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뜨거움과 함께 시작된 사랑은 갈등과 시련과 연단과 회복의 과정을 거치며 깊어진다. 사랑은 그렇게 점점 더 성숙해져 간다. 사랑은 어떻게 성숙해져 가는 것인지 그 깊은 비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사랑은 서로가 함께하며 성숙해져 간다(1절)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에 예루살렘 여자들이 함께하였다. 철(鐵)이 철(鐵)을 날카롭게 하듯, 이 두 사람을 비웃던 예루살렘 여인들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에 감동을 받고 두 사람의 재결합을 위해 함께하였다.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과 함께 사라져버린 연인을 찾으러 나섰다. 기독교 신앙을 비웃고 조롱하던 이웃이 주님을 영접하고 함께할 때의 그 감격을 기억하고 상상해 보라!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성숙해져 갈 수 없다. 사랑은 반드시 공동체 속에서 성숙해져 간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신 목적도 바로 이 공동체적 사명 때문이다. 이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뿐 아니라 이웃 여인들과도 하나가 되었다.

사랑은 함께하지 못할 때, 함께하는 사랑의 귀함을 깨닫게 된다. 부모가 사망한 이후, 자녀가 유학 등으로 집을 떠나간 이후, 사람들은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가 더욱 그리워진다.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 예배의 귀함을 알게 된다. 함께하라! 교회도 함께, 가족도 함께, 부부도 서로 늘 함께하라! 우리 민족에게는 함께하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다. 바로 동서남북 지역 분열, 이념 분열, 학연 분열, 혈연 분열, 교단 분열병이다. 더불어 함께하는 사랑을 회복하라!

2)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한 일심동체임을 확인하며 성숙해져 간다(2-3절)

사랑은 서로가 서로의 동산에 속하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동산이다. 동산의 양떼는 신자들이요 백합화는 신앙과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마 6:28-29). 우리는 동산에 속하였다. 그리스도와 교회, 하나님과 자녀, 부모와 자녀는 서로 속하였다. 자녀가 부모를 택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다(요 15:16). 소속 없는 비정규직의 애환을 아는가? 소속이 없는 것은 비극이다. 특별히 당신의 영적 소속은 어디인가?

3)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며 성숙해져 간다(4-10절)

그럼 무엇을 칭찬할 것인가?

첫째 아름다움을 칭찬하라(4절).

특별히 고운 아름다움을 칭찬하라(4절). 디르사 같고 예루살렘처럼 곱다는 말은 어떤 칭찬일까? 디르사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북부고산 지대의 아름다운 술람미 여인의 고향)이요 예루살렘은 남유다 왕국의 수도였다. 이름다운 수도처럼 곱다는 표현은 신랑의 기쁨을 표현한다. 당신의 사랑과 신앙은 곱고 아름다운가?

둘째 도덕적 순결함을 칭찬하라(5절).

도덕과 순결에는 영광이 있다. 이를 칭찬하라. 신랑은 첫날밤 신부의 머리털을 칭찬하고 있다. 목축하기 좋은 길르앗 산 누운 염소처럼, 긴 머리는 아름다움과 도덕적 순종의 덕을 상징한다. 이것은 또한 영광을 상징한다.

셋째 질서정연함을 칭찬하라(6절).

신랑은 첫날 밤 사랑하는 신부의 쌍태 낳은 양 같은 가지런한 이를 칭찬한다. 양은 이빨로 남을 해치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적 질서가 있어야 아름답다.

넷째 회개는 칭찬받을 일이다(7절).

신랑이 석류 같은 신부의 뺨을 칭찬한다. 이것은 은밀함(석류 알맹이)과 풍요로움과 부끄러움(회개 상징, 스 9:6; 겔 16:63)을 상징한다. 부끄러움이 없는 신부가 이상한 것처럼 회개 없는 신앙은 가짜이다.

다섯째 ‘당신이 최고’라고 칭찬하라(8-9절).

사랑은 상대를 최고라고 칭찬하는 것이다. 왕후와 비빈들에게 칭찬받는 그녀는 최고의 신부이다. 신랑은 신부가 최고라 칭찬하고, 신부는 신랑이 최고라고 칭찬하라.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그보다 더 보살파고 사랑하겠는가. 배우자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임을 기억하라! 자신의 그 반쪽을 칭찬하라! 그리고 하나님께 그 같은 칭찬받을 만한 성도가 되어라!

마지막으로 수사적(rhetoric) 칭찬을 하라(10절).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旗幟)를 벌인 군대 같은 엄위를 지닌 신부는 영광스러운 존재이다. 성도의 영광은 이와 같을 것이다.

사랑 성숙의 세 가지 교훈을 배웠다. 사랑은 끝까지 함께하며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며 최고로 칭찬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주변에서 사랑하다 이심이체가 되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원수지간이 되거나 영영히 멀어지고 떨어지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보는가. 이런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칭찬 속에서 지속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하라! 사랑은 그저 값없이 되지 않는다. 에릭 프롬의 말처럼 반드시 훈련으로 된다. 최선을 다하라. 조셉 딜로우는 “심지어 유흥업소 종사자들도,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한다” 했다. 부모는 자녀에게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에게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못하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교회와 가정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사랑 풍경15- 이티(ET) 할아버지

하늘에서 굳이 이티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지상 최고 하나님 걸작품
두밀리 이티 할아버지는 세상 낮은 그곳에 있었다
‘앗! 도깨비다’라고 놀라지 않고 그나마 다행히
어린 아들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이티 할아버지는 타다 남은 손으로 멋쩍게 어린 꼬마와 악수하였다
사람들은 숯불삼겹살구이는 맛있게 잘 먹으면서도
이미(E) 타버린(T) 편견의 손은 희생양처럼 가볍게 내버린다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 날
예수 기념관 앞에서
예수 닮은 이티 할아버지를 지상에서 마지막 만났다
사랑과 정이 무엇인가
아이들이
하느님을 따라
하느님의 천국 모습을
가장 가깝게 회복하던 곳
가평 두밀리는 내 고향은 아니나
늘 아스라한 고향처럼 무엇이 울컥 솟아오른다

한국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는 예수처럼 바보가 되었고
마른 땅에 자란 줄기같이 고운 모양 없고 풍채 없던
예수님 삶이 늘 그대로 詩였듯
두밀리 이티 할아버지는 사람 그대로 그렇게
두밀리자연학교에서 행복한 녹색詩가 되었다
사명을 다하기까지 이 땅에서 아이들과
철없는 사랑 노래 부르다가
이슬(E)처럼 티(T) 없이 맑은
두밀천 작은 물소리가 되었다

-우리나라 농촌 운동, 의료보험 운동, 녹색 운동, 어린이 대안 운동의 선구자이신 가평 두밀리자연학교 교장 고 채규철 박사님을 기리며-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