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1969년 어느 날, 7살 나이 차가 나는 남녀가 결혼을 했다. 행복을 꿈꾸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누가 뭐래도, 서로를 만족하게 여기며 행복하게 살겠노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45년 만에 비참한 결혼생활을 마무리했다. 아내는 66살, 남편은 73세의 나이에. 살 만치 살았건만. 알 만한 나이가 되었건만. 세상을 삭힐 줄 알 때가 되었건만. 결국 나잇값을 못하고 말았다.

그 동안 아내는 크나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왔다. 왜? 남편이 자신의 남자관계를 의심하기 때문에.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배우자에게 날마다 의심을 받으며 사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2011년부터 아내가 외출할 때마다 남편은 아내에게 따지고 물었다. “어디 가느냐?”고. 심지어 미행을 하고 일상생활을 꼬치꼬치 따지며 간섭했다. 그러니 하루하루 사는 게 지겹다.

막내딸이 출산 후 복직했다. 그러자 2013년 7월부터 외손자를 돌보기 위해 부부는 경기도의 딸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막내딸 집에서 남편과 함께 지낸 지 두 달이 되었다. 아내는 남편의 지나친 간섭을 도저히 견디다 못해 이혼 소송을 냈다. 물론 남편은 아내의 이혼 요구를 거절했다. 결국 시비 끝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2013년 12월 남편이 ‘함께 살자’고 요구했다. 그러자 아내는 딱 잘라 거절했다. “천금을 줘도 싫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남편은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은 막내딸 집 신발장에 있던 나무 몽둥이로 아내의 머리를 수 차례 때렸다. 아내가 반항하자 남편은 과도를 잡고 아내를 찔러 비참하게 살해했다.

남편은 범행 직후 손에 묻은 피를 씻고 경찰에 가서 자수했다. 하지만 그는 수사 과정에서 아내의 남자관계에 대한 의심을 되풀이하면서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로 돌렸다.

히브리서 기자는 권고한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 안타깝게도 이혼이 자꾸 늘어가는 추세다. 이혼도 너무 손쉽게 한다. 이혼하려는 사람들에게 그 사유는 충분히 있을 게다. 그러기에 섣불리 그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죽했으면 이혼하려는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섣불리 동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값싼 동정이 더 많은 이혼을 부추길 수도 있으니까.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니까. 죄를 행해 내어준 작은 틈이 결국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까.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구구한 변명을 둘러댈 생각을 아예 내려놓아야 한다. 시시한 변명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악을 택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어주는 경계선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결혼을 귀히 여겨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침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밖의 어떤 이성관계를 허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결혼을 더럽히는 자를.

최근 몇 개월 전부터 카톡을 통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친구들과의 그룹채팅이 주선되었다. 오랜 만에 연결된 친구들이라 반가웠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분주하게 ‘카톡 카톡’ 한다. 아내는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채팅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빠져나가면 서운해 할까봐 나가지는 않고 무음으로 해 두었다. 그러더니 몇몇 사람들이 대구에서 모임도 주선했다. 물론 나는 갈 생각도 없었다. 이런 열기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요즘 동창 모임을 통해 불륜이 조장되는 일들이 있다. 얼마나 편한 관계인가. 서로 허물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사이 아닌가. 그러니 가까워지는 데도 경계선이 없다. 한편 50이 넘은 나이니 부부간에도 시들할 때가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불편한 부부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마음의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은 부부라면 훨씬 더. 정서적 이혼 상태에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경계선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게 된다. 어두운 세력은 우리를 어둠의 일에 몰아넣고 만다. 그래서 죄의 수렁에 빠지게 한다. 자유와 평화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노리는 건 역시 사단의 종노릇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결혼을 귀히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저런 변명을 하는 데 관용적이지 말아야 한다. 냉정해야 한다. 단호해야 한다. 말씀의 경계선을 긋는 일에.

목회자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교회 안에 같은 부서에서 섬기는 교사들끼리, 찬양대원들끼리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있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정말로 현실이다. 불가능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가슴 아프게도.

때때로 상담 창구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가슴 아픈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는 말하기도 싫은 일이 있다. 목회자들이 사모를 폭행하는 일. 그것보다 훨씬 더 분노하게 만드는 건, 목회자들이 불륜관계를 갖는 것. 더구나 불륜을 저지른 목회자가 진정한 회개와 근신의 과정을 갖지도 않은 채 버젓이 목회를 하고 있다는 건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세상 신이 다스리는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라도, 예수님의 제자들만은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 성적 윤리에서 타협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향해 말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