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장대현교회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 안경 쓰고 모자 든 이가 방지일 목사. ⓒ홍성사 제공
▲1932년 방지일 목사의 숭실대 졸업 때 가족 친지들과 찍은 사진.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조모와 방 목사. 뒷줄 가운데는 부친 방효원 목사. ⓒ홍성사 제공
▲1937년 5월 1일, 중국으로 떠나기 전 ‘기도 동지’들의 환송회. 뒷줄 왼쪽부터 김진호, 박기환, 김예진, 안광국, 도승주, 앞줄 왼쪽부터 박윤선, 방지일, 마두원. 따로 사진을 붙인 이는 이유택, 김인서(왼쪽부터). ⓒ홍성사 제공
▲1939년 칭다오에서 처음 개척한 중가와교회 제직들과 함께. 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방 목사. ⓒ홍성사 제공
▲방 목사(오른쪽)가 1942년경 김인서 장로와 함께한 모습. 그는 한국에서 첫 손에 꼽을 달필의 문인이며, 그가 펴낸 월간 신앙생활지를 수많은 독자가 읽었다고 한다. 그의 집이 있는 인우골 철야기도에서는 매주 목요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뜨겁게 기도했다. ⓒ홍성사 제공
▲세 명의 기도 동지. 앞줄 왼쪽이 김진홍, 오른쪽이 박윤선, 뒤에 선 이가 방 목사. ⓒ홍성사 제공
▲1950년 칭다오시 기독교연합회 이사회와 함께한 모습. 왼쪽 끝이 방 목사이다. ⓒ홍성사 제공
▲1957년 마지막으로 중국 동역자들과 함께한 모습. 맨 뒷줄 가운데 안경 쓴 이가 방 목사, 맨 앞줄 오른쪽 끝이 방 목사 사모. ⓒ홍성사 제공
▲故 방지일 목사. ⓒ홍성사 제공

10일 소천한 ‘영원한 현역’ 방지일 목사는 2011년 8월과 2013년 12월 사진집 <중국 선교를 회고하며: 방지일 목사 선교 사진집>과 <나의 나 됨>을 펴냈다. 이 책들에는 방 목사의 초기 목회와 선교 모습들이 담겨 있다.

1911년 5월 21일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난 방지일 목사는 1929년 3월 선천 신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정오리교회를 개척했고, 1931년 김진홍·박윤선·윤병식 등과 월간지 <게자씨>를 창간했다. 1933년 평양숭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4년간 평양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다니면서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시무했으며, 1937년 졸업 후 4월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방지일 목사는 만년에 사진집 두 권을 발간했다. <중국 선교를 회고하며>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선교지였던 산동성 선교사로서 소장해 온 선교 사진집이며, <나의 나 됨>은 방 목사의 가족사진과 학창 시절, 장대현교회 시무 시절 사진과 자료들을 한 데 모은 사진집이다. ⓒ홍성사 제공

방 목사는 1937년 4월 8일, 총회 파송 중국 산동성 선교사로 떠나 21년간 그곳에서 봉직한다. 1940년부터 추방당한 1957년까지 중화기독교 산동대회 외인 총간사와 중화기독교 교동노회 래양노회 겸임 간사를 맡으면서 청도 지역 5개 교회를 개척했다. 1957년 귀국 후에는 국내에서 최근까지 활발하게 사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