든 구호물자가 싹! 다 타버렸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얘기를 듣고 ‘아니, 내가 그것을 어떻게 모아온 것인데. 좀 잘 관리를 할 일이지. 거기다 누가 옷을 걸어놔 갖고 불을 나게 했느냐.’라고도 한 말씀 하실 수 있을 텐데. 활짝 웃으시면서 조병호 목사님을 보시면서 하신 말씀이 “그래도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중에 듣고 보니까 이미 황지역에서 내리셨을 때 그 소식을 다 들으셨데요.

그런데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띠시고 오히려 걱정을 갖고 있을 조병호 목사님과 예수원 가족들을 걱정하시고. 그 말씀을 전해 들었을 때 “그래도 할렐루야.” 여러분, 이러한 삶의 여유를 갖고 사십시오.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오고 억울한 일 당해도. ‘그래도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와 같은 온유와 겸손을 옷 입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보면 늘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남의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고 늘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며 살아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땅에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회개하고 온유와 겸손을 옷 입고 무슨 일을 만나도 ‘그래도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며 나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4. 12. 7. 성찬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