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장 10절)

어떤 이가 나와 대화를 나누는 중 말하기를 "나는 은혜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늘 성령 충만하고 늘 기쁘고 늘 감사하였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성도님이 내 생각으로는 둘 중에 하나인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정신박약아가 아니면 거짓말하는 사람처럼 생각되는군요”

내 말에 그 성도는 얼굴을 붉히며 항의하였다. “나는 목사님을 존경하는데 목사님은 어찌 내게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기에 내가 진지하게 일러 주었다. “내 말에 기분 나빠 하지 마시고 심각하게 들으세요. 성도님이 지금 하신 말씀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아무리 한때 성령충만의 은혜를 받았어도 인간은 인간인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았다 하여 인간이 천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은 한때 큰 은혜를 받고 기쁨 충만, 은혜 충만하였어도, 세월이 흐르면 받은 은혜도 흔들리게 되기 마련이고 유혹에 흔들리고 갈등과 회의에 젖어드는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영적 거인도 어느 날 느닷없이 말하였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장 24절)

바울이 이 글을 쓴 때는 초신자 시절이 아니다. 사역 후기 천하의 사도 바울로 이름이 알려진 때였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탄식하는 글을 쓴 것이다. 바울만 그러하였던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도, 엘리야도 어느 날 영적 침체의 날이 임하고 고뇌 속에서 부르짖는 날이 임하였다.

종교개혁의 용사 마르틴 루터가 한 때 실의에 젖어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나타나 “당신이 그렇게 낙심하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이 죽으신 것이로군요. 하나님이 죽지 않으셨다면 당신이 어찌 그리 낙심할 수 있겠나요” 하며 그를 격려하였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때로는 낙심하고 때로는 고뇌에 빠지게 될지라도, 오히려 분발하여 일어날 일이지 낙심 끝에 주저앉을 일이 아니다. 이런 시련의 날을 거치면서 오히려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게 되어야 한다.

독일의 시인 헤르만 헤세는 ‘기도’란 제목으로 시를 남겼다. 신앙생활을 하던 중 낙심되거나 좌절할 때, 때 아닌 고뇌에 빠져들 때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내용이다.

기도(GEBET)

-헬만 헷세

하나님이시여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하여 절망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당신에게만은 절망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비탄을 맛보게 하여 주시고
고뇌의 불꽃이 나를 휩싸게 하시옵소서.
내가 스스로 견뎌나감을 도우지 마시옵소서.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옵소서.
그러나 나의 모든 고집이 허물어진 때에
그렇게 하신 분이 당신이었음을 보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그 불꽃과 고뇌를 낳으셨음을 알게 하소서.
왜냐하면 나는 즐거이 멸망하고 즐거이 죽겠사오나
다만 당신의 품 안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