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수 목사(꿈너머꿈교회 담임, 한국기독교장례문화연구원 원장, 행복한가정평생교육원 원장).

수능시험이 끝났다. 시험을 보고 나니까 후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왜 그토록 공부하라고 했는지, 엄마의 잔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할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나 감사하라고 하셨는데, 바울은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아예 날까지 정해서 감사하게 했고, 지난주가 바로 감사의 날로 정해진 추수감사주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또 ‘언제나’ ‘범사에’ 감사하게 하는 이유를, 혹 지금은 잘 몰라도 주님 앞에 가면 더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감사에는 조건이 없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늘도 감사하면서 다음의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시편 107:22) 여기에 3가지가 나온다. 감사제와 노래와 선포이다.  

첫째, 감사제를 드리라는 것이다. 제라는 말은 제사를 의미한다. 이 제사에는 제물이 있어야 된다. 옛날에 제사를 드릴 때에 돼지머리도 있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잔뜩 차려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제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를 통한 제물을 드려야 한다. 물론 물질의 제물도 있어야 한다. 특별히 추수감사의 헌금을 드리기도 한다. 그리고 풍성한 오곡백과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제단에 아름다운 추수의 열매들로 장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몸을 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몸이 없는 예배는 안 된다. 현대인들의 예배생활이 몸이 없는 말로만의 모습으로 전락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는 거룩한 주일마다, 아니 날마다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친히 내 몸을 드릴 줄 아는 참 예배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노래하라는 것이다. 노래가 있어야 한다. 어떤 노래가 있는가? 많은 젊은이들이 음악을 듣고 노래를 한다. 그 노래가 혹 슬픔의 노래가 아닌가, 아픔과 상처의 노래가 아닌가, 절망과 좌절의 노래는 아닌가, 쾌락과 사치의 노래는 아닌가, 타락과 혼돈의 노래가 아닌가? 그렇다면 안 된다. 우리는 노래해야 한다. 이런 노래를 해야 한다. 사랑을 노래하며, 희망을 노래하며, 기쁨을 노래하며, 행복을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감격과 은혜로 주님께 노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인생의 진정한 멋과 맛을 알고, 가치 있는 참된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선포해야 한다. 나의 삶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백성들의 원망 앞에서도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뒤에는 바로가,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도 이렇게 선포했던 것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얼마나 멋진가? 이러한 고백의 선포가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요셉 역시 꿈이 있어 시기와 비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버림받은 자가 되었음에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오늘도 주님이 하십니다”라고 선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