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우리 사회의 취약점 중의 하나가 대화에 서툰 점이다. 대화의 기본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먼저 잘 들어야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대화가 시작되면 먼저 말하려 들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잘 듣지 못하니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인들의 DNA 속에 잘 듣는 기능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한국인들은 듣는 것에 서투르다.

먼저 잘 듣는 사람이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는 최고 지도자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듣기에 능해야 한다. 잘 듣는 사람은 인관관계가 좋고 실수가 적다. 잘 들어주기에 사람을 얻는다. 그러나 한국의 지도자들은 일단 높은 자리에 오르면 들으려 하지 않고, 말하고 지시하고 명령하려든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다. 김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후 즉시 발표된 발표문이 제2건국 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성명서였다. 얼마 후 나에게도 제2건국 운동 운영위원이 되어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청와대로부터 왔다. 정치에는 전연 관계할 생각이 없는 나이지만, 제2건국 운동이라면 일반 정치와는 차원이 다르겠다 싶어 수락하였다.

며칠 후 제2건국 운동 발대식에 참석하여 와달라는 전갈을 청와대로부터 받고 참석하였다. 11시쯤엔가 시작되었는데 청와대 영빈관에 150명에 가까운 운영위원들이 모였다. 총장, 장관, 문화예술인, 기업인 등 한국에서는 각 분야에서 내노라 할만한 분들이 위원으로 위촉되어 참석하고 있었다. 내 옆 자리에도 좌우로 대학 총장 두 분이 앉아있었다.

식이 시작되자 국민의례를 치르고는 김대중 대통령이 등단하시어 40여분간 국정운영에 관한 소식을 특유의 달변으로 설파하였다. 매스컴에 늘 들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긴 이야기가 있은 후 사회를 맡았던 비서실장이 식사를 하시고 안녕히 돌아가시라는 인사를 하였다. 황당함을 느낀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실장을 향해 말하였다.

“아니 건국운동을 한다 하여 바쁜 사람들을 불러놓고는 늘 듣던 대통령의 말 듣고는 점심 먹고 돌아가라 하면 이건 경우에 없는 일 아니요. 건국운동을 이런 식으로 시작하여서는 하나마나 한 일 아닌가요. 이건 너무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종래 방법인 것 같은데요. 적어도 이정도 수준의 위원들을 모셨으면 조별로 나누어 건국운동의 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한다든지 각자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그런 시간과 프로그램이 있어야지 대통령의 말만 듣고 밥 먹고 가시라는 건 너무 하지 않소!”

나의 말에 주위의 여러 위원들이 동의를 표해 주며 이런 식으로는 제2건국 운동은 싹이 노랗다고들 하였다. 그 뒤로 청와대에서 다시 부르지도 않았다. 제2건국 운동이 유야무야 흐지부지하여진 건 물론이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정부나 지도자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정치가도 그러하고 기업인도 그러하고 성직자도 부모까지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