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참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믿음을 나누겠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어떤 종교와 비교해서 탁월하게 위대한 점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손자인 튤리안 차비진 목사는 「은혜의 순간」이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라’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셨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7년 동안 라디오 방송으로 성경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던 디 한(Martin De haan 1891-1965) 박사는 기독교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라’의 종교와 ‘은혜’의 종교, 두 개의 종교만 있다. 그런데 ‘하라’가 아니라 ‘다 이루었다’가 기독교 신앙의 특징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내가 다 이루었다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뛰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에서 뛰어넘는 만용은 행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떤 뛰기를 잘하는 사람도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힘으로 어떤 선행과 고행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고 거룩하게 되어야 구원을 얻는다면 평생에 노력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듣고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누추한 인간이지만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성령이 오셔서 구원받은 사람답게 거룩하게 살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 종교는 다른 종교에는 이런 일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는 자기를 섬기는 신에게 이것도 하라. 저것도 하라. 이 일도 하라. 저 일도 하라. 그래야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주님께 나와서 주여,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겠나이까? 물으면 주님께서 내가 다 했다. 너는 할 것이 없다. 그럼 뭘 할까요? 믿기만 하라. 이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본론>

1.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그러므로 무엇이냐면 자연 만물이 결코 변하지 않고 동일할 때 우리가 그것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조석변으로 자꾸 변하면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떤 자연만물도 안 변하는 자연만물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1년 365일 하루하루의 날짜가 지나는 것 믿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하루가 지나가니까요.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과 무소부재하심과 우리를 변치 않으시고 사랑해 주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면 믿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시편 102편 25절로 27절에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변하지 아니하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수가 있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영원히 믿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써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리면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다 이루었다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시고 의를 주셨으며 십자가에서 허물을 다 청산하고 거룩함을 주셨으며 십자가에서 우리 질병을 걸머지고 치료를 주셨으며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다 걸머지고 축복과 형통을 주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영생복락을 우리에게 주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끝까지 믿을 수가 있는 것은 온 만물이 다 변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허물도 죄악도 다 사함 받고 마음에 평화와 치료가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변치 않기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바치고 믿을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Dwight L. Mood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 자신을 믿어보라!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친구를 믿어보라! 언젠가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헤어질 것이다. 그대의 명성을 믿어보라! 언젠가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믿고 살고, 또 어떤 사람은 친구를 믿고 돈을 믿고 명성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영원히 믿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확정해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보혈로 구원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콱 인을 쳐주신 것입니다. “인치신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도장을 찍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확인해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확실히 믿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입술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오장육부에 도장을 찍어버리는 것입니다. 도장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도장 받은 자들은 그 도장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기적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을 통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기적을 여러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믿음 때문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기적도 보십시다.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 21절로 22절에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믿고 의지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야훼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기적인 것입니다. 수르 광야에서 쓴 물이 달아지는 기적도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출 15:22~25).

40년 광야에서 나타내신 기적을 보면 “야훼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시 105:39~42).

우리가 지금 읽은 이 말씀을 보면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그 믿음에 따라서 꼭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었다가 믿지 않았다가 그렇게 반복하면 안 되지만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응답받을 때가 가장 답답할 때가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저는 제 개인의 신앙생활에 응답을 보니까 언제나 떨어지면 낙동강, 떨어지면 낙동강, 이제 한 발짝만 디디면 천지만물을 볼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이를 것 같은 때에 주님이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그를 묶어서 장작불 땔 그 위에 얹어놓고 막 칼로써 목을 자르려고 달라들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일순간 늦었으면 목을 찔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가짜로 믿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믿는 것을 시험해 보시고 그 시험에 합격되면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3.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없는데 있는 것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서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바꿔놓은 것입니다. 그 아내가 사래로 아들이 없는데 사라로 바꿨습니다. 많은 민족의 여주라고 말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고 마음에 보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고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로 3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 보이는 책상은 자연적으로 책상이 된 것이 아니고 강단은 강단이 자신 스스로 재료가 모여서 된 것이 아니라 원래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아 생겨나라 이러니 생겨난 것입니다. 재단은 생겨나라. 생겨난 것입니다. 궁창은 생겨나라. 없는데서 생겨난 것입니다. 없는데서 있게 되는 것이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믿음의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부르고 믿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불광동 천막교회에서 서대문으로 나올 때 였습니다. 서대문에 부흥회관이라는 건물을 짓고 좌석을 얼마나 했냐면 1,500석을 넣었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에 서대문 부흥회관 강단에 서보니까 운동장 같아요. 아이고 하나님 나 죽었습니다. 이 1,500명 앉는 강단을 어떻게 채웁니까? 불광동에서 300명 잘 모일 때 500명 모인 교회를 목회하다가 1,500명 된 교회 어떻게 채울 수가 있습니까? 사람들마다 저를 흉보았습니다. 저 대단히 낭패를 당하고 챙피를 당할 것이다. 너는 채우지 못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의 믿음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라. 강단에 1,500명 성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1,500명의 성도가 꽉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보고 믿고 말하라. 하나님 없는데 어떻게 봅니까? 없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합니까? 그때 주님께서 늘 하신 말씀이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고 있는 것같이 말하고 있는 것같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것을 채울 수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꽉차게 앉으시고 넘쳐남을 마음에 그려보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천막교회에서 서대문으로 옮긴 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날, 강단에 이처럼 서니까 한 1백여명 와서 앉아 있어요. 1,500명 앉는 좌석에 한 1백여명 앉아 있으니 천지가 아뜩했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려고 해도 안 됩니다. 눈에 빈 좌석이 꽉 들어 보이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려고 하니까 마귀가 와서 자꾸 거짓말쟁이라고 합니다. 입술이 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어찌할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저의 마음속에 눈뜨고 보지 말고 눈 감고 보라. 강단에 서거든 눈을 딱 감고 1,500명이 강단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할렐루야 하는 것을 듣고 그리고 박수를 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여라.

그때 우리 성도들이 지금 살아계신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제게 권면을 많이 했어요. 왜, 목사님은 강단에만 서면 눈을 감습니까? 우리 목사님이 눈을 감고 있으니까 우리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눈을 뜨고 설교를 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좀 더 기다리십시오. 눈은 하나님이 띄워 주시지 내가 뜨지 못합니다. 정말로 눈을 딱 감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 말씀대로 날이 지날수록 성령의 은혜가 점점 많아지더니 한 주일에 20명씩, 30명씩 사람이 불어가요. 그때 20명이면 기가 차요. 그때 박수를 좀 쳐주셨으면 힘이 났을텐데... 그래서 20명, 30명 증가되는 수에 목을 걸고 감사를 하고 부르짖고 기도를 했는데 1년이 지나고 나니까 강단에 서면 교회가 성도들로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마음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성전을 가득매운 성도 여러분 환영합니다. 지금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자리가 부족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배운 교훈이 무엇이든지 믿음이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 살림이 없으면 살림이 있는 것처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손님이 점포에 없으면 손님이 많이 있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당분간은 눈을 감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친한 친구인 남미에 있는 목사 한 분인데 그가 내게 와서 목사님, 세상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 사진을 내놓아요. 그 어린아이가 다 자랐는데 양쪽 귀가 없어요. 귀 테두리가 없어요. 얘를 데리고 귀가 나오도록 기도해 달라고 엄마가 왔는데 가톨릭 교회가 주종교인 우리나라에서 얘만 나으면 내가 큰 히트를 치겠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서 두려워했는데 목사님 책을 읽었습니다. 목사님 책에 보니까 1,500명 없는데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환영도 하고 믿었다는 것을 읽고 난 다음에 에라 나도 눈 감고 해봐야 되겠다.

그래서 그 애를 앞에 세워 놓고 손을 양쪽 귀에 대고 눈을 감고 주님이시여, 지금 이 애 귀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내 손 아래 느끼는 귀가 얼마나 아름답게 활짝 펴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 영광 돌립니다. 네 귀야, 펴질지어다. 펴져라. 그리고 난 다음에 손을 내리고 눈을 감고 눈 뜨기 전에 빨리 데려 가세요. 그 귀를 기도하고 눈을 감고 안 보았으니까 자기 마음속에 귀가 생긴 줄 보았던 것입니다. 그 다음날도 오라고해서 그 애가 문밖에 나올 때 비서실에서 또 걔가 왔다고 하기에 또 눈 감고 오너라! 그래서 또 눈 감고 귀에 손을 대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아버지여 이 귀에 아름답게 귓바퀴가 생겨날 줄 믿습니다 하고 나니까 손에 뭐가 부딪치더랍니다. 손을 떼고 눈으로 보니까 확 펴졌어요. 그래서 온전한 귀가 생겨서 남미가 그 기사를 신문에 내고 굉장히 떠들썩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보고 말하기를 서대문 교회 한꺼번에 1,500명 안 온 것이 얼마나 나에게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서대문에서 울고 남미에서 웃고 내 경험이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자기는 그 어린 아이 위해서 담대하게 기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라. 담대하게 그렇게 볼 수 있으면 좋은데 볼 수 없거든 눈 감으세요. 눈감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고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눈을 감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시인한 결과에 매주 20명 내지 30명의 신자들이 등록하기 시작하더니 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2,000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7천명이 되고 만 명이 되고 더 있을 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나왔어요. 신바람 나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교회란 크면 안 된다고 요사이 비난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때 베드로가 처음 설교하니 베드로의 처음 설교를 듣고 3천명이 회개하고 나왔습니다. 처음 출발부터 대교회로 출발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튿날 성전 미문에 있는 절름발이를 고치고 설교하니까 5천명이 회개하고 나왔습니다. 이틀 만에 8천명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수 만명이 되는 큰 교회로 발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은 교회도 사랑하지만 적은 교회 보다도 큰 교회를 더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큰 교회가 있어야 주의 종들도 많이 양성할 수 있고 선교도 할 수 있고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도의 용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믿음이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여서 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또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믿음은 끝까지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로 38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물을 잘 파기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우물을 파면 백발백중 물이 나와요. 그래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영감을 받기에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옵니까? 그 사람이 제가 우물을 잘 파는 비결은 딱 한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물을 파다가 물이 안 나오면 또 다른 데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나는 물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팝니다. 끝까지 붙어서 파면 물이 나옵니다. 큰 비결이 있는 줄 알았는데 별로 비결이 없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그것이야 못할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못합니다. 사람들이 파다가 물이 안 나오면 낙심을 하고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나는 파다가 물이 안 나와서 낙심이 되어서 포기할 때가 되면 이제 물 나올 때가 가까이 왔구나 알고 힘을 다해서 견디고서 파면 우물이 나옵니다.

기도의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이 올 듯 말 듯 해도 응답이 안 와서 나중에 낙심이 되어 자리를 털털 털고 일어날 때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가자. 그럴 때가 응답받을 때인 것입니다. 그럴 때가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우물을 팔 수 있으면 우물물이 나오는 것처럼 믿음도 반드시 끝까지 행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단어를 보면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행동하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명사가 아니고 동사인데 믿음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주를 지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지팡이를 들어야 바닷길이 열린다. 여리고 성을 돌아야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 내 점심도시락을 내놓아야 수천 명의 시장기가 해결된다. 혈루증에 걸린 여인의 손이든, 방글라데시 거지의 기도하는 손이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행동을 보일 때 기적을 행하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된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 목사님은 “응답이 이루어질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죠지 뮬러 목사님은 5만 번 기도해서 5만 번 응답을 받았다는 사람인 것입니다. 응답이 이루어질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범하는 커다란 잘못은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인내하며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다면 그것을 얻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러므로 끝까지 기도를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기를 원할 때 믿음으로 행할 때 목숨을 내놓고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을 반대하고 우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너무 분노하여 그를 끄집어 내어서 내가 불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할테니 이 자리에서 회개하면 살려주거니와 고집을 부리고 내 금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불에 집어 넣어서 타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고 불 곁에 갔다가 위협을 할 때 그들을 붙잡고 있는 군인들은 불 타 죽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목숨을 내어 놓고 던졌습니다. 몸을 던졌는데 죽었나요? 안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불꽃 가운데 같이 나타나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위험을 무릎서고 목숨을 내놓고 기도하는 것하고 모든 사람이 응답 안 된다고 떠날 때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응답 안 할 하나님이 장난하지 않습니다. 너희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 줄 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는 60년을 목회하면서 하나님께 수없이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적은 기도, 큰 기도를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끝까지 참고 기도한 것 중에 응답 못 받은 것이 없습니다. 전부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기도한 것은 물론 응답 못 받지만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기도는 항상 영광스러운 응답을 갖다 주셨습니다.

<결론>

천국과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과 함께 교통하는 길은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교통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여러분은 생각을 굳게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으면 끝까지 생각이 바꿔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얻는 기도, 허물을 얻는 기도 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을 것을 믿고 흔들리지 아니해야 되는 것입니다. 병 고치는 기도, 축복을 받는 기도, 부활영생 천국을 얻는 기도도 모두 다 마음에 한번 작정을 했으면 흔들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그 다음에 꿈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것을 마음속에 바라보는 것이 꿈인 것입니다.

장차 여러분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장차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결심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바라보고 그것이 이루어진 모습을 가슴속에 그리고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돼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보라 믿어라 말하라. 이 세 가지만 똑똑히 하면 모든 것이 응답받는다고 쉽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내일 인도네시아에 가면 인도네시아에 가서도 그 말을 끝없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한다고 다른 것으로 애쓰지 말고 바라보십시오. 꿈을 가져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없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십시오. 그리고 없는 것이 있는 것같이 말하십시오. 보라. 믿으라. 말하라. 그러면 응답됩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에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한도 내에서 꿈을 꾸십시오. 아브라함도 꿈을 통해서 살았고 이삭도 야곱도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도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조용기도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꿈꾸는 사람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꿈꾸는 사람들이다. 자, 저 꿈꾸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자.

성령은 오셔서 여러분에게 꿈을 주려고 무척 노력을 하시는 것입니다.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려고 애를 써서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꿈을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꿈을 10개를 가져도 좋고 20개를 가져도 좋습니다. 꿈은 꿈입니다.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바라보고 감사하고 나가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믿어져요. 그러면 믿습니다로 입술로 시인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고 나가면 희한하게 여러분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꿈을 바라보고 기적을 믿고 말로 시인하며 나가자. 한번 따라 말씀해 보세요. 꿈을 바라보고 믿음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고 나가자.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세상에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 살고 행하는 데는 4차원의 영성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 세계는 만들었거든요. 그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어떻게 운행하는 것입니까?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운행되게 해서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절대로 눈에 보이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만드는데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생각, 눈에 안 보이지요. 보는 것, 눈에 안 보이지요. 믿는 것, 눈에 안 보이지요. 말하는 것, 눈에 안 보이지요. 그러므로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해서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면 눈에 보이는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창조적인 세계에 살게 될 수 있는 길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통하여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은 갈보리 십자가의 주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보화로 갖고 있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왜 이런 설교를 하냐고 하는데 추수감사절은 추수할 곡식을 많이 거두었는데 그 추수할 곡식이 자기 스스로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자연만물의 은택을 통해서 된 것입니다. 그 자연만물을 누가 변할 수 있느냐. 여러분이 4차원의 영성을 가지면 자연만물을 변화시킬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추수를 거두고 더 거두고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것을 꿈꾸고 입술로 고백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함을 이루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당에만 올라가서 천국을 누리는 것 안 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천국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여러분 생활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천국을 나누며 예수님 재림하기를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례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천국을 누리고 나누고 천국 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천국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가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1차원은 직선이고 2차원은 이런 평면이고 3차원은 입체고 입체를 끌어안고 변화시키는 것이 4차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을 통해서 입체를 끌어안을 수 있고 꿈을 통해서 끌어안을 수 있고 믿음을 통해서 끌어안을 수 있고 말을 통해서 끌어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동시에 가지면 말할 수 없이 좋거니와 동시에 못 가지더라도 여러분이 눈에 안 보이는 생각을 집중하면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꿈을 꾸면 꿈을 꾸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다음 입술의 고백을 바꾸지 않고 계속하면 네 입술의 말로 너희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 질지어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굉장한 보화를 손에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알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해서 녹이 슬어 그렇지 굉장한 보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깨달아 알고 여러분께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며 나가면 이 보배가 눈에 보이는 현실로 나타나서 여러분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곁에 오는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남북이 통일될 것을 굳세게 믿고 남북통일을 꿈꾸고 믿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나가면 순식간에 남북통일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힘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서 여러분이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하면 성령이 그 4차원의 영성을 손발로 사용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 곳에 그 안에 들어가서 역사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주님의 약속을 누리고 체험하고 그리고 굳센 믿음을 얻어서 여러분도 영생을 얻고 여러분 곁에 오는 사람들도 다 영생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마지하지 않습니다. 아멘.  
 
/ 2014. 11. 16. 추수감사주일 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