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인천새로운교회).

동성애에 관한 보도가 연일 지구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미 군중을 이룬 그들의 목소리가 대담하고,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변화되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미미했던 과거에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커다란 충격이었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급기야 친화적 태도를 취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동성애자들로 인하여 자신의 존립과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가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되는 마음에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의 모습과 똑같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하실 때 거리에 동남동녀가 즐비했다는 성경의 기록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인생들의 가치관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독처(獨處)하는 남자에게 돕는 배필로 여자를 지으시고,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종족을 번식하며 충만하라고 인간에게 혼인의 복을 선사하셨다.

여자에게는 태(胎)의 집을 허락하시고, 남자에게는 생명의 씨앗을 주셨다. 씨앗끼리, 태의 집끼리 생명을 번식시킬 수 없다. 동성애는 한 마디로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생사(生死)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은, 끊임없이 인간들을 속이는 몸부림을 자행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이미 죽은 인간을 형상화하고 교리화해 우상숭배에 빠져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또 하나의 대적 형태가 동성애와 자살이다.

자실은 스스로 죽는 행위가 아니다. 자살은 인간의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소멸 섭리를 역행하게 만드는 사탄의 궤계이다.

생명을 주시는 아름다운 복의 혼인을 역행함으로 창조 질서를 대적하는 행위가 동성애이고, 스스로 죽는 것처럼 위장된 죽음이 자살이다.

사탄은 스스로 하나님인 것처럼 위장하고, 생명의 복을 주시는 혼인을 동성애로 가로막으며, 소멸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자살을 부추김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동성애와 자살은 선택의 자존권이 아니다. 동성애와 자살은 자신의 신념으로 스스로 행하는 것처럼 위장된, 사탄의 속임수에 속고 있는 형태이다.

동성애와 자살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역행하는, 사탄의 술책에 속고 있는 인간들이 영혼의 피폐를 수용하고, 무너진 정신 체계를 드러내고 있는 현상이다. 동성애와 자살은 영(靈)적인 접근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의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접근이 절실히 요구되는 질병이다.

동성애자와 자살자들을 괴이한 시선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맹장염이나 위장염 같은 질병처럼, 그들에게 동성애와 자살 자체가 질병임을 인식시키고 치료를 위한 정신 치유의 개발이 시급한 시대이다. 질병은 반드시 치료될 수 있다.

인생은 육신의 한정된 시간이 끝이 아니다. 자살은 끝이 아니다. 속 시원한 정리가 절대 아니다.

자살은 영혼의 시작이다. 자살은 하나님의 소멸의 섭리를 대적하는 행위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불행의 시작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성애자와 자살자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하나님을 찬미하려는 일념으로 청교도에 의해 세워진 나라 미국에서 이미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승인하고 있는 자치주가 늘어나고 있고, 미국장로교에서 동성애를 인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해야 할 단체까지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향유되는 생명의 존엄은 누구에게나 주어졌다.

어두운 그늘에서 자실의 유혹을 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인생의 아름다운 의미를 심어줄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귀를 열고, 그들의 흐느낌을 찾아 들어야 할 때이다.

거리로 나서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드높은 목소리는 ‘영혼을 살려 달라’는 아우성임을 알고 있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성도들의 영안(靈眼)이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마음이 착잡하고 어지럽다. 분명, 말세지말(末世之末)이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