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교수수련회관에서 세미나 2부 좌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 출간 기념 세미나가 2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숙명여대 교수수련회관에서 개최됐다. 세미나는 1부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의 의의’ 발표와 2부 좌담회 순으로 진행됐다.

세계 본회퍼학회에서 논문상을 수상했던 김성호 박사(부산믿음의교회)는 1부 발표에서 “본회퍼는 하나님의 교회 되어주심, 은혜 주심, 우리를 제자로 불러주심에는 선물 이상의 숙제도 함께 부여한다고 이해했고, 그것이 그가 이해한 교회의 핵심이자 은혜, 제자도의 핵심이었다”며 “본회퍼는 1930년을 기점으로 교회에 대한 교리적 이해에서 윤리적 문제로 신학적 지평이 전환됐다”고 밝혔다.

▲김성호 박사가 1부에서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그는 “본회퍼는 (나치즘이 지배하는) 암울한 시대 가운데, 단 23명의 전도사를 놓고 핑겐발데 신학원을 운영하면서 독일교회의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었다”며 “당시 교육생 중 한 사람이 이 전기를 집필한 베트게였다”고 전했다. 또 “본회퍼는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이 진정한 교회’라고 했다”며 “본회퍼를 통해 한국교회는 개인과 사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1천 페이지 넘는 두께 때문에 읽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번에 나온 본회퍼의 전기를 통해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맞춰지는 느낌”이라며 “그의 삶과 신학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왜 이러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하는 조각을 하나 하나 끼워맞출 수 있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의 삶과 신학을 배워나갈 수 있는 본회퍼 연구의 ‘백과사전’ 역할을 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그는 본회퍼 전기 한국 출간을 기념해 크리스티아네 티츠 세계 본회퍼학회장, 일제 퇴트 세계 본회퍼학회 자문위원, 야마자키 가즈야키 일본 본회퍼학회장이 보내온 축사를 읽으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2부에서는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고재길 교수(장신대) 등이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사회로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가 말하는 대로 ‘신학자-그리스도인-동시대인’의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백소영 교수(왼쪽에서 두번째)가 본회퍼의 어린 시절 가족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먼저 본회퍼가 강조했던 ‘공동체’에 대해 백소영 교수는 ‘가족’의 관점에서 풀어 나갔다. 백 교수는 “본회퍼의 공동체론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집단인격’이었는데, 그 독특한 개념을 계속 신학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경험이 가족 공동체가 아니었을까”라며 “그의 아버지는 굉장히 바쁜 정신과 의사였지만 공동식사에 늘 참여했고, 교회를 나가지는 않았지만 가족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성장해 나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회퍼 전기에는 (외)조부와 부모, 그리고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며, 그 분위기는 학구적이다. 그의 어머니는 편지에서 유명 신학자들인 ‘트릴취는 다 읽었으니 바르트(논문)를 보내달라’고 쓸 정도.

백 교수는 “본회퍼의 집단인격 개념은 히틀러의 광기에 동조했던 전체주의적 집단주의와 분명히 구별되면서도, 근대적 주체, 단독자, 개인, 파편화되고 분자화된 인간 이해와도 다른 독특성이 있었다”며 “이는 그 근본이 계시해 들어오시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으로, 초월해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하나님이 ‘나와 너’가 집단인격을 이루는 고리 역할을 했다”고 했다.

고재길 교수는 “이전까지 모든 신학자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계시 공동체’로 이해했지만, 본회퍼는 그것 뿐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임을 박사학위 논문에서 주장한 바 있다”며 “한국교회도 교회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달라진다면 미래가 좀 더 밝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가 고백교회 학생들을 가르쳤던 핑켄발데 신학원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 나누는 ‘죄의 고백’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는데, 이는 1907년 평양대부흥 당시 일어났던 일과 같다”며 “오늘날도 어떤 형태로든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일들이 재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석 목사는 “백 교수님 말씀대로 본회퍼는 가문이 매우 대단했기에, 한국에서는 그 정도의 신학자가 나올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며 “그 정도 학문공동체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속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결국 공동체는 홀로가 아니라 서로가 주체가 되어 자신을 되비춰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야스퍼스의 말을 빌자면 ‘사랑하고 싸워 가면서 발전해 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왼쪽부터 좌담회를 갖고 있는 김기석 목사, 백 교수, 김응교 교수, 고재길 교수. 고 교수는 현재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 강독회를 갖고 있다. ⓒ이대웅 기자

교회론과 신학교육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고재길 교수는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타자를 위한 인간’으로, 비종교적 관점에서 신앙을 ‘타자를 위한 예수의 존재에 참여하는 것’으로 봤다”며 “그에게는 실천적 신앙이 중요했고, 지도교수(제베르크)의 영향 때문인지 어느 학문에서든 실천(프락시스)에 대한 강조가 일관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신학교육에 대해선 “처음엔 종교개혁 신학인 루터 신학, 가톨릭의 ‘영광의 신학’과 대비되는 ‘십자가 신학’을 배웠고, 바르트의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과 ‘초월적 계시의 신학’에 대해 공부했다”며 “그는 신학교육의 목적을 ‘학생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것’으로 여겼고, 자신부터 ‘신학자, 설교가, 목회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제자인가?’를 늘 질문하고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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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는 “본회퍼 당시 핑켄발데 신학원은 나치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들은 실존적으로 결단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오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그는 “그러나 학생들은 본회퍼와 함께했던 순간이 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라며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그토록 가슴 떨리게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라고 했다.

김 목사는 “요즘 신학교육의 문제는 교수와 학생 간에 인격적으로 깊은 신뢰가 없다는 것”이라며 “본회퍼와 학생들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았음에도 위기 속에서 함께 기도했고, ‘남은 자들을 위한 진정한 신학교육’을 실천했다”고 밝혔다. 백소영 교수도 “어느 때보다 상처 입은 영혼이 많은 이 때에, 우리의 신학교육이 이론화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치유가 병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본회퍼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본회퍼(Bonhoeffer: Agent Of Grace, 2000)> 하이라이트 상영으로 시작됐으며, 좌담회 중간에는 그가 작사한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감싸여’를 부르는 등 그를 기리는 다양한 순서들이 마련됐다.

▲디트리히 본회퍼.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22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 신학자였고, 유럽 전 지역을 누비던 청년 에큐메니칼 활동가였으며, 교회를 조종하려는 나치에 맞서 고백교회에 참여하고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칼 바르트와 라인홀드 니버 등 당대 신학자들과 교류했고, 유대인 구출작전과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 체포돼 강제수용소에 수감됐으며, 결국 즉결재판을 받고 39세에 교수형을 당한다. 나치 암살 가담에 대해 ‘미친 운전사가 교통사고를 일으키며 달릴 때, 당신이 그 자리의 기독교인이라면 기도할 것인가? 아니면 그를 끌어내릴 것인가?’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 <성도의 교제>를 비롯해 <행위와 존재>, <나를 따르라>, <창조와 타락>, <그리스도론>, <신도의 공동생활>, <저항과 복종>, <윤리학> 등을 집필했다. 지난 9월 본회퍼 서거 70주년을 앞두고 출간된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제자이자 친구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쓴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있는 전기이며, 그의 삶과 사상과 정황을 1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꼼꼼하고 입체감 있게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