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늘 “이겨놓은 싸움을 싸워라”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호수아를 따라서 이스라엘 3백만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갈 때의 일인 것입니다. 이미 그 땅은 이방민족으로 꽉 들어차 있는 땅인데 그 땅에 쉽게 들어가서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불러서 격려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이미 하나님께서 너와 네 백성에게 주었으니 이미 네 땅이 된 것을 네가 들어가서 점령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이방 족속들은 하나님이 이미 무력하게 만드셔서 패배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주신 이겨놓은 전쟁을 싸워 빼앗고 소유하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강하고 담대하여 무서워말고 두려워말고 이겨놓은 싸움을 싸워 빼앗으라는 것입니다.

이겨 놓은 싸움을 싸우라. 누가 이겨 놓았습니까? 하나님이 이미 배후에 적을 무력하게 만들어서 이스라엘이 이기도록 다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정복된 적에게 쳐들어가서 빼앗아라. 누가 그것 못 뺐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섭리하는 것은 그런 섭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약시대 성도들은 원수 마귀에게 정복당해서 아담과 하와 이후로 종살이해 왔습니다. 죄와 허물로 종살이되고 병에 짓밟히고 가난과 저주에 짓밟히고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모든 일에 영혼이 잘못됨 같이 범사도 잘못되고 몸은 병들고 형편없는 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려서 마귀와 홀로 싸우셔서 마귀의 무장을 해제하고 마귀를 정복시켜 놓은 다음에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의 땅을 점령하라. 이미 내가 이겨 놓았으니까. 내가 다 이루어놓았으니까 쳐들어가서 빼앗아라. 우리에게 그 교훈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구약시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예를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 십자가를 통하여

<본론>
1. 십자가를 통해 주신 영적 가나안

영적 가나안 땅을 100% 마귀에게서 빼앗아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이미 이겨놓은 전쟁을 싸워서 소유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세례 요한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 가나안 땅을 점령하도록 해 놓았으니까 침노해 들어가면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쳐들어가면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에 보면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거스리는 율법을 십자가에 다 못박아버려요. 십자가 예수님과 더불어 율법이 다 못 박혀 버리고 그 다음에 우리를 점령하고 다스리던 마귀의 정부와 마귀의 군사들을 무장해제해 버렸다.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던 무기를 해제해 버리고 해방시켜 놓았다. 그러므로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로 이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두려워하지 말고 쳐 들어가라.

우리가 병들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서 주님께 울면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와서 우리 귀에 와서 속삭입니다. 내가 다 이루어 놓았다. 너는 속으로 꼭 그것만 알고 다 이루어 놓았으니까 쳐들어가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강하고 담대하게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 3백만이 가나안 땅을 쳐들어가서 점령한 것처럼 영적인 가나안 땅을 쳐들어가서 소유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죄와 허물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상속해 준 죄, 허물의 종이 되어서 죄가 이끄는 데로 끌려갔고 허무의 올무에 걸려서 벌버둥 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이 지은 죄가 없고 당신이 묶인 허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죄, 나의 허물을 하나에서 열까지 남김없이 십자가에서 걸머지고 못 박혀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기만 하면 예수님께로부터 용서와 의의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로 9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직 죄인이 되었는데 아직 용서와 의를 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인데 주님이 우리 앞서가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청산해 버렸으니 아직 죄인인 우리가 이미 예수님 안에서 일찌감치 용서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지금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인생으로 있는데 주님께서는 2천년 전에 미리 오셔서 벌써 우리의 죄와 불의와 추악을 청산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우리 죄를 미리 주님께서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미리 청산해 버렸어요. 나중에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이 진리를 깨달아서 믿음으로 의의 선물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말하기를 “그렇게 헐값으로 구원을 받느냐.” 헐값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죄를 청산해버리고 태어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서 깨닫게 하고 믿고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구원을 얻지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행위도 없이 구원을 받으면 너무 값싼 구원이 아니냐. 공짜로 구원받았으니 마음대로 살자. 그것은 아닌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처럼 구원을 받아서는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이 그 열매를 맺게 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증거가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순수하게 믿음으로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행위는 구원받은 사람이 장차 주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을 때 상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상급 심판을 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이 일평생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가 그것을 심판하셔서 상급을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허물은 주님이 이미 이겨놓은 것을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이미 내가 다 이겨 놓았다. 이것을 받아들이겠냐 안 받아들이겠냐.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네 것이 되고 안 받아들이면 네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죄가 안 믿는 죄가 무서운 죄인 것입니다. 다른 죄는 지옥에 안 갑니다. 예수를 믿으면 다 청산되니까. 그러나 안 믿는 죄는 주님이 다 청산해 놓은 것을 안 믿으니까 지옥 가는 가장 무서운 죄가 안 믿는 죄인 것입니다. 어떠한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무정하시다. 자기 어머님이 예수를 안 믿고 세상을 떴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하고 사랑이 많으시고 의롭게 사신 분이 없을 정도였다. 자기가 자식으로써 생각해도 어머니만한 훌륭한 인격자가 없었는데 예수님을 안 믿고 세상을 떴는데 하나님이 그런 어머님을 지옥에 보내는 것은 불공평하다. 나는 어머니보다 훨씬 못한 사람인데 나 같은 사람은 예수 믿었더니 구원을 받고 어머니는 구원 못 받았다면 안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까? 그러므로 나는 어머니가 구원받을 줄 확실히 믿고 기도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어요. 어머니가 아무리 착하고 훌륭한 분이었어도 예수를 안 믿는 죄가 가장 무서운 죄이기 때문에 그 죄로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일생을 책임지고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 주셨는데 그 공로가 얼마나 큽니까? 그 예수님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죄는 다른 어떤 죄보다 큽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라하면 예수를 믿지 않은 죄가 지옥 가는 죄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아무래도 불공평한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은 당신은 예수를 믿었으니 주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지만 안 믿은 당신의 어머니는 공평하게 지옥에 갔습니다. 예수님 죽은 그 은혜를 믿지 않으니까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예수님이 여러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차별 없이 여러분은 다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보다 훨씬 훌륭하게 산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그 죄는 형언할 수 없이 큰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허물을 이미 이겨놓은 것을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병도 이미 이겨놓은 원수입니다. 싸워서 빼앗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병을 채찍에 맞으심으로 다 청산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로마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묶어놓고 때렸습니다. 그때는 40에 하나 감한 죄 39 차례를 때리는데 엄청나게 무지무지하게 때리는 것입니다. 채찍 끝이 이렇게 오그라진 쇳조각을 달아가지고 때리기 때문에 때리면 쇳조각이 몸에 박히면 잡아당기면 가죽이 다 터집니다. 그 채찍에 맞은 예수님의 등허리가 피투성이가 되는데 성경은 말하기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 병을 다 짊어지고 갔다. 그 고통으로 너희 병의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벌써 우리 병을 대신 청산하신 것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병을 앓고 있으면 여러분은 불법한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불법적으로 병을 들게 한 것입니다. 합법적으로는 이미 청산된 병인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이미 다 대가를 지불해버리고 여러분은 병 앓을 이유가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귀가 불법적으로 몸에 병들게 해놓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든 여러분은 이 사실을 여러분 영혼이 깨닫고 알 수 있도록 자꾸 입으로 시인해서 외워 놓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자꾸 외울 때 이 말씀이 여러분 영혼 속에 들어가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능력으로 병을 쫓아내주는 것입니다. 믿음에 굳세게 서면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도 이겨놓은 원수인 것입니다. 저주를 받아 하는 일마다 안 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있을 때 주님은 말합니다. 내가 다 이루어 놓았다. 주여 못 믿습니다. 못 믿는 것이 죄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가난을 대신 청산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나가면 주님의 공로로 여러분 범사에 잘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므로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가 받도록 했는데 아브라함에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복을 여러분이 상속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러분을 보시고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되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고 형통케하고 형통케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 번창케 되고 형통케 되어 있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이 그렇게 여러분에게 축복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여러분과 관계가 없지요.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해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이 여러분에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리 들어가서 기지개 켜고 잠들기 전에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매사에 형통한 사람이다. 한 몇 십 번만 외워 보십시오. 마음속에 편안해지고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 하나님이 형통케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못살게 될 수가 없습니다.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 가만히 보니까 굉장히 복 받은 사람인데 좀 싱글벙글 웃으면 좋겠는데 안 웃는 것 같아요. 복 받은 사람이 지금부터 복 안 받은 분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부요한 분 아니십니까? 그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어서 맨발 벗고 들에서 주무시고 동냥해 먹고 사시고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왜 그러느냐. 여러분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난과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눈에는 안 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지만 주님이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 그렇게 된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난해지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이 넘치게 주셔서 주님이 지시하는 사람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쌓을 것이 없도록 부어주시고 난 다음에 내가 준 것을 가지고 없는 사람하고 나눠 가져라. 너는 없는 사람에게 주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우리의 풍부한 것을 많은 사람과 나누므로 나누는 행복과 기쁨조차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다고 여러분 나누게 되면 여러분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얻어 먹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축복을 약속한 것은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 행복해지고 주므로 더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지고 만사에 형통해지고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주와 가난도 이미 이겨놓은 원수인 것입니다. 죽음과 음부도 이미 이겨놓은 원수인 것입니다. 죽으면 음부 즉, 지옥의 대합실에 가있게 되는데 우리는 죽음이 다가오고 음부가 입을 열고 있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죽어서 내 이름으로 음부의 권세를 철폐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낙원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공로로 여러분은 죽음을 이기고 낙원에 들어갈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겁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여러분은 죽어도 살고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셨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부활할 때는 죽음을 이겨야 부활하지 죽음에 지면 부활 못하는데 죽음을 이겨버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이 죽을 필요가 없는 것은 죄가 없는 분이 어떻게 죽습니까? 여러분 죄 때문에 죽었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인데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대신해서 죽고 여러분을 위해서 부활하셨으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두 다 죽었다가 부활한 상태의 사람으로 앉아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5장 55절로 58절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망을 이겼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주를 섬기고 일하면 상급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주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착한 일을 많이 하십시오. 나중에 주님께 상급을 많이 받게 되고 칭찬을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주님 이겨놓은 전쟁이 이것인 것입니다. 죄를 이겨 놓았고 허물을 이겨 놓았고 여러분 보고 믿음으로 받아라. 병을 이겨놓고 치료를 받으라고 하세요. 저주와 가난을 이겨놓고 난 다음에 이것을 받으라고 죽음을 이겨놓고 난 다음에 승리를 받으라고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그냥 종교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 진짜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에게 주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난 다음에 이겨놓고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그 승리를 여러분에게 주셨는데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 알고 여러분 확실히 그렇게 된 것을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나가면 이 그리스도의 승리가 다 여러분 것입니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 죄와 허물과 싸우고 질병과 싸우고 저주와 싸우고 죽음과 싸워서 이겨놓아서 여러분에게 선물 꾸러미를 만들어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여러분 태어나서 세상에 나와서 사니까 주님이 부르셔서 이것 네 선물 꾸러미다 받아라! 이게 뭡니까? 네가 죄에서 용서받고 허물로 사함을 받고 의와 거룩함을 선물로 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병 고침 받고 건강을 받는 티켓도 들어있다. 그리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는 상품권도 들어있다. 부활, 영생, 천국을 주시는 상품권도 들어있으니 이것 받아서 당장 사용하라. 에이~ 안 받을래요. 선물로 주는 것이다. 에이 그런 공짜가 어디 있어요? 나는 그런 것 못 믿어요. 안 받을래? 안 받을래요. 그러면 내가 너를 위해서 헛수고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주님의 십자가 고생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물로 받아라. 주여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받았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입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 오냐, 네 마음대로 써라.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은 사람으로 주님은 보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제가 살아온 78년 동안의 세월을 살펴볼 때 주님께 너무나 큰 축복을 받아서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느냐. 주님이 다 고생하셔서 값없이 선물로 주신 선물을 받아서 여태까지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는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2. 다윗과 사울의 차이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다윗과 사울이 무엇이 차이가 있었습니까? 블레셋 대장군인 골리앗의 도전을 받았을 때 사울왕은 인간의 관점에서 골리앗을 평가하고 미리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니 골리앗은 대장군이요, 감당할 수가 없는 영웅호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싸우기도 전에 사울과 그 군대들은 가슴속에 자기들이 패배했다고 생각을 하고 패배했다고 꿈꾸고 공포심을 가지고 뒤로 물러갔습니다. 사울이 골리앗 장군의 도전을 받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는 이미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8절로 11절에 보면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예 사울왕을 사람의 관점에서 보니까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패배자로서 마음이 위축되고 뒤로 물러가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처신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군대와 싸워서 이기게 되어있다는 것을 다윗은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들로써 하나님과 언약 맺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라 너는 나와 같이 한다. 언약 받은 증거로써 할례를 받아 언약의 표시를 몸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는 것을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과 그 백성들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있지 떨어져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미 골리앗 같은 육의 사람을 정복해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만물을 볼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까 아무리 골리앗이 위대한 장군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더구나 자기가 목동으로서 양무리를 돌볼 때 곰이나 사자가 와서 양의 새끼를 물고 갈 때 그 입에서 빼앗고 곰과 사자들이 덤벼들면 하나님의 이름을 잡고 그 수염을 잡고 주먹으로 쳐서 죽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까 저 골리앗도 곰과 사자와 그 짐승에 비유할 것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36절로 37절에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야훼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사울은 이스라엘 왕으로 대장군이고 이스라엘 군대들이 다 백전용사들이지만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떱니다. 그런데 여기 다윗은 군인도 아닙니다. 군대 갈 나이도 아닙니다. 초립동 약 17살 정도 되는 소년입니다. 잠망지붕을 입고 양떼를 치는 몽둥이를 그대로 들고 나왔는데 사울이 네가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러 가겠다고 하니 싸워다오.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를 가지고 비교를 해보면 골리앗과 사울이 상대가 됩니까? 골리앗 키가 육척이나 됩니다. 온몸을 완전히 놋으로 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17살 먹은 다윗이 양치는 막대기를 들고 아~~~ 깡충깡충 뛰면서 놀던 이 소년이 골리앗을 대적해서 나가겠다고 하니까 상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쥐새끼 한 마리로 밖에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다릅니까?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이미 정복당한 원수로 보고 단칼에 이스라엘을 쳐 없애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윗은 그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생각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 전쟁은 하나님의 것이다. 장군이든 아니든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이긴다.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다윗의 생각에는 골리앗이 곰과 사자같이 보이고 단칼에 곰과 사자를 벨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는 믿음으로 나갔고 큰소리 쾅했습니다. 어디에서 싸움을 이겼느냐. 마음의 생각에서 이미 이긴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갈 때 여러분 마음의 생각으로 나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 나는 전인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 속에서 여러분은 이미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도 살고 영적으로도 삽니다. 여러분 육체적으로 사는 사람은 3차원의 물질세계에 사는 사람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계산해서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 영적으로 사는 사람은 3차원의 영적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의 세계, 생각과 꿈과 믿음과 입술의 고백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사세요.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영적으로 살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물멧돌 다섯 개를 포켓트에 집어놓고 물메를 손에 흔들면서 아~~~~ 하면서 뛰어갑니다. 그러니 골리앗이 보고 뭐 저런게 다 있어? 내가 개인줄 알고 부지깽이 들고 나오냐? 이 녀석아, 빨리 오너라. 나를 개인줄 알고 부지깽이 들고 나오냐? 내 한칼에 네 목을 잘라 버리겠다. 다윗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내가 오히려 너의 목을 베어서 공중에 새와 땅의 들짐승의 밥으로 주겠다. 전쟁은 하나님의 것이라 하나님이 너를 내 손에 붙이리니 두고 봐라! 압도적으로 정신적으로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가서 돌맹이를 덩지니까 돌맹이가 그 이마에 박혀서 뻗어져 죽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감각적으로 살지 마십시오. 인간경험을 토대로 해서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사십시오. 그리고 전인구원을 얻은 여러분, 승리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믿으십시오. 입술로 승리를 고백하고 사십시오. 그런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승리하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차이는 똑같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이 다른 것입니다. 다윗은 영의 사람으로 나가서 위대한 승리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주신 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종교적으로 알지 말고 확실히 알아야 돼요. 너는 어떤 사람이냐. 예수님이 날 위하여 죄와 허물을 청산하고 날 위하여 채찍에 맞으심으로 병을 고치시고 날 위하여 저주를 다 청산하시고 날 위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오중복음을 받은 사람이요, 삼중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진리를 알면 여러분은 자유와 해방을 얻은 사람인 것입니다. 죄와 허물이 겁나지 않습니다. 병이 두렵지 않습니다. 가난과 저주가 무섭지 않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다 여러분 이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이 다가오거든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정복해버린 원수인데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패배한 무장해제 당한 적으로 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승리를 주신 것을 알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두렵지 않습니다. 죄도 두렵지 않습니다. 병도 두렵지 않습니다. 가난과 저주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 조차도 무섭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이긴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이미 이겨놓은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여러분 소유로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를 하십시오. 여러분 몸이 아프고 괴로우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 너희 고통은 물러가라! 일을 하다가 일이 안 되고 저주는 물러가라! 저주는 예수님이 다 청산하셨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부요한 사람이다. 죽음이 다가오거든 아직 100살 안 되었으니 안 죽을란다. 때가 안 되었으니까 미리 다가오지 마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장난치는 것 같지만 장난치는 것 아닙니다.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힌바 된다고 한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입술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입으로 담대하게 싸우십시오. 마음에 여러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여러분의 무기인 것입니다. 그 승리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로 38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사울과 그 군대처럼 물러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선언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입술로 고백하고 시인하고 원수를 대적해서 나가면 여러분에게 승리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지식이 없고 꿈이 없으며 기적을 믿지 않고 두려워 떨며 패배를 말하고 뒤로 물러가면 필연코 버림받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승리가 내 것인 줄 믿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매우 연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아기들은 대개 생후 1년쯤 되면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엄마들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기특해서 아이고 우리 아기 걸었다고 걸음마! 걸어오너라. 걸어오너라! 박수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송아지가 그것을 보면 웃을 것입니다. 송아지는 어머니 몸에서 떨어지자마자 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뛰고 운동하는 것을 동물 세계에서 가린다면 사람이 제일 꼴찌를 할 것입니다. 강아지보다도 못합니다. 동물 올림픽이 없기 다행이지 동물 올림픽이 있었으면 우리 사람은 제일 꼴지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위대함이 올림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 올림픽이 아니고 인간이 꿈을 꾸며 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위대한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가 새가 공중 나는 것을 보고 사람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비행기가 발명이 되고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돌면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져 왔습니다. 아무런 꿈도 없이 패배의식에 젖어 기적도 믿지 않고 두려워 떨며 뒤로 물러가면, 필연코 버림받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꿈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통해서 위대한 꿈을 꾸십시오. 그 꿈을 바라보고 그 꿈을 믿고 그 꿈을 입술로 고백하고 나가면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가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이 세상의 위대한 일은 모두 위대한 꿈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가슴속에 갖는 꿈에 의해서 여러분의 미래 세계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유태영 박사는 “임신한 어머니는 반드시 아기를 낳는 것은 잉태한 사람이 일정한 기한이 지나면 반드시 아기를 낳는 것처럼 꿈도 기한이 차면 반드시 성취된다.”고 말했습니다. 꿈이 없으면 기적을 믿을 수 없고 결국 주님께서 주신 승리를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에 대한 꿈을 가지고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귀를 이길 꿈을 꾸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병이 깨끗이 낫는 꿈을 꾸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 성공하고 넉넉한 부자가 되어서 이웃과 나누는 여러분 자신을 꿈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부자가 되도록 만들었지 가난뱅이가 되도록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만들었지 지옥에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올바르게 십자가를 이해하면 참 기쁘고 평안하게 살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게 되어 있고 범사가 잘되게 되어 있고 강건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 대신에 의를 허물 대신에 성결을 얻어 성령께서 여러분 마음속에 와 계시고 건강하시고 풍부하시고 영생복락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과 함께 기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 덕분으로 평안합니다. 기쁩니다. 축복받았습니다. 승리했습니다. 그와 같이 살게 되면 무엇이 두렵습니까?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지 않겠어요?

우리 찬송가 397장 한 장 부르겠습니다.
1.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2. 온 인류 마귀 궤휼로 큰 죄에 빠지니 진리로 띠를 띠고서 늘 기도 드리세
참 믿고 의지하면서 겁 없이 나갈 때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3. 끝까지 이긴 사람은 흰옷을 입히고 또 영생복을 주시니 참 기쁜 일일세
이 어둔 세상 지나서 저 천성 가도록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여러분은 이긴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화상, 셀프 이미지, 여러분 자신을 바라볼 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받은 이긴 사람으로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기도와 믿음은 이긴 사람의 기도와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의 말은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격려하고 이웃을 격려하는데 여러분 말을 아끼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말로 묶이고 사로잡힌 바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축복해주면 축복이 이웃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 받으십시오. 축복이 여러분 것입니다. 아멘.

/2014. 10. 12. 주일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