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컴컴한 곳에서 새까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는 기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베르그송의 말대로 하고 싶어…. 길 모퉁이에 나가 서서 손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거야.  ‘적선하시오. 형제들이여! 한 사람이 나에게 15분씩만 나눠주시오.’ 아, 약간의 시간만. 내가 일을 마치기에 충분한 약간의 시간만을. 그런 다음에는 죽음의 신이 찾아와도 좋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시간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는 고향 크레타가 터키의 점령 하에 있던 1883년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난다. 터키인들은 크레타인과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박해했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이웃 섬에 피신시키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이어간다. 아버지는 상인이었지만, 아들 카잔차키스가 크레타를 위한 정신적 지주가 되기를 원했다. 육체가 아닌 두뇌로써 조국을 위해 투쟁하며, 크레타인의 명예를 지킴으로써 조국에 기여하기를 원했다.

두뇌로써 조국 크레타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그리스 전체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조국 터키도 독립을 쟁취한다. 어찌 아버지만의 소원이었겠는가.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조국, 터키도 마찬가지였다. 할 일이 눈앞에 있으니 키를 잡고 두려워 말라. 뜻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눈물을 절대로 흘리지 말라고 가르쳤다.

죽음에 임할 즈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여, 나는 당신의 손에 입을 맞춘다. 나는 당신의 오른쪽 어깨에 키스하고 왼쪽 어깨에 키스한다. 내 고백은 끝났으니 당신이 심판하라.” 그는 조국과 조상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두려웠다. 자신의 힘은 거기까지만 미치고, 더 이상 갈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도 있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 아니 엄격히 말해 창조하는 동안 그는 마치 임신한 여인처럼 입덧을 한다. 자기의 피와 살로 뱃속 아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여인처럼, 온 신경을 생명에 집중시킨다. 치열한 싸움이다. 훗날 아버지의 원대로 그리스 전체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후에도, 터키가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이 싸움은 계속된다.

끝이 아니라 시작인 싸움, 바로 신과 인간, 영혼과 육체, 선과 악, 신앙과 무신론, 삶과 죽음, 종교와 철학의 대척점에서, 그는 전사로 평생을 보내고 피를 흘린다.

죽기 2년 전, <영혼의 자서전>이 탄생할 즈음 그는 신에게 10년의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 일을 완수하여 할 말을 모두 다하고 속이 텅 빌 수 있도록, 그리고 자서전의 초고를 고쳐 쓸 시간을 요구했다. 그의 주치의들도 카잔차키스의 젊은 열정을 기대했다. 카잔차키스는 건강한 것 같았다. 의사와 가족들은 굴복할 줄 모르는 그의 체력과 영혼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가 지녔던 자신감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잔차키스는 불안했고 시간에 쫓겼으며, 뛰어다녔다. 스스로 날개가 달렸다고 외쳤다. 엘레니 카잔차키스는 남편이 대리석 부스러기를 박은 시멘트 바닥에서 미끄러져 뼈라도 부서질까 걱정이 되어 자꾸만 잔소리를 했다.

그 때마다 카잔차키스는 얼굴을 돌려 말없이 엘레니를 처다보더니, 크게 한숨을 짓는다. ”난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 당신에게 받아쓰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는 연필을 움켜지고 글을 쓰려 애를 썼다. “나는 세 개의 웅대한 주제-세 개의 새로운 소설- 때문에 또다시 고통을 받고 있어. 하지만 난 우선 영혼의 자서전을 끝마쳐야 해.” 그는 엘레니에게 받아쓰게 할 수 없었다. 연필을 쥐어야만 생각이 떠오르고 글이 써지는 사람이었다.

말한 것처럼 <영혼의 자서전>은 이 투쟁과 반항, 피흘림의 기록이다. 조상들, 크레타, 어린 시절, 아테네, … 그리고 여행. 그는 일생 동안 끝없이 여행했고 방랑했다. 유럽의 수도원을 순례했고, 러시아의 혁명 현장을 목격했고, 중국과 아시아의 나라들을 탐색했다. 이 자서전은 그가 평생 여행한 나라들에서 깨달은 잠언들의 모음집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길 모퉁이에서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시간을 적선받지 못했다. 그의 시간은 멈추어 섰고, 이제 새 날은 다시는 그를 위해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니코스는 그의 말대로 어두운 곳(womb)에서 나와 어두운 곳(tomb)으로 돌아갔다. 그는 늘 인생이란 움과 툼 사이의 반짝임이라 생각했다. 그 사이의 반짝임과 빛남으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이 인생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의 <영혼의 자서전>은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든 희망 가운데 있든, 하나님은 절망의 가장 찬연한 얼굴이요, 희망의 가장 찬연한 얼굴인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