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첫 번째 가상칠언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는 말씀이었다. 용서의 대상은 못 박는 자들 뿐 아니라 못 박는 일에 무언으로 동조하였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유전자적 동조자인 우리들까지 포함된다. 그러므로 첫 번째 가상칠언의 용서는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

두 번째 가상칠언은 회개한 강도를 향한, 용서와 낙원을 약속하신 용납의 말씀이다. 이는 개인에게 적용된 죄 용서이며, 구원은 개인의 공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세 번째 가상칠언은 육신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한 배려로, 부모 공경의 계명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신 말씀이다.

모세가 시내산에 받은 십계명은 두 개의 돌 판에 새겨졌다. 일반적으로 두 돌판에는 각각 다섯 개의 계명이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제5계명인 부모 공경은 대인(對人) 계명의 돌판이 아니라 대신(對神) 계명의 돌판에 새겨졌음이 분명하다. 이는 제5계명이 대인관계의 범주임에도 불구하고, 대신관계의 범주에 속함을 의미한다.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부모는 하나님과 동반자 관계이다. 생명의 주인은 분명 하나님이시지만, 그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서 기르는 일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위탁되었다. 그런 점에서 부모 공경은 인륜적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하시는, 생명원리로 다루어야 할 생명윤리이다.

부모 공경 계명은 다른 계명들과는 달리 장수와 땅의 복이 약속되어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이를 두고 바울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첫 계명’에서 ‘첫’은 ‘처음’이란 뜻도 되겠지만 ‘유일’이란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고 더 타당하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만 있지 그 다음은 없기 때문이다. 곧 제5계명은 십계명 중에서 약속이 보장된 유일한 계명이다. 십계명은 우리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인륜의 기본 계명이다. 그런데 제5계명에 두 가지 복이 약속된 것은, 그만큼 특별한 계명임을 보여준다.

부모 공경 계명에 그와 같은 복이 약속된 것은, 하나님 생명의 동반자로서 부모에게 위탁된 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위탁받아 잉태와 탄생과 성장의 전 과정을 책임진 부모에게는, 자녀에게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희생적 사랑도 본능으로 주어졌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 관한 한 대책 없이 주기만 하는 바보이다. 그런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잊거나 모르는 체한다면, 기본을 상실하고 생명의 원리에 무지한 영적 바보들이 된다. 제5계명에 곁들여 있는 복의 약속은, 곧 부모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면서 부모 공경에 더욱 힘쓰라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특별보상의 유인책인 셈이다.

예수께서는 왜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셨을까? 예수께는 같은 혈육의 친동생들이 있었다. 마태복음을 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기도 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는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마 13:55-56). 그런데도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긴 것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요한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유일한 제자였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각기 흩어져 숨어 버린 것과는 달리, 요한은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와 동행하였다. 그런 점에서 요한은 어머니 마리아를 맡길 유일한 대안이었다.

둘째로, 마리아는 예수를 낳으신 육신의 어머니였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은 영적인 관계였다. 마리아는 예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오시는 메시야이심을 천사의 전언으로 이미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예수의 주요 사역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후에는 마가 다락방 기도회를 통한 초대교회의 태동에도 적극 관여하였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 마리아는 영적 사역을 계승할 제자 요한에게 맡겨진 것이다.

셋째로, 요한은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가장 오래 살면서 교회를 끝까지 지킨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다른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 순교로 일생을 마쳤다. 요한도 박해를 받아 밧모섬에 유배되는 힘든 생활을 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살다가 수명을 다하고 죽은 유일한 제자였다. 요한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오래 살아야 했던 이유는, 위기에 처한 초대교회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였다. 1세기 말 초대교회는 내적으로 영지주의라는 이단과, 외적으로 로마의 박해라는 큰 시련을 겪었다. 그런 위기 속에서 요한은 5권의 성경을 쓰면서 교회를 굳게 이끌어 갔다. 특히 요한이 요한복음을 쓸 때에 많은 내용을 마리아에게서 도움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마리아는 예수의 생애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분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맡긴 것은, 어머니 마리아를 위한 배려이면서 동시에 초대교회를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 회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