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 마비정 마을에 느림보 우체통이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하지만, 우체통은 허수아비처럼 사람을 찾는 듯했다.
“편지를 부치면 1년 후에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우체통 옆에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미하엘 엔더의 메모장에는 인디언 짐꾼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탐험대가 인디언 짐꾼들을 데리고 정글을 지나가는데, 처음 나흘간은
차질 없이 행군을 잘 하다가 5일째 되던 날 더 이상 전진을 거부했다.
사정을 하고 총으로 위협을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난 후 인디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행군을 시작하였다.
탐험대원이 하도 이상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너무 빨리 걸었어요. 우리는 영혼이 따라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자연과 영혼이 함께하는 삶이란 얼마나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느림보 우체통은 촌음을 다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늘 힘이 되어 주셨던 그분에게 편지 한 장 보내야겠다.
두려움도 미움도 가슴 설레는 사랑의 고백도
느림보 우체통에 담아 보내는 편지라면
웃어넘길 수 있는 따사로운 여유로움이 흘러넘칠 것 같았다.
느림보 우체통이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자신을 기억나게 하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 왔으면 하고 기다려진다.

하지은/힐링강사

*교통문화선교협의회가 지난 1988년부터 지하철 역 승강장에 걸었던 ‘사랑의 편지’(발행인 류중현 목사)는, 현대인들의 문화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통한 인간다운 사회 구현을 위해 시작됐다. 본지는 이 ‘사랑의 편지’(www.loveletters.kr)를 매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