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대화마당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김경원 목사, 이하 한목협) 제27차 열린대화마당 ‘설교 표절, 왜 심각한 문제인가?’가 2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개최됐다.

이번 대화마당은 한목협이 교회 재정 투명성과 담임목사 대물림 근절 등을 주장하면서 자정운동을 펼치기 위해 상설기구로 조직한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위원장 손인웅 목사, 이하 위원회)에서 기획했다.

대표회장 김경원 목사(서현교회)는 환영인사를 통해 “목회자 윤리 문제가 심각한 지경이고 그 중 하나가 표절 문제라는데, 논문 표절보다 심각한 문제가 설교자들의 표절”이라며 “설교는 고민하고 연구하고 번민하는 가운데 영혼의 고백으로 나와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것을 제 것인 양 쉽게 그대로 갖고 오는 비윤리적 행태가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 속에 적지 않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김 목사는 “이런 문제의식 아래,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하는 모임을 통해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결단하고, 설교의 윤리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설교는 치열하게 싸우면서… 너무 쉽게 하려 해서야”

▲이날 열린대화마당에는 김명혁 목사(한복협 회장), 장차남 목사(예장합동 증경총회장), 백장흠 목사(기성 증경총회장) 등 원로들과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등도 참석, 교계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이대웅 기자

위원장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원로)는 자기고백부터 시작했다. 손 목사는 “50여년간 설교를 해 왔는데, 1만 회 정도 한 것 같다”며 “1만 번이나 어떻게 뭘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급할 때는 표절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손 목사는 “목회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설교로, 그의 인격과 영성의 모든 것이 그대로 반영되고 나타나니 얼마나 힘든 일인가”라며 “‘글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설교가 사람이다’, ‘설교가 설교자다’고 하고 싶다”고 했다.

손 목사는 “설교가 어렵다는 것은 지식 전달 위주의 강의가 아니라 감동을 전해야 하며, 지(知)적·정(情)적 면 뿐 아니라 영혼을 움직이고 각성과 깨달음도 줘야 한다”며 “무엇보다 자신의 메시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한국교회 문제도 강단에서 외치는 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라며 “살 수 없으면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써 교인들도 따라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인웅 목사는 “설교는 치열하게 싸우면서 준비해야지, 너무 쉽게 하려 해선 안 된다”며 “인터넷이나 다른 설교집에서 짜깁기 하는 사람도 있는데, 책을 읽고 묵상하고 준비하고 원고를 써야 하고,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살 수 있는 만큼, 설교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게 살아있는 설교”라고 강조했다. 그는 “설교 문제에 있어 자유로울 수 있는 목회자는 없고, 부끄러움 없이 설교하고 있다는 사람도 많지 않다”며 “설교한 대로 살 수 있는, 삶과 말씀의 괴리가 좁혀지는 데서 감동과 힘과 변화가 있다”고 했다.

또 “설교는 변화를 일으키는 작업으로, 1만 번 설교해도 교인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실패”라며 “생생한 고뇌 속에 나오는 창작이 있어야 한다. 뼈를 깎는 노력에서 권위가 나온다. 말씀 선포자로서 권위를 갖고 변화 일으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로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설교 표절, 하나님 말씀에 대한 큰 불경이자 불충”

▲정주채 목사가 기조발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후 위원회 서기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원로)가 기조발제, 한진환 목사(서울서문교회)와 안진섭 목사(새누리2교회)가 발제를 각각 진행했다. 이후에는 한목협 상임총무 이성구 목사(시온성교회)를 좌장으로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정주채 목사는 ‘설교 표절, 왜 심각한 문제인가?’를 제목으로 “많은 목사들이 다른 목사들의 설교를 예사로 베껴 설교하고 있고, 또 이렇게 하다가 교인들에게 발각되어 교회에서 사면을 당하거나 교회가 분란에 휩싸인 경우들도 있다”며 “어느 대형교회 담임목사도 설교 표절이 알려져 설교를 중단하고 몇 개월 동안 근신한 일이 있다”고 소개했다.

정주채 목사는 “설교 표절의 기준과 한계를 정하여 분명히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저는 설교자의 인격적 주체성이 그 시금석이라 생각한다”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설교자의 인격과 삶을 통과하여 선포될 때 설교가 되고, 설교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표절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인격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격과 노력을 통하여 나온 것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처럼 설교하는 거짓 행위”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설교 준비의 바탕으로,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

설교 표절의 이유로는 △1주일에 10회 이상 해야 하는 등 설교 횟수가 너무 많아서 △말씀 묵상과 기도생활에 게을러서 △인격의 기초인 정직함이 없어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며 설교할 수 있는 능력과 기본 자격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해서 등을 꼽았다. 그는 “설교 표절은 게으름과 부정직에서 나오는 도둑질에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큰 불경이자 불충”이라며 “설교 표절은 설교자 자신과 나아가 교회 전체를 영적으로 황폐하게 만들고, 이렇듯 말씀 사역이 제대로 안 될 경우 대사명 성취는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처음부터 베끼기로 작정하고 시작했다면, 명백한 도용”

▲한진환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진환 목사는 ‘설교 표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설교 표절의 부당성과 함께 개선을 위한 제안들을 펼쳐놓았다. 한 목사는 설교 표절 기준으로 △의도성 △반복성 △위선성 등을 들었다. 설교 표절이 왜 잘못인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현재적 메시지를 가로막고 △설교자의 영혼을 고사시키며 △교회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준에서 의도성은 ‘처음부터 베끼기를 작심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자료로부터 받은 영향을 무의식 중에 표출했는가’, 반복성은 ‘그 행위가 단회적인가, 반복적인가? 그 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행위였는가, 아니면 습관적인가?’, 위선성은 ‘남의 설교를 기술적으로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거나, 남의 예화를 편집해서 마치 자신의 체험인 양 둔갑시켜 사용하는 것’이 각각의 기준이다.

특히 의도성에 대해 “우리 주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건서적들, 주석들, 강해서적들이 나돌고, 이를 접하다 보면 거기에 나오는 아이디어들, 영감들, 힘 있는 문구들이 끊임없이 목사 자신의 사고 속에 축적된다”며 “그런 자료들이 설교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표절이라 단정할 수는 없고, 그 영향으로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것만 밝히면 윤리적 책임은 다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처음부터 베끼기로 작정하고 시작하는 것으로, 출처를 밝히지도 않고 남의 설교를 통째로 가져오거나 일부를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도용”이라고 설명했다.

한 목사는 “설교 표절 문제는 목사 개인의 양식에 의존하는 개인 윤리 성격이 강하므로, 외부적 제도나 환경 변화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라면서도 △설교 작성에 대한 전반적 교육 강화 △과중한 설교사역에 대한 제고 △목회 성공주의 신드롬 극복 △설교사역에 목숨 걸기 등을 제안했다. 이 중 첫 번째 문제에 대해 그는 “신학교 시절부터 설교 작성 윤리에 대한 교육부터, 본문 선택과 주석, 아웃라인 작성 등 설교 준비의 전 과정을 스텝별로 세밀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선 “목회자는 1주일 평균 7.5회 설교하고, 주일 낮 설교시간은 평균 45.9분, 준비 시간은 4시간 4분으로 나타났다”며 “4시간 준비해서 설교한다면 바울 사도라도 좋은 설교를 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과중한 설교 사역을 개선하기 위해 목사 자신은 대외 활동이나 목회 외적인 일에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절제하고, 교회 당국은 행정이나 심방, 각종 모임에 목회자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교수들이 학생을 일대일로 지도하는 ‘도제식 교육’ 해볼 만”

▲안진섭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안진섭 목사는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설교 표절’이라는 발표에서 타인의 설교를 표절하는 이유로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 △설교 작성에 대한 준비 미비 △설교에 대한 신학의 부재 △영성 깊은 사람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등을 열거했다.

안 목사는 “발표 준비를 위해 유료 설교 제공 사이트에 들어가 봤는데, 제가 했던 설교들을 허락도 받지 않고 제공하고 있더라”고 밝혔다. 또 “전도사 시절 어떤 집회에 갔는데, 초청 강사의 설교가 당시 유명 설교자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표절한 것이었다”며 “심지어 ‘제가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깨달은 사실입니다’라는 말도 했는데, 그 말조차 그 유명 설교자의 말을 따라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제안한 대안 중 눈에 띈 것은 신학대학원의 교육방식 전환이었다. 여기에는 학생들을 좋은 설교자로 길러내기 위해 성서신학·조직신학·역사신학·실천신학 등 다양한 교수진들이 함께 가르치는 ‘팀 티칭’이나 탁월한 설교자로 인정받는 현역 목회자들을 정식 교수로 초빙해 전문 설교학자들과 함께 가르치게 하는 방법, 교회음악대학원의 일대일 레슨처럼 교수들이 학생을 일대일로 지도하는 ‘도제식 교육’ 등이 ‘근원적 대안’으로 제시됐다.

▲발표자들이 나와 질의응답에 참여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