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에티오피아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드물게 진작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국왕으로부터 온 국민이 기독교 신앙을 대대로 지켜 왔다. 그런데 그 나라가 병이 들게 되었다.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 사회와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빈민 사회로 나라가 분열되었다. 귀족 사회는 호의호식하고 빈민 사회는 민생고에 시달렸다.

그러나 교회는 가난에 시달리는 인민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귀족 사회와 왕족 사회를 지켜 주는 기구가 되었다. 교회는 오랜 시간동안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성직자들은 귀족화되고, 교회는 상류 계급의 현상 유지를 뒷받침하는 시녀 노릇에 머물게 되었다.

빈농의 자녀들은 상류 사회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막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길이 열려 있었다. 빈농의 자녀들 중에 탁월한 자녀들에게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여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우수한 빈농의 자녀들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관학교에 들어간 빈농의 자녀들에게 공산주의 세력이 파고들었다. 그들 속에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비밀 서클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공산주의를 공부하게 된 사관생도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장교가 되어 군대 안에 비밀조직을 키워나갔다.

그들이 지휘관이 되자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을 일으키자 기독교 계통의 중고등학생들이 공산주의 혁명을 반대하는 데모를 일으켰다. 이에 혁명 세력은 군대를 동원하여 데모하고 있는 학교 전체를 둘러싸고는 전교생을 사살하였다.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요청하였으나,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혁명세력은 가차 없이 처단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에티오피아 공산혁명은 온 나라에 비극을 초래하였다. 통치 경험이 없는 공산주의 장교들인지라 온 나라를 재난으로 몰아넣었다. 에티오피아가 당한 이 비극에는 교회가 큰 책임이 있었다. 평소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빈민, 농민,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어야 했다.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성직자들이 귀족대우를 받느라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았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