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10월의 나날들은 눈이 부시다. 단풍색으로 변하는 나뭇가지들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춤을 춘다. 진초록의 힘에 버금가는 고고한 자태이다. 여전히 바람이 일면, 숲은 물결 모양으로 흔들리며 싱그러움을 흘러 보낸다. 햇살도 눈부시고, 물소리 새소리가 경쾌하다. 나는 이러한 작은 일상들이 마치 아바타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날은 컴퓨터를 열면 화면에 여러 개의 귀엽고 예쁘고 또 엽기적인 아바타들이 기다리곤 했다. 내 기억 속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아바타들은 마시마로와 뿌까인 것 같다. 그리고 한때 온라인 게임의 인기로 바깥 세상을 구경하게 된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의 ‘다오’와 ‘배찌’도 있다.

이들 사이버 캐릭터들은 내가 컴퓨터를 열 때마다 깜찍한 율동을 보여주면서 마치 나의 눈도장을 받으려는 듯 애교를 부렸다. 그들이 한꺼번에 나의 품으로 안겨들며 유희를 자극하면, 나 역시 눈을 맞추며 반응을 보여주곤 했다. 네티즌들은 이 아바타들을 자신들의 사이버상 분신이라 한다. 아마도 아바타의 어원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분신, 또는 화신을 뜻하는 Avata의 어원은 ‘내려오다’, ‘통과하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아바(Ava)’와 ‘아래’ 또는 ‘땅’을 의미하는 ‘ta(테르Ter의 의미)’의 합성어이다.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들은 마치 이러한 아바타들 같지 않을까.  아바타들처럼 우리와 눈도장을 찍으려고 애교를 부리며 눈앞에 서 있다. 우리가 그들과 눈도장을 찍을 때 비로소 그들은 우리의 분신이 되어, 우리 속으로 들어와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된다. 아무리 사물들이 우리 앞에 있어도 내가 눈을 맞추고 관심을 주고 기쁨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생각해 보면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도록 살기 위해서는, 아바타와 같은 작은 사물과 자연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나의 반응에 따라, 평범한 일상은 남들과 아주 다르게 특별한 삶의 내용이 된다. 이 말의 의미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당신의 삶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람과 나무와 숲에 당신이 반응하고 눈도장을 찍는 일은, 당신이 그리는 인생의 목표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훌륭한 비즈니스맨이 되고, 학생이 되고, 선생이 되고, 의사와 예술가가 되는 데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목적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상의 아바타들에게 반응하고,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귐으로써 우리는 이윤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업가가 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리더가 되며, 불행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 아닐까.

이 가을에 작은 꿈 하나를 더하자. 평범한 아바타들과 사귐으로 인하여, 하루하루를 아주 특별한 날로 만들어가고 싶은 꿈. 마치 화가가 단 한 번의 붓질을 통하여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듯, 평범한 일상이 더해가면서 의미있는 훌륭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설사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만족스럽지 않다 해도, 당신의 그림이 온통 어둡고 혼란스러운 색깔로 칠해져 있다 해도 이를 밑그림으로 하여 당신의 잠재력에 어울리는 밝고 화사한 색깔을 덧입힘으로써,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의미의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일상의 작은 사물과 편재해 있는 자연의 모든 평벙한 현상들을 아바타처럼 당신의 분신으로 만드는 것,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허고 독특한 감동으로 반응하며 당신만의 몸짓으로 당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면,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그 큰 선물에 대하여 눈을 뜨고 마음을 열 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삶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그 옛날 하나님의 이 선물을 깊이 감사했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오 하나님, 나의 주여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은 경이로움입니다. 나를 향하신 당신의 계획도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일일이 들어 어뢰고자 하여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펼쳐보일 수도 없나이다” 라고. 영혼 깊은 곳에서 환희의 지류가 흘러가고 있다.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