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남녀 사랑의 두 번째 단계는 결국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성경은 천국을 성도와 그리스도의 ‘어린양 혼인잔치’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결혼 예식 설교에 많이 쓰이는 구절이다. 결혼 예식의 아름다움과 그에 담긴 복된 모습을 살펴보자.

1) 모든 결혼은 아름답고 찬란하다(6절)

누가 결혼을 ‘바보 같은 주제’라고 했던가. 여기 아름답고 찬란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결혼 모습을 보라! 유대인들의 결혼 예식은 밤에 시작되었다(마 25:16). 우리나라도 혼인 예식 전날 밤에 함(函)이라는 것을 판다. 상인들이 향품으로 만든 몰약과 유향의 향기를 날리며 마치 연기 기둥처럼 사막을 뚫고 걸어오는, 힘찬 아름다움과 찬란한 모습을 보라! 몰약과 유향 향기는 새벽이슬처럼 신선하고 찬란하고 강렬하다. 신부의 가마와 혼례복은 이 시리도록 투명한 몰약의 향기로 가득하다. 유향은 여러 종류의 나무 표피에서 뿜어 나오는 진액을 채취하여 모은, 향기 강한 향료였다. 유향은 일찌감치 값진 선물(창 43:11)이나 의약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렘 8: 22; 46:11). 몰약과 유향과 온갖 향기를 내어 뿜으며 거친 들을 뚫고 오는, 이 아름다운 신부의 영광된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시에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임재를 알리셨다. 신랑 되신 예수님도 구름 타시고 영광 중에 오실 것이다!

누군가 결혼을 위해 거친 들판과 사막을 뚫고 다가오는 모습은 아름답다. 우리 신앙도 반드시 인생의 거친 들판을 거친다. 그 이유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하려 하심이다.

2) 결혼은 견고하다(7-8절)

이스라엘 최고 신랑감 솔로몬의 결혼 모습을 보라! 신부는 지금 최고 신랑감 솔로몬이 보낸 가마를 타고 오고 있다. 신부는 혼인 잔치를 위해 파송된, 이스라엘 용감한 병사 육십 명의 호위 속에 오고 있다. 병사들은 모두 칼을 들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결혼은 아름답고 찬란한 것만은 아니다. 결혼은 본래 이렇게 출발부터 격식 있는, 견고한 사회적 계약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아플 때나 즐거울 때나 서로가 서로에게 강력하게 매인다. 결혼은 그 견고함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술람미 여인의 고향 수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80Km였다. 언제 도적과 맹수의 습격이 있을지 모르는 거친 들판에서, 허리에 칼을 차고 든든하게 무장한 칼을 능수능란하게 잘 쓰는 정예 용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신부가 온다. 지혜로운 신랑 솔로몬은, 아마 자신이 직접 가마를 대동하고 신부를 호위하며 함께 왔을 것이다. 아내는 이렇게 배려할 줄 아는 남편을 사랑한다.

성도도 보이지 않는 성령과 천사와 그리스도의 병사들의 불 성곽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라. 스가랴서에 보면 예루살렘 성읍이 흥왕하자 서민들은 성곽 밖으로 나가 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 밖은 도적과 맹수의 소굴이요, 외적이 침입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받는 지역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곽 밖으로 내몰린 백성들을 향해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불 성곽으로 이들을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불 성곽은 겉으로 견고한 솔로몬의 호위 용사들보다 굳건하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단 말인가(롬 8:36-39).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히 13:5).

3) 결혼은 최고의 행복이요 기쁨이다(9-11절)

솔로몬은 가마를 레바논 나무로 만들었다. 아름답고 견고한 레바논 백향목이나 잣나무였을 것이다.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으로 엮어 있었다. 이보다 더 호화롭고 찬란한 가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당연히 없다.

이제 아가서 본문은 신랑 신부의 행복과 기쁨의 모습을 보라고 외친다.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이 장면을 보라! 최고 신랑감 솔로몬이 최선을 다해 신부의 최고 기쁨을 위해 최고로 준비한 결혼이었다. 솔로몬의 어머니가 그에게 씌워 준 면류관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관이다(왕상 2:13).

4) 결혼은 언약 사랑임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은 언약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절제한 것이 아니다. 관계된 사랑이다. 아무런 언약도 기약도 없는 하룻밤 사랑이 아니라 질서가 있는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표현하신다(창세기 2장 8-15절 참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선악의 구별을 아는 유일한 생물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죄라는 개념이 있다. 에덴동산에 언약의 징표를 두셨던 이유도, 하나님의 사랑은 무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깨져버리면 생명도 깨진다. 단순 연애와 부부의 차이(무분별과 언약의 차이)를 구별하라. 멧돼지가 고구마를 훔쳐 먹고 죄책감을 가지는가? 강아지가 사람 물고 죄책감을 가지는가? 강아지는 사람을 물 필요가 있으면 짖으며 또 문다.

5) 결혼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다.

놀랍게도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이다. 최초의 결혼 예식은 에덴동산에서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 사람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친히 중매와 주례를 서셨다. 예식장은 에덴동산이요 하객들은 하나님의 주변 피조물들이었다. 새들이 노래하고 나뭇잎은 그늘을 만들고 꽃은 향기를 뿜었다. 하나님의 빛이 조명을 만들었고 벌레들이 날아들었다. 구름과 바람은 혼례식장 주변을 맴돌았다. 초청장은 없었어도 동물들도 하객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신랑 신부의 기쁨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부는 신랑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다. 결혼 전통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모든 결혼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따른다. 이 귀한 복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모든 신랑 신부들이여! 결혼에 담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라!

하지만 안타깝다. 이 혼인 예식이 에덴동산에서 열린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이었다. 하나님께서 직접 중매하시고 주례 서신, 처음이자 마지막 온전한 예식이었다. 이 온전한 결혼에도 마귀의 유혹이 들어왔다. 아담과 하와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하물며 보통 부부들의 결혼에는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인가. 따라서 모든 결혼은 죄와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결혼하라!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말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 게 아닐까? 이런 역설도 있다. “좋은 결혼이 극히 적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위대한가를 보여 주는 증거이다.”

신앙적 행복과 기쁨은 성경에서 늘 결혼에 비유된다. 천국 혼인잔치를 기억하라. 천국은 최고의 기쁨과 행복의 처소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우리 상처와 아픔과 눈물을 씻어주시고 닦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처럼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라. 성도는 신부처럼 그날을 준비해야 한다. 성경은 결혼(아담과 하와)으로 시작해서 결혼(천국 혼인잔치)으로 해피엔딩하는, 대우주 여정의 책이다. 인생은 이 행복과 기쁨과 소망을 향한 드라마이며, 그 소망의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랑 풍경9-결혼 자격: 아빠

5살 에스더는 ‘목사님, 나는 아빠 얼굴을 하나도 몰라요’라고 힘없이 말했다
6살 에스라는 ‘목사님, 이제 아무리 기억해 보려 해도 아빠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아 ! 참! 나!’라고 아주 어른스럽게 말한다
7살 사무엘은 자기 아빠 차 색깔만큼은 결코 잊지 않으려 무던 애를 쓴다
색깔만 비슷하면 ‘저기 우리 아빠 차 간다’라고 늘 확신을 가지고 외쳤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정하신 짝을 사람이 나누지 말라’했다
모두들 참 생각이 깊다

어린 친구들 모두
간절히 아빠를 그리워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늘 구박받는 자격 없는 아빠이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