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잊혀지지 않는 ‘꽃의 시인’ 고(故) 김춘수 님을 생각한다. 그는 1922년 경남 통영에서 만석(萬石)꾼 집안에 태어났고, 6살 때는 호주 선교사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들어갈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일본 니혼(日本)대 예술학원 창작과 유학생 생활 중 일본천왕과 총독정치를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옥고를 치루고 퇴학당한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시화집에 ‘애가’를 발표한 후 총 16권의 시집과 시선집, 그리고 25권의 책을 저술했다. 경북대 문리대 교수 시절 김춘수 시인의 강의실은 항상 만원이었고, 또 그의 열정적 강의는 더러 시간을 넘겨서도 진행되는 바람에 다음 강의를 하는 교수가 복도에서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열정적 교수와 열광하는 학생들의 자리였다.

그러나 순수시의 극한을 달리던 그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제11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그를 아끼던 많은 독자들과 문단은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때의 정치 참여로 김춘수 시인은 적잖은 속앓이를 해야 했었다. 그 후 각종 상을 수상하고 또 예술원 회원, 시인협회 회장등을 역임도 했지만 정치에 발 들여놓았던 일이 상처와 상흔이 되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시인이었다. 그것도 ‘꽃의 시인’이다. 우리 가슴속에 ‘꽃’처럼 살아 있는 시인이다. 여기 그의 대표시 ‘꽃’을 음미해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