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할렐루야. 오늘은 참으로 좋은날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예배드리는 날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 예배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들 축복의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모든 예배마다 폭포와 같이 은혜를 쏟아부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가 지켜보기만 하면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을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옆에 분하고 인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다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어차피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 미리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가대가 태산을 넘어 합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기만 하면 우리에게 하늘의 영광이 임하는데 그와 같은 영광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 바랍니다.

(복음성가 234)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 구원하여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고 날마다 풍성한 은혜로 인도하여 주시고 계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여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오니 주님 예배를 열납하여 주시고 이 시간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기적과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변화되어 세상에 나아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의 설교제목은 “우겨쌈을 당하여도”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10절의 말씀을 가지고 “우겨쌈을 당하여도” 이 같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함께 따라 하시겠습니까?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겨쌈을 당하여도”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는 일이 다 잘되기를 원합니다. 그냥 세상적으로 말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보면 그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다 잘되는 것만 아닙니다. 예고 없는 문제와 어려움이 우리에게 몰아 닥쳐옵니다. 어떤 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큰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때에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희망이 없다하고 자기 목숨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어떠한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절대로 절망하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절대 희망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린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두 번 보냈는데요. 두 번째 보낸 편지에서 우리를 질그릇에 비유하면서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보배이신 예수님이 담겨 있다고 하는 귀한 은혜의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질그릇과 보배
 첫째로 질그릇과 보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질그릇과 같은 존재에요.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드는데 그렇게 그 질그릇 값이 비싸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보니까,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우리를 빚으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사야 64장 8절에 보면,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땅을 밟고 다니고 가장 흔한 것이 진흙입니다. 진흙은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이처럼 흔하고 별로 가치 없고 어디 아름답게 보일만한 것이 없는 진흙 같은 존재인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이 그릇을 만드신 거예요. 할렐루야. 진흙 같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택함을 받기만 하면 귀한 존재로 우리의 삶의 모습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진흙으로 질그릇을 만드셨는데 이 진흙으로 만든 질그릇이 약해요. 잘 흠집이 나고 잘 부서집니다. 우리 모든 인간의 죄 가운데 거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질그릇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 쉽게 상처를 받아요. 누가 뭐 말 한마디만 하면 탁 마음에 꽂혀서 질그릇에 금이 가듯이 마음에 상처 자국이 남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키라고 했는데 마음을 지키지 못해 무너지는 것입니다. 쉽게 죄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나쁜 생각이 들어와서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가게 되는 그러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부끄럽고 연약하고 문제 많은 우리를 하나님이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는데 그 질그릇과 같은 우리의 삶속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릇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그 그릇의 이름이 정해지는 것이죠.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고,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고, 반찬을 담으면 반찬그릇이고, 보물을 담으면 보물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니까 예수님그릇이 됐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귀한 존재가 됐는지 몰라요.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난 사람은 자기에 대한 패배한 모습을 실패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잊지 않고 삽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어릴 때부터 버림받았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제가 어릴 때 버림을 받아서 아버지와 앉아서 따듯하게 밥을 먹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저는 늘 친구들이 가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러웠어요. 식당에 가서 가족들이 앉아서 오순도순 밥 먹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외롭게 자라고 버림받은 인생처럼 자랐지만 그러나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가장 귀하신 예수님이 내 마음 가운데에 오셔서 내 존재를 바꿔주셨습니다. 버림받는 존재에서 쓸모없는 존재에서 가장 사랑받고 존귀한 존재로 우리를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옛날에 거울을 보면 “아이고 그렇게 살아 뭐하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문제만 다가오면 죽겠다고 그러던 내가 거울을 보면 막 마음이 편해지고 “주님이 나와함께하신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주님이 보시기에 귀한 존재이다.” 할렐루야! 이러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하세요.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매우 귀한 존재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존재가 바뀌었어요.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누구가 여러분을 무시하고 여러분을 사람 취급하지 않아도 신경 쓸 것 없어요. 왜, 보배되신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시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늘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
둘째로 보배 되신 예수님을 모신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질그릇인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그릇 안에 계신 예수님께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린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꽉 붙잡고 주님 중심으로 살기만 하면 위대한 능력이 우리로부터 강물처럼 흘러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여러분 또한 어려움과 문제와 고통과 괴로움이 여러분을 둘러싸도 그것 바라보지 마시고 주님만 바라보세요.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이요 죽은 사람도 살리고 온갖 병자를 고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음에도 자기 병은 못 고쳤어요. 그래서 세 번이나 간절히 그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를 했는데 주님이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약해졌을 때 네가 그 안에서 온전해지고 네가 내 능력이 나타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병인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쓴 모든 서신들을 검토해 보면 사도 바울이 눈이 아주 나빴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위로함을 많이 받습니다, 안경을 썼기 때문에. 그런데 눈이 얼마나 나빴냐 하면 이렇게 바짝 가까이에 대고 봐야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나빠서, 평소에 편지를 쓸 때 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눈이 너무 나쁜 것이 그에게 약점이 아니었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눈이 나쁜 것도 복이에요. 왜, 세상에 못된 것들이 잘 안보이니까. 주님만 잘 보이니까. 할렐루야. 그래서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해서 주신 말씀이 고린도 후서 12장 9절에,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그러니까 본인이 그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우리가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낮아지고 깨어지기만 하면 주님의 능력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구약 사사기에 보면 삼갈이라고 하는 사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소 모는 막대로 600명이나 넘는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사사기 3장 31절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아니, 소 모는 막대기로 검을 들고 나와서 창을 들고 나와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막대기로 600명을 쳐서 죽였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했습니까.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혜 없는 자를 들어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로 29절에,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교만을 버리고 깨어지고 낮아지기만 하면 질그릇 같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다 같이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할렐루야. 내속에 계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긴 나 예수 그리스도가 너와 함께 하노라.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요. 내 힘을 믿고 의지하면 넘어지고 쓰러지고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지만,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여러분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할렐루야. 로마서 8장 37절에 위대한 선언을 우리가 다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넉넉히 이기느니라.” 간신히 겨우 엎치락뒤치락하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할렐루야. 우리의 힘을 믿고 의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가 실수해서 넘어지고 쓰러져도 주님이 또 붙잡아 일으켜 주시고 또 일으켜 주세요. 잠언서 24장 16절 말씀을 보세요.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시편 37편 24절에,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얼마나 감사한지,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니까.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시는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저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16억의 이슬람 인구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유해석 선교사님. <높여주심>이라고 하는 책을 내셨어요. 이 책에 그의 선교사역을 잘 소개하고 있는데요, 1990년부터 24년 동안 이집트를 무대로 이슬람 선교사로 활약하면서 16억을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업이 부도가 나서 온 가족이 길거리로 내 쫓기고 그때로부터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만 했던 불우한 시절을 지냈습니다.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못하고 중3때 한 전자회사에 취직했지만 공장이 또 문을 닫아서 그는 깊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습니다. 16살 때 음독자살, 수면제를 사다가 먹고 자살을 시도했는데, 깨보니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프고 막 엉망이 되었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이 그를 살려주시고 그를 주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가 전도를 받고 교회를 나오게 됐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해서 눈물을 펑펑 쏟고, 회개하며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버림받은 인생이 자살을 시도했던 인생이 예수님을 믿고 난후에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은 이단 종교를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아들을 쫒아냈습니다. 그래서 교회 기도실에서 자면서 기도하는데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꿈을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 은혜 가운데 권사님 한분이 도와주셔서 총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원도 다닌 후에 1990년 4월달에 한국 오엠 선교회 1기생으로 파송받아 영국에서 선교 훈련을 받고 이집트 빈민가에서 첫 사역을 시작합니다. 80퍼센트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인으로 가득한 그곳에 얼마나 가난하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환경에서 사는지, 잠자리에 누우면 빈대가 드글드글해서 온몸을 물어뜯습니다. 참 희한하게요, 잘사는 나라에서는 그러한 벌레들이 잘 안 나타나는데, 우리도 기억하시죠. 6.25 후에 빈대, 벼룩, 이 삼총사가 얼마나 물고 뜯었는지요. 이 젊은 세대들은 그리 얘기해도 그게 뭔가 인터넷을 뒤져봐야 알지요 우리 4,50대 넘으신 분들은 다 그 삼총사에게 물어 뜯겨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또 네 번이나 말라리아를 앓는 동안에 한쪽 귀 청력을 상실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온몸이 아파 누워있는 이런 고난의 시간을 지냈습니다만은, 그 고난의 길은 결국 영광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가 FIM선교회를 영국에서 조직하고 영국 교회의 그 쇠락과 무슬림이 영국에서 극하게 번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곳에 다시 선교의 불을 지펴야 되겠다. 영국의 웨일스 태생의 토마스 선교사님이 한국에 와서 첫 순교를 했습니다. 그곳에 다시 선교의 불길을 일으키자 하는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무슬림 선교 전초기지를 만들고 헌신하고 계신데요,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깜깜한 절망 속에서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때 주님이 한 줄기 빛으로 찾아오셔서 기댈 곳 없는 저에게 능력의 언덕이 되어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저의 인생을 그 능력으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품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이슬람 영혼들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어느 순간도 하나님께서는 제게 손을 떼신 적이 없었습니다. 죽기를 소망했던 열여섯 살의 소년을 16억 영혼을 품은 거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며,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무릎 꿇는 자리에서 주님은 비로소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극한 절망에 처했을 때 우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해 나올 때 바로 앞에 홍해가 가로막히고 뒤에 바로의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이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입을 열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우리를 죽을 곳이 없어서 여기까지 끌고 왔냐고. 그때 모세가 기도하고 이와 같이 외칩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에,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말은 원망 불평하는 입을 닫고 가만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지켜봐라. 우리 사람들은 문제만 생기면 벌써 마음이 막 다 무너져가지고 입을 열면 “나 죽었어요. 큰일 났어요. 어찌하면 좋아요.”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있어 주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지켜봐라.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를 들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쫙 갈라주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홍해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고 그 뒤를 따라오던 바로의 군대들은 들어오자마자 물이 확 합쳐져 버려서 모두가 그곳에서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널 위해서 대신 싸워주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부정적인 이야기 쏟아놓지 말고 주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믿음의 눈으로 지켜보아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옵니까.

3. 우겨쌈을 당하여도
세 번째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이와 같은 제목으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막 우는 사자들이 벌떼처럼 우리에게 달려 붙을 때가 있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이 그렇습니다. 하루아침에 몰아친 그의 고난은 말로써 다 표현하기 어려운 큰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이 다 날아갔습니다. 도둑들이 와서 모든 가축을 탈취해가고 불이 떨어져서 가축들이 다 타죽고 종들은 다 죽게 되고 태풍이 불어서 잔치를 벌이고 있던 열 자녀가 한꺼번에 다 죽고 온 몸에 악성 피부병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고 있는데 부인은 와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고 떠나가고 친구들은 무슨 죄를 지었냐고 와서 손가락질하고. 이런 극한 절망이 그에게 엄습해왔을 때 욥은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많은 고난이 그를 욱여쌌지만 욥은 욱여쌈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1)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우리가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하세요.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우리가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 4장 8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할렐루야. 어떤 환난과 고통이 우리를 압박하고 우리를 둘러싸도 우리는 쌓이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도 압박으로 둘러싸인 일생이었지만 그는 싸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5절에,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냥 둘러싸인 그러한 다툼과 두려움이 그를 욱여싸고 그를 꼼짝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는 싸이지 않았습니다. 왜, 보배이신 예수님이 모든 것을 물리쳐주시고 넉넉히 이기게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욱여쌈을 당했을 때 영의 눈을 떠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엘리사 시대에 아람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밤에 군대를 풀어서 그가 있는 도단성을 다 둘러쌌습니다. 아침에 사환 게하시가 보니 큰일났습니다. 아람군대가 성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제 다 저희들이 잡혀 죽겠어요. 달려가서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우리가 다 죽게 생겼습니다. 밤새 아람 군대가 우리를 다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그때 엘리사의 기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열왕기하 6장 17절에,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할렐루야. 우리를 대적이 잡으려고 와서 둘러싸도 그 수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싸서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 어떤 세력이 우리를 욱여싸도 우리는 욱여쌈을 당하지 않습니다. 가슴을 피고 당당하게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십시오.

2)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나아가서 보배이신 예수님과 함께하시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따라하세요.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4장 8절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아니하고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어요. 또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남에게 참소를 당하고 사실도 아닌 일로 내가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는 너무나 마음이 답답해요. 그러나 그 답답한 일이 생기고 여러분을 괴롭혀도 여러분의 마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 보배이신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마세요. 절대로 절망하지 마세요.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귀신들린 여자아이의 귀신을 쫓아주었는데 그로인해 주인에게 모함을 받고 매를 맞은 후에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현실입니까. 억울하게 붙잡혀서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왔어요.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찬양과 기도를 들으시고 옥터를 흔드시고 옥문이 열려지게 하시고 손과 발에 매인 것이 풀어지게 하셔서 그래서 그를 지키던 간수와 그의 온 가족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고 그곳에 빌립보 교회가 서게 된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여러분이 넉넉히 이기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5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넘치는도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십시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다 같이 고백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3)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따라하세요.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 4장 9절에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사도 바울의 일생은 많은 환난과 박해가 계속 되었던 그러한 삶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보세요.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25절,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고백을 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많은 환난이 따르는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들은 귀족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했으며 평시민들은 잡혀서 사형에 처해졌는데 사도 바울도 네로 황제 시절에 목 베임을 당해 죽었습니다. 당시 유태계 크리스천들은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불에 태워서 화형으로 또 사자의 밥이 되어서 또 십자가에 달려 고통 가운데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교의 자리에 가면서까지도 절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고 영광의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당히 그 순교의 길을 걸어 나갔던 것입니다. 지금 그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천국에서 우리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믿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 온 가족들로부터 그러한 핍박을 받을 수가 있어요. 부모가 너랑 나랑 자식의 인연을 끊자고까지 말합니다. 또 세상 친구와 친척 세상 동료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 반기독교적인 세력이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든지 해하려고 핍박하는 경우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떠나고 친구 친척 아니 가장 가까운 부모님마저 나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찬송가 88장)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와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할렐루야.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주님 주신 축복의 말씀을 봅니다. 5장 10절에서 12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4)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끝으로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따라하세요.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면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4장 9절에,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망하지 아니하고” “망하지 아니하고” 할렐루야. 다니엘이 참소를 받아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자들이 다니엘의 그 어디 하나 해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편안히 잠잘 수 있도록 사자들이 사자 카펫이 되어서 잠을 재워주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왕이 와 보니까 충신인 다니엘이 살아있습니다. 그를 꺼내고 나서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저들에게 집어던져 넣어라. 그러니까 성경을 보니 집어 던져 넣으니 사자들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그냥 공중에서 다 그냥. 밤새 배고팠다가 그냥 잘되었다. 그래서 모든 대적이 단번에 다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 주님께서 붙들고 일으켜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위대한 선언을 우리가 다 같이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할렐루야. 주님과 함께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고난도 넉넉히 이기고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의 축복에 들어가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의 고백으로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기억하십시오. 질그릇인 우리가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삽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꺼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그런 승리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질그릇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게 해주시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게 해 해주시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게 해 주시고 꺼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일생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 제일주의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4년 9월 14일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