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혁주의 설교연구원 설립 22주년 기념세미나. ⓒ신태진 기자

한국개혁주의 설교연구원(원장 서창원 목사)이 설립 22주년을 기념하며 25~27일 서울 강남구 헌릉로 세곡교회(담임 박의서 목사)에서 ‘장로교회의 창시자 존 녹스와 청교도 목회’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 중이다.

동 연구원은 서창원·서문강 목사 등이 22년 전인 1992년 9월,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준 개혁정신을 이어 나가며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파하는 설교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창설했다.

▲원장 서창원 교수. ⓒ신태진 기자

한편 첫날인 25일 원장 서창원 목사는 “22년 전 한국교회 강단이 성경 중심으로 되돌아가기를 꿈꾸며 연구원을 창설했다”며 “교황 방문으로 다수의 개신교 신자들이 천주교로 이동할 것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복음의 진리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종교개혁의 유산을 잘 간직하고 아름다운 가르침을 충실하게 전했다면 이런 말은 안 나왔을 것이다. 교세 확장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도입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품을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서문강 목사가 설교를 전하고 있다. ⓒ신태진 기자

서문강 목사(중심교회)는 ‘하나님 말씀의 메카니즘’(살전 2:13)이라는 주제의 말씀에서 “사도들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본을 받아 성경을 풀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영원한 구속을 논증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가치도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혜를 증거한 것이다. 이것이 설교자들의 정체성”이라며 “그러나 오늘날 설교자들은 현대인에게 맞춘 설교를 해야 한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 이 시대를 얻기 위한 설교가 아닌, 사도를 본받아 성경을 풀어 예수님의 주 되심과 부활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증거하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했다.

▲로버트 스트리븐스 박사(왼쪽)와 통역을 맡은 김준범 박사(오른쪽). ⓒ신태진 기자

주강사로 나선 런던신학교 학장 로버트 스트리븐스 박사는 18세기 영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필립 도드리지 목사의 신앙에 대해 전했다. 먼저 스트리븐스 박사는 “필립 도드리지는 조지 휫필드나 찰스 스펄전처럼 오늘날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필립 도드리지는 18세기에 활동했는데 19세기에도 명성을 떨쳤다. 찰스 스펄전도 그를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나는 미국 컬럼비아신학교 설립자들이 도드리지 목사를 높게 평가한 글을 읽었다. 오늘날 유명하지 않다고 해서 그 당시 영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충분히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귀한 목사님”이라고 했다. 

스트리븐스 박사는 “필립 도드리지는 1730년부터 1751년에 죽을 때까지 노스앰프턴(Northampton)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아카데미를 운영했고, 캐슬 힐(Castle Hill)에 있는 회중교회의 목사로 봉직했다. 그 21년 동안, 적어도 200여명의 젊은이들이 그의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고, 그들 중 120명은 목회자가 된 것으로 추산된다. 그가 18세기 영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컸으며, 특별히 목회사역을 위해 젊은이들을 훈련시킨 일은 매우 중요했다. 그는 영국 안팎에서 그 시대에 가장 탁월한 교육자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얻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도드리지의 아카데미는 비국교도들이 교리적으로 표류하고 있던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정통의 등대로 여겨졌다. 그때에는 이신론이 퍼져 있었고, 회중주의자들과 장로교도들도 다양한 이설에 빠져 있었으며, 당시 몇몇 다른 학교들은 교리적으로 의심스러운 가운데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도드리지는 신뢰할 만한 정통 가르침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단 사설들의 위험에 빠져 있고 성경적 이해와 경건 면에서 쇠퇴하고 있는 오늘 우리 시대에는, 성경적이면서도 정통 노선을 고수하면서 분명하고도 철저한 목회 훈련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필립 도드리지가 18세기 초반에 잉글랜드에 제공했던 그런 종류의 목회훈련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했다.

둘째 날인 26일부터는 존 녹스에 관한 특강이 진행된다. 존 녹스(John Knox, 1514년?~1572년)는 스코틀랜드인으로 종교개혁자다. 그는 로마교회의 사제였으나 칼빈주의를 추종하게 되면서 메리 스튜어트와 투쟁하여 개혁주의를 도입했다. 세인트앤드류스대학교의 존 메이저(J. Major)에게서 신학을 배웠으며, 칼빈의 영향으로 제네바의 영국 피난민 교회의 목사로 봉직했다. 고국에 돌아와서 개혁주의 사상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서창원 원장은 존 녹스의 설교사역에 대해 “그가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한 계기는 세인트앤드류스에서였다. 1547년 늦은 4월에 그는 다니엘서 7장 24~25절을 본문으로 최초의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에 소개된 설교 내용은, 로마교회를 ‘죄의 사람’ ‘적그리스도’로 간주하면서 몇몇 교황들의 스캔들을 인용했고,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라 바벨론의 창녀에 불과함을 피력했다. 그리고 로마교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가르쳤다. 교회의 주이시요 구세주이시며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드높였다. 이것이 녹스를 ‘로마교회 전체를 다 멸망시키는 뿌리를 내리친 개혁가’라고 말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외에도 세미나에서는 김중락 교수(경북대), 황봉환 교수(대신대 신대원장) 등이 강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