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담임).

어제 처음 가을이 오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흔들리는 나뭇잎의 느낌이 전과 같지 않아서입니다. 올 가을은 정말 하루 한순간을 소중하게 음미하고 누리며 지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계절마다 소중하고 아까운 각각의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가을은 특히 그렇습니다. 밥 안 먹어도 기분 좋을 것 같고, 바라만 보아도 그 풍광이 가슴을 푸근히 만듭니다. 가을은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시적 정서를 우리 가슴에 선사합니다.

제게 있어서 올 가을은 감회가 새롭습니다. 작년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에 저는 예기치 않은 발병으로, 가을 내내 병원에 입원하였거나 병원을 오고가며 치료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가을이 가 버리고, 거는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한 해의 가을을 놓쳤습니다. 가을만 되면 숨막히는 가슴의 감격이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보낸 작년에 이어, 문득 올해도 가을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올해는 감정의 한 줄 한 줄도 다 놓치지 않겠다는 애틋한 욕심이 생깁니다.

삶이란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그 무엇에서 삶의 희열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힘이 돼서 우리가 하고자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합니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고, 따스한 마음 표현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고, 기도하고, 말씀에 취하고, 계절에 취하고, 걷기도 하고, 숨차게 무엇인가를 위해 달리기도 하고, 하여간 생각만 해도 벅찬, 좋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올해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가슴 졸임이 아니라, 그냥 마음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고 싶습니다. 삶이란 때로 통제를 통해 아름다움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흘러가는 길을 열어줌으로 아름다움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올 가을에는 특히 사람을 위로하기를 기대합니다. 내가 기쁘고 푸근해지면, 그냥 옆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푸근해지리라 믿습니다. 강하게 살아야도 하고, 부드럽게 살아야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삶이란 강과 약의 조화와, 그 둘이 꾸밈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어울림으로 인해 더 깊어집니다. 이 가을에는 강한 분들은 부드러워지시고, 약한 분들은 더 강해지시어, 계절의 한 호흡 한 호흡이 가슴 시리도록 그립고 애틋한 기쁨과 감격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가을이 되면 편지를 쓰는 그 마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분당중앙교회 담임 최종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