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근 박사.

현대기독연구원 주최 ‘20세기 한국 복음주의 역사지형도 그리기’ 연속강좌가 18일 오후 서울 논현동 서울영동교회(담임 정현구 목사)에서 개강했다.

강사로는 지난 여름 ‘20세기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를 연속 강연했던 에든버러대 출신 교회사 전공 이재근 박사(웨신대 겸임교수)가 나섰다. 이날 첫 강연 주제는 ‘한국교회사/기독교사 연구방법론, 세계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 역사지형도 그리기’였다. 강연에서는 한국 기독교사의 범위 설정과 연구방법론의 역사 등을 개관한 후, 이어질 20세기 한국 복음주의 역사 강연의 방향을 소개했다.

이재근 박사는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를 해석하고 정리하는 방식을 주제의 범위 중심으로 따지자면 한국 ‘교회’사, 한국 ‘기독교’사, 한국 ‘종교’사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기독교 역사가 짧고 기독교인과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거의 동일시되는 기독교 신흥 세계에서는 기독교의 역사가 곧 ‘교회사’를 의미한다”며 “우리 상황에서는 기독교가 거의 교회라는 조직 안에만 머물러 존재하고, 교회 외부의 기독교 세계나 전통, 문화라는 것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므로 한국 상황에서 주로 신학교 강의실에서 다루는 한국 기독교사는 곧 한국교회사였다. 반면 세속의 정치·경제·사회·문화와의 오랜 연대와 혼합, 경쟁, 투쟁 등으로 두 진영이 서로 관계하고 결속해 온 서구 국가의 ‘기독교 역사’는 교회사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역을 의미한다. 교회만이 아니라, 교회와 연관을 맺은 사회의 모든 조직과 제도, 인물이 다 이 학문의 대상이 된다는 것.

이 박사는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 기독교사 역시 기독교가 한국에 뿌리내릴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인물, 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사실상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며 “따라서 교회사가 아닌 ‘기독교사’로서의 한국 교회 및 기독교 연구는 필수적으로 정치·문화·종교·민족·민중·외교·사회운동·독립운동·제국주의·근대성 등 한국사 제 영역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연구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늘날 새로운 트렌드인 ‘종교사’ 영역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 한국의 종교문화는 어떤 의미에서도 진공상태가 아니었다”며 “한국 땅에 씨로 뿌려지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과 열매를 맺은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도 100% 순전한 기독교일 수는 없고, 한국 기독교를 종교사의 배경에서 고찰하는 것은 기독교 발전의 이런 토착화 과정에 대한 전제를 수용함으로써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사/기독교사를 종교사의 한 영역으로 간주하는 인식은 타당하다는 것.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종교사에 종속시킬 때는 자연히 기독교 고유의 역사경험이 배제되고, 그 가치와 의미가 흐려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미국 기독교 역사학자 마크 놀(Mark A. Noll)의 책 <미국·캐나다 기독교 역사> 서술 방향을 언급했다. ‘기독교 교회들이 신앙과 실천과 제도의 독특한 결합체를 발전시켜 왔다고 말하는 것은 인류 공통의 종교경험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다. 개별 종교들의 역사를 혼합하는 일이 고상한 모험이라면, 기독교 역사를 그 고유한 방식대로 연구하는 것도 가치 있는 모험이다.’

이 박사는 “이런 관점에서 저는 연속 강연의 초점을 주로 한국 기독교 역사, 특히 개신교 역사에 두려고 한다”며 “그러나 관심의 영역을 교회의 역사에만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근 박사는 이후 한국 기독교사 연구방법론으로 △백낙준의 선교사관 △민경배의 민족사관 △주재용의 민중사관 △이만열의 실증사관 △김영재의 교회사관 등 세대별로 소개하면서, “지난 100여년 역사 속에서 헌신적인 선구적 연구자들을 통해 전수된 다양한 연구방법론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갖고 한국기독교사 또는 교회사 발전에 기여했다”며 “후속 세대의 과제는 이 모두를 종합하고 분석하면서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취합하여 새로운 세대를 위한 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창의적인 열매를 거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질 7주간 강연을 통해 위 다섯 가지 연구방법론의 장점을 최대한 취합해, 균형 잡힌 동시에 엄정한 역사해석을 근거로 가능한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역사해석을 구현할 계획이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한국사의 제 영역 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의 흐름과의 관계까지 염두에 둔 한국 기독교사를 소개하려는 포부를 품고 있다.

이 박사는 “본 강좌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지난 여름 열린 ‘20세기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 강좌와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라며 “오늘날 한국 기독교 교세와 정체성을 지배하고 주도하는 개신교 복음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을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역사에서 등장한 주요 사건 및 주제들과의 연관성 속에 살핌으로써,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가 세계 기독교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특징과 위치,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위의 다섯 가지 연구방법론과 차별되는 이 박사의 키워드(keywords)는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 복음주의에 대해선 “한국 기독교 전반을 지배한 개신교의 정서는 18세기 이래 영미권에서 일련의 부흥과 사회개혁, 선교운동 등을 통해 부상하고 성장하고 확산된 것”이라며 “한국 기독교는 서구 선교운동을 통해 전파된 복음주의 기독교가 20세기 한국의 독특한 정치·문화 상황에서 토착화·상황화돼 탄생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했다.

‘세계 기독교’에 대해 그는 “오늘날 부상하고 있는 세계 기독교학(Study of World/Global Christianity)의 방법론을 따라 세계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경험한(glocalized)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의 위치와 의미를, 세계 기독교 전체 지형 및 한국 현대사 전체 흐름과의 관계 속에서 그려내는 것이 강연의 방향이자 목표”라며 “선교 주체인 영미 기독교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 한국 기독교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해 보고, 동시에 다른 비서구 선교현장 특히 중국 및 일본에서 성장한 기독교가 한국의 기독교와 어떤 점에서 유사한 연속선상에 있으며 어떤 점에서 구별된 불연속성을 지니는지 비교·대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강연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복음주의’라는 대전제 아래, 9월 25일 2주 ‘기원: 초기 개신교 선교사의 정체성’, 10월 2일 3주 ‘확장: 평양에 떨어진 성령의 불’, 10월 16일 4주 ‘분화: 기독교 민족운동과 새로운 신학의 출현’, 10월 23일 5주 ‘변절: 제국과 교회, 그리고 신사참배’, 10월 30일 6주 ‘분열: 교파 분열의 아픈 역사와 새로운 시작’, 11월 6일 7주 ‘부패: 자본주의와 독재 앞에 선 기독교’, 11월 13일 8주 ‘에필로그: 한국형 복음주의 운동과 새로운 대안’ 순으로 진행된다. 교재 없이 매주 강의안이 배포되고, 강연에서 주제에 해당하는 논문이나 책 등의 참고문헌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