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첫 번째 가상칠언이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용서의 무죄선언이라면, 두 번째 가상칠언은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용서의 무죄선언이다.

예수께서 못 박힌 십자가 좌우편에는 함께 처형을 당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마태와 마가는 그들을 강도라고 불렀고, 누가는 행악자라고 지칭하였다. ‘강도’로 번역한 헬라어 ‘레스테스’는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폭력을 사용하여 남의 것을 갈취하고 살인까지 저지른 흉악범을 암시한다. 당시 십자가는 반역이나 살인과 같은 무서운 죄를 짓고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은 비(非)로마시민에게 적용되는 사형방법이었다.

처음에는 두 강도 모두 예수를 조롱하고 욕하였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였더라”(마 27:44) 이들의 비난에 앞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고 모욕하였고, 뒤이어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조롱과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42) 두 강도들마저도 예수를 비난하는 일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당시 십자가 주변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며 욕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잠시 후 상황이 바뀌었다. 한 강도는 비난과 욕을 계속하였지만, 다른 한 강도는 옆의 강도를 꾸짖으며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리라”(눅 23:40-41)고 하였다. 그러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했다.

어떤 계기로 그런 변화가 생겼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죽음 직전에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예수 앞에 회개를 한 것이다. 곧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그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과 대속을 위하여 죽으심을 받아들였다. 또한 그는 하나님나라의 존재와 예수께서 그 나라의 주인이심을 믿고, 그곳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회개한 강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인물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주어지는 기회, 곧 카이로스의 연속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5:15-16)고 하였다. 여기에서 ‘세월’은 기회를 의미하는 헬라어 ‘카이로스’이다. 그것은 양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와 대조를 이룬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는 회개였다. 회개보다 앞서는 것이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는 것이다. 깨우침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며, 성령의 조명으로 가능하다. 성령의 하시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이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여기에서 ‘책망’은 ‘유죄증명’이라는 뜻인데, 영어로는 ‘convict’라고 번역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조명하시면, 누구도 변명의 여지를 찾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회개한 강도는 성령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시는 ’카이로스‘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회개한 강도는 예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는 보장을 받았다. 회개가 곧바로 응답된 것이다. 진심의 회개는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이기 때문에 지체 없이 응답을 받는다. 강도가 예수와 함께 있게 될 낙원은 우리가 추구할 본향이요 궁극적인 하나님나라이다. 우리들은 지금 여기 이 땅에서도 하나님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비적 단계의 하나님나라이다. 이 땅은 그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과 상급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런 점은 바울의 고백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회개한 강도는 이 땅에서의 예비적 하나님나라를 경험하지 못한 채 곧장 낙원으로 들어갔다. 세상에서 헛된 삶을 살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두 번째 가상칠언은 마지막 순간이라도 자신의 죄를 깨우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누구라도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구원은 자신이 쌓은 공적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을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그렇다고 해서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마지막 순간으로 미룰 필요는 없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나라를 경험하며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얼마든지 이 땅에서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땅은 하나님나라에서의 상급을 준비하는 기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구원이 미루어질수록 영혼은 더욱 황폐하여져 구원을 얻되 초라한 구원일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의 삶은 날마다 새로움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더없이 소중한 기간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 회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