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희 목사. ⓒ이대웅 기자

한국교회는 ‘행함’의 표상이었다. 근대화와 독립운동,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회의 신뢰도 하락은 결국 ‘행함’의 부재에서 찾아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故 김용기 장로(1912-1988)가 설립한 가나안농군학교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국민 의식을 변화시켰고, 새마을운동의 모태로 나라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현재 가나안농군학교는 양평과 원주, 밀양 등 국내 3곳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빈곤개발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현희 목사는 국내 세 번째인 밀양 가나안농군학교를 섬기고 있다. 기업인 출신인 그는 사재를 털어 수천 평의 땅을 매입했고, 건물을 지어 학교를 세우고 비영리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학교 사업을 하지 않으면 전 재산이 국고에 귀속되도록 함으로써, 공공성과 순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어린 시절 간절한 꿈을 꿨고 그것이 꿈에 그치지 않도록 실천을 통해 많은 결실을 이룬 그는, 최근 자신의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담을 모아 <행함>을 펴냈다. 다음은 “실패와 시련의 시간 속에서 진짜 꿈과 그 꿈의 경영 원리를 발견했다”는 이 목사와의 일문일답.

-가나안농군학교를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김용기 장로님이 이 운동을 시작하신 지는 벌써 84년째입니다. ‘가나안농군학교’라는 이름으로는 60년째이지요. 김 장로님이 운동을 시작할 당시 우리나라는 피폐한 상태였고, 일제 치하였습니다. 독실한 신앙인이셨던 김 장로님은 약관의 나이에 독립운동의 꿈을 품고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조국으로 돌아가서 백성들을 살려 달라. 그 힘든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었지요. 그래서 장로님은 돌아오신 후 농민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농사꾼들도 군인처럼 살자’며 개척운동을 펼쳤고, 그 출발이 ‘국민들을 복 받고 잘 살게 하자’는 복민운동이었습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대명제 아래, 깊이 들어가면 근로와 봉사, 희생을 강조하셨지요. 결국 ‘예수님처럼 하라’며 예수님과 그의 삶을 전하신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몸 바쳐 생명 걸고 하자, 겸손히 섬기자, 제대로 알도록 배우자 등 ‘예수님의 삶처럼 살자’는 것이지요. 저희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효(孝)’입니다. 자신이 회복되면 가정도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면 자신도 회복되지 않습니까? 가나안농군학교는 부모만 잘 섬기는 효가 아니라, 십자가(十) 형태의 효를 말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수직과 형제·자매·부부의 수평 관계를 잘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회에서도 화평을 만들고 행복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직장인들이 의식교육차 많이 방문한다고 들었습니다.

“부산 한진중공업 임직원들이 차례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조 센 곳 있잖아요(웃음)? 처음 들어올 땐 눈 찌푸리고 잔뜩 경계하지만, 하루 지나면 달라집니다. 첫째 날 저녁 효에 대해 듣고 나면 무장해제됩니다. 나갈 때는 제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만큼 요새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야기해도 듣지 않지요. 부모들이 말하려 하면 자녀들은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더 깊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본질적 리더십, 공동체 생활, 죽음이란 무엇인가…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교육생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때로는 엉엉 울기도 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눈을 틔우고, 온전한 관계로의 회복을 도와줍니다.

저희는 좀 힘들게 교육시키는 편입니다. 새벽 5시부터 밤 10시 반까지 빡빡하게 진행되지요. 처음엔 그래서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웃음). 하지만 농장 실습 하면서 협력도 해 보고 자기 자신의 깨어짐을 경험하면서, 나갈 때는 모두 친구가 됩니다.”

▲이현희 목사. ⓒ이대웅 기자

-에피소드가 있다면.

“울산 한 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이 왔습니다. 교육부와 마찰이 생겨 문을 닫게 된 학교여서 1학년은 없고 2-3학년만 남았어요. 꼴등에서 30명까지 데려왔는데, 주위에서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잘 것이고, 나오는 말마다 욕일 것’이라고요. 저도 겁이 났지요.

처음엔 진짜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학생들이 누워버렸습니다. 그래서 다 깨워가며 하나씩 들려줬습니다. 하지만 ‘예외 없이’ 이틀째가 되니 조금씩 풀리더라구요(웃음). 나갈 때는 학생들이 ‘또 올 수 없느냐’, ‘1주일만 더 있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들 중 한 학생이 깨달은 바가 있어, 학교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년 뒤에 학생회장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엔 아이들을 두드려주는 곳이 없는 것 같아요. 비위만 맞춰주거나 방관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학교도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지요. 부딪치면 선생만 손해 보니까요. 요즘 학생들, 조금만 수틀리면 스마트폰 꺼내서 동영상 촬영해 버리니까요….

저희는 철저히 교육생 자신에게 먼저 중점을 두고, 가정으로 이를 확대합니다. 또 저희가 섬기는 모습들을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저렇구나’ 하시고 자연스럽게 크리스천이 되기도 하지요. 저희 학교에 크리스천은 10% 정도밖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대부분 비기독교인들이지요. 아, 아까 한진중공업 말씀드렸지요? 직원들이 왔다 간 그 해, 노조 타협이 한 번에 이뤄졌다고 해요(웃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오랜 시간 기업을 경영해 오시면서 ‘실패’도 많았다고 하셨는데요.

“위기가 세 번 있었는데, 세 차례 모두 망했었지요(웃음).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부도를 많이 당했습니다. 거래처에 나쁜 사람 한 명 있으면 금세 몇십 억원 부도가 나 버렸어요. IMF 때는 80억원 부도가 났습니다. 연쇄 반응이었지요. 하지만 ‘가나안 정신’으로, 허튼짓 하지 않고 직원들을 동생처럼 자식처럼 아꼈다고 자부합니다.

20대 중반부터 사업을 시작해, 30대 중반에 첫 실패를 맛봤습니다. 신앙이 좀 어정쩡하던 때였지요(웃음). 재고는 쌓였는데 공장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영업부터 출발한 사람으로서, 직접 2톤 발차에 물건 싣고 부락을 돌아다니며 팔기 시작했어요. 밤이면 트럭 위에서 잤습니다. 그때 누워 하늘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지요. 어설픈 신앙인으로서, 우선순위가 엉망임을 깨달았습니다. 의리와 신의를 중시하다 보니 친구가 너무 많았고, 그걸 남자답다고 생각했지요. 제대로 믿기 위해 친구 대신 하나님을 첫 번째로, 집사람을 두 번째로 바꿨습니다.

IMF 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80억원 부도가 나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직원들이 아무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이 회사를 살렸다고 봐도 됩니다. 저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원래 간이 안 좋아 간 문제인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성 당뇨였습니다. 그때 제 물질관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상당히 편해졌습니다. 재물은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되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필요도 없게 됐지요.

잘못한 것이 없었기에, 거래처들에게도 잘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홈쇼핑에 직접 출연해 ‘제품에 이상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며 ‘100% 환불’을 보장했습니다. 그게 믿음을 주면서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하고, 재기하게 됐습니다. 어찌 보면 가나안농군학교도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만드셨습니다. 어렵게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직원들에게 경영권을 넘길 이유도 없었구요. 힘든 사람들 변화시키는 일에 섬길 수 있어 신이 납니다(웃음).”

상세정보 

-책 제목이 ‘행함’인데요,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이 시대에 어떤 ‘행함’이 필요할까요.

“행하는 일이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행함 없이 조용히 평균만 가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요. 행함에는 ‘도전’이 따라 붙습니다. 이는 실천적 삶을 의미하고, 결국 ‘해내야’ 합니다. 저는 평생 ‘실천가, 행동파’ 였습니다. 행함 없는 계획은 아무리 좋아도 무의미합니다. 해내야 따라오는 사람도 생깁니다.

예수님의 삶도 그러했지요. 숱한 어려움과 모두의 배신 속에서도 끝내 하나님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행함’이 있었기에, 부활도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있을까요? 실천의 결과는 이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목표를 이루다 보면, 숱한 어려움과 고난과 비난이 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를 이뤄냈을 때, 많은 유익이 있고 본보기가 됩니다. 성경에서도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장은 행함이 힘들어도, 지나고 보면 내게 유익입니다. 이를 통해 성장했고, 뚫고 나온 만큼 마음도 넓어지며 하나님과의 관계도 깊어지고 주위를 품을 수 있습니다. 행함 없는 삶은 간단히 말해 ‘요령의 삶’이지요.

‘행함’의 의지만 가진다면, 누구나 100% 성공할 수 있습니다. 꿈과 간절함만 있다면, 동기부여를 통해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말입니다. 제가 살아 보니, 숱한 어려움도 다 극복이 되더라구요. 구체적인 이야기는 책에 적혀 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