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7~10)

 <서론>
“언어와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말씀으로써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만물이 생겨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한없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처럼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 환경을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은 것 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말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입의 말을 통해서 우리 세계나 환경을 다스리고 창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몇몇 연구에 의하면, 말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생활이 여러분 인생의 3분의 2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언어에 푹 빠져 있는 것입니다. 말을 잘 다스리면 우리 인생이 행복해 질 수 있고 말을 잘못 다스리면 크게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탈무드에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보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또 “말이 입안에 있으면 내가 말을 지배하지만, 내 입에서 말이 밖으로 나가면 그 말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의 영향력을 잘 알고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 많은 성도들이 모이면 가장 큰 문제가 말입니다.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끄집어내어서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한 교회 목사님을 배척하는 몇 사람이 있어서 목사님의 흉을 자꾸 봐요. 무슨 말을 퍼뜨리냐면 목사님이 사모님을 머리를 휘어잡고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목사님이 사모님을 때려가지고서 집에서 도저히 살 수 없으니까 사모님이 보따리를 싸서 교회를 떠났다. 그러니 교회에서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 목사가 되느냐. 사모님을 때리는 목사님이 어떻게 목사냐. 그래서 전체 교인들이 모인 앞에서 목사님을 불러내서 대답을 하라고 했습니다. 사모님을 언제 때렸으며 하루에 몇 번 때렸으며 사모님이 어디에 갔느냐고... 그러니까 그 목사님이 여러분, 말을 잘못 듣고 전달한 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 집사람을 때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우~ 우리 집사람이 보따리 들고 집밖으로 나간적도 없습니다. 우~~ 나는 아직 장가를 든 적이 없습니다. 완전히 비난하던 사람들이 절단강산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말인 것입니다. 말은 하나님의 성령이 사용해서 사람들을 살리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을 얻게 할 뿐 아니라 마귀가 사용하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말한 대로 만들어진 현재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입의 말은 창조력이 있기 때문에 입에 말한 것이 우리 환경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환경은 과거에 우리가 한 말이 연합해서 이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지금 내가 말을 사용하면 내 말이 장차 내가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말을 우리가 무시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과 말씀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다스리고 섭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시고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을 보응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말이 아무도 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우리 한국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말은 하나님이 듣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셔서 우리말을 그대로 시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의 사자들로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이 돌아와서 보고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여 올 때 그 땅에 실과를 가지고 오라고 모세가 명령을 했습니다. 12명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했는데 10명이 먼저 보고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엄청난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울고 우리를 어디 죽일 데가 없어서 가나안 민족의 칼에 죽게 하느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우리 장관을 세워서 우리 도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를 보고 옷을 찢고 백성들 앞에 나가서 말하기를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7~9) 긍정적인 완전히 다른 말을 했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은 똑같은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것을 보고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왔는데 10명이 보는 관점이 다르고 2명이 보는 관점이 달랐습니다. 한 가정에 똑같은 문제가 생겨도 남편이 보는 관점이 다르고 아내가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그러면 논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탐꾼 중 10명은 인간적인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이 보고 듣고 말하는 관점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3) 이것은 사람이 보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참말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들이 보고한 사실이 정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잘못된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람 말이 한 마디도 없고 하나님을 보지 않고 인간의 지혜와 총명과 능력으로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 관점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현실을 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완전히 반대로 평가했습니다. 약속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하나님이 그 땅으로 인도하신다면 우리가 점령할 수 있으니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서 인간적으로 평가를 한 것과 하나님 관점으로 평가한 것하고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시고 난 다음에 민수기 14장 27절로 28절에 말씀하기를 너희들의 말을 내가 들었으니 너희가 말한 대로 해주겠다. 그 땅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땅을 두려워하지 않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안 죽고 살아서 후손들을 데리고 그 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두려움인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을 가지고 두려움을 가지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365번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니 두려워말라고 주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면 벌써 마귀가 들어와서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마음에 확실한 믿음의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마음이 평안하고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들어오면 두려움이 오고 좌절감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절망이 가득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희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여러분, 희망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칩니다. 희망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하나님이 같이 계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두려움이 있고 우울하고 슬픈 생각이 꽉 들어차 있으면 마귀가 와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관점에서 만물을 보고 하나님 관점에서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 부정적인 말, 파괴적인 말, 좌절적이고 절망적인 말을 결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너 말한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인 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들으시기에 좋은 말은 기쁘고 즐겁고 소망차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하나님은 들으시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일들이 여러분 주위에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중얼거리더라도 희망을 말해야지 절망을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2. 인간과 말씀
우리는 무슨 말을 하고 살아야 우리 신앙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로써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아무리 믿어도 구원 못 받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느 곳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사람들이 날보고 뭐라고 하더냐.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죽었으나 살아난 것이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살아난 것이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가 살아난 것이 주님이라고 말합니다. 그 여러 가지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라보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그 말을 듣고 베드로를 바라보시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말을 네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마음속에 묵시를 주므로 이 말을 네가 한 것이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리고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5~19) 우리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백을 뚜렷하게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 구원할 뿐 아니라 그 사람 위에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여러분의 신앙고백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신앙의 기초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기에서 신앙의 기초를 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신앙의 기초를 둘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그 말씀을 말씀해 보십시다. 여러분,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열쇠를 주는 것입니다. 천국 열쇠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서 말로써 긍정적으로 묶으면 하늘에서 묶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천국 열쇠를 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은 하늘 열쇠를 주어서 그 열쇠를 우리가 사용해서 닫았다가 열었다가 할 수 있는 그 열쇠를 신앙고백의 기도로써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매일같이 말을 할 때 신앙고백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내용을 가지고서 기도해서 신앙의 문을 열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져야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말에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새벽에 갈릴리 해변가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모여서 따라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계신 곳에는 병자가 낫고 귀신이 쫓겨 나가니까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몰려서 바다에 밀려들어갈 판이 되니까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시고 배를 좀 바다로 저어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싣다말고 예수님을 모시고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있는데 예수님이 그 배에 서서 해변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난 다음에 베드로보고 깊은데 들어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 내가 보상을 주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쳐다보고 우리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고기를 못 잡았는데 원래 고기는 해가 뜨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잠을 자기 때문에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어두울 때 초저녁에서 한밤중에 해변가에 먹이를 먹으러 나오는데 그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물을 던져보라. 예. 사람 생각으로는 못 잡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져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어찌나 고기가 많이 잡히든지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자기배에 다 싣지 못해서 친구들의 배를 불러서 배에다가 실어도 다 가라앉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자기 죄가 기억이 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 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님 발 앞에 엎드려서 주여,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 사실을 볼 때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말씀을 가지고 일을 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과 우리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깨달아 알아서 그 말씀을 품에 품고 나가면 기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사이 목사님들이 내게 와서 경제가 나빠지니까 헌금이 잘 들어오지 않고 사람 수가 교회에 줄어듭니다. 목사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부담금을 좀 면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어떻다고? 교회가 교인이 줄고 헌금이 준다고? 그렇습니다. 말 잘했다. 네 말을 오늘 누가 듣고 계신 줄 아느냐. 목사님이 듣고 계시죠.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아냐? 오냐, 네 말대로 해주마. 사람들아 교회 나오지 마라. 헌금은 안 해도 좋다. 하나님이 너 교회보고 그렇게 말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50년 목회를 했지만 한 번도 교인이 줄어든 적이 없고 헌금이 줄어든 적이 없다. IMF가 있어서 교회가 다 문을 닫는다고 말할 때 사람들이 어려울 때 그때도 우리교회는 끊임없이 교인수가 늘었고 헌금이 늘었다. 왜냐,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힘이 있는지 부정적인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그 부정적인 말을 통해서 부정적인 것이 생겨나도록 허락해 주신다. 내가 아무래도 제자들 모아서 집회를 해야 되겠다. 왜냐하면 교인들보고 잘 믿으라고 말을 하면서 자기 입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시겠느냐. 말을 바꿔야 한다. 사람이 운명과 환경을 바꾸려면 말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난 다음에 하나님 말씀에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가득히 담았다가 그 말을 자꾸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주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지겠나이다. 말씀에 의지해서 던지니까 물고기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데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수없이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못 보았다고 하는데 말씀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이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말씀을 모시고 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IMF와 같은 고통이 다가온다고 해도 하나님 말씀을 말하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같이 하리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내가 응답하겠다는 말씀이나 이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여러분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있어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하게 말씀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그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면서 나가면 말씀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풍랑이 일은 밤바다를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태워 보내고 난 다음에 밤에 홀로 기도하시다가 밤중에 물 위에 걸어 올라오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이 기적을 베푸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고함을 칠 때 아니야 유령 아니야. 가만히 있어. 주님이십니까? 내다. 주님이신 예수님이시면 날 보고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걸어오라! 베드로가 일어나서 배 밖으로 풍덩 뛰어 들어갔습니다. 베드로가 여러분 일자 무식쟁이고 마음이 변화무쌍하지만 하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모험을 잘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안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실패할지라도 해보는 것입니다. 물로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서 물위로 걸어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바람과 파도가 심히 쳐서 물보라가 얼굴을 적시니까 그만 말씀을 버리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마음에 간직했던 오라는 주님의 말씀은 잊어버리고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두려움이 들어오면 만사가 다 절단강산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들어오고 오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라졌습니다. 오라는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있을 때는 확신이 있었는데 확신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들어오니까 마귀가 들어왔지요. 물에 빠졌습니다. 주님 내가 죽습니다. 날 살려 주십시오. 손을 내밀어 건져 올리면서 왜 의심했느냐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두려움을 내ㅤㅉㅗㅈ고 걸어가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이 자리에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집에 들어가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고 사업상에 기적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이 하늘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가 말씀 아닙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는 고백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문을 천국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열쇠로써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굉장한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잘 알면 하나님이 감탄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버나움에서 종이 중풍으로 심히 아픈 백부장이 주님께 나왔습니다. 로마의 군대장이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육군 대위쯤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와서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여러분 성경에 예수님께 병 고쳐 달라고 할 때 안 고쳐준 적이 없습니다. 다 고쳐 주었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시고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하셨으니 이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니 예수님께 병 고쳐 달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쳐주겠습니까? 안 고쳐주겠습니까? 고쳐 주시죠? 그런데 믿든 말든 믿으십시오. 이 백부장은 로마의 대위인데 군인인데 자기 하인이 중풍으로 몹시 고생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 3분의 2는 병 고치는데 보냈는데 예수님의 사역 중에 병 고치는 일을 빼버리면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하인이 병 들어있는 백부장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왜냐하면 나도 남의 수하에 있고 내 밑에도 부하가 있는데 부하를 보고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예수님이 입을 딱 벌리셨습니다. 유대인 중에도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못 봤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말만 하면 천지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우리 집에 올 필요 없이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우리가 말을 잘하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이 감동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말을 잘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지를 지으신 주인이니까 왔다갔다 할 필요 없이 명령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자기도 육군 대위니까 자기 밑에 있는 부하들보고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니까 주님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시옵소서. 주님이 내 믿은 대로 되라고 하니까 그대로 하인이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또한 시돈 지역으로 예수님이 여행을 하실 때 가나안 여자 한분이 뛰어 들어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럴 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나는 이방인을 도와주러 온 것이 아니다.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 예수님이 고개를 흔들면서 못 도와준다.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줄 떡을 취하여 이방 개에게는 주지 않는다.” 이방인을 아예 개로 취급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예수님 보고 뭐 어떻고 어때? 안 고쳐주면 안 고쳐줬지 개라구요? 어디 개 맛 좀 보십시오. 그리고 흙을 쥐고 던지든지 고함을 치든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기가 막힌 말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고 하니까, 맞습니다. 개들에게 떡을 주지는 않지만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내가 이 성경을 읽으면서 내 머리에도 환해요. 우리도 어릴 때 여름에는 마당에 덕석을 깔고 마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그 아주 운치가 있어요.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운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덕석을 마당에 깔아놓고 밥을 먹으면 새들도 날라오고 까치도 날라오고 개들은 그 덕석에 경계선에 앉아서 먹는 우리를 보고 혀만 자꾸 낼름낼름 하면서 자꾸 달라고 하면서 우리가 던져 주면 먹고 그러한 장면이 기억납니다. 개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할 말이 없지 않습니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말 잘하면 안될 일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살아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위해서 왔지 이방인을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하고 난 다음에 이방인의 때가 온 것입니다. 때를 미리 당겨서 축복을 받는 것도 말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라. 네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말 잘하면 천냥 빚을 갚는다고 여러분 똑같은 말이라도 주님에게 감동을 주는 말은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하면 하나님이 감동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이 어려운 경제상태에서도 우리 교회는 주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쑥쑥 자라고 교인들이 헌금도 많이 냅니다 하면은 옳도다. 너 말 잘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우리가 말한 대로 말을 듣고 주님이 시행해 주시기 때문에 말을 잘해야 돼요. 부정적으로 말하면 네 부정적으로 말한 대로 될지어다. 긍정적으로 믿음으로 말하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우리가 말하고 그에 따라서 주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십시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뭘 믿습니까? 뭘 믿습니까?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믿습니다. 오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주님, 교회 나가는 것이 시간낭비를 하는 것 같고 너무 힘이 들어서 조금 휴가를 가질까 합니다. 오냐, 네 말대로 되라. 휴가를 가서 망해라. 그러고 말것인 것입니다. 나는 그저께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그 편지를 읽고 마음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린 아기가 태어났는데 엄마가 우울증에 걸려서 키울 수가 없어서 언니가 와서 보는데 언니는 시집을 안 간 언니인데 아기 앞에서 할 일이 없으니까 성경을 읽고 찬송을 늘 불렀는데 아기가 어느날 갑자기 찬송을 부르는데 발을 까딱까딱하면서 박자를 맞추더랍니다. 아기 앞에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데 이 애도 텔레비를 가만히 보고 말도 못하는 애가 텔레비를 보고 웃고 울고 그러는데 언제나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방송 텔레비를 켜놓으면 굉장히 좋아하고 웃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더니만 3살, 4살 되어서 말을 배우자마자 이모에게 뭐라고 말하냐면 교회 데려가! 교회 데려가! 그래서 교회 데려가니까 이거 아니야~ 이거 아니야~ 그럼 어디가자 말이냐? 할렐루야 할아버지 있는 교회 가! 그래서 너무 먼 거리지만 할 수 없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데려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2부 예배 드리니까 할렐루야 할아버지 없잖아. 3부예배 드리니까 할렐루야 할아버지 없다. 할렐루야 할아버지 보여줘~ 그래서 지금 할 수 없이 1시 예배에 나오는데 찬송을 부르면 같이 박수를 치고 찬송을 부르고 어른들이 아멘을 하면 아멘을 하고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래도 괜찮으냐. 질문을 해왔어요. 어린아이가 말을 겨우하는 아이가 자꾸 할렐루야 할아버지만 따라다니겠다고 하니 어떻게 되느냐고... 요사이 내가 답답한 일이 많고 마음이 괴로운 일이 많은데 그 편지를 읽고 그 어린아기를 만나볼 마음이 생겼어요. 이와 같이 우리가 말을 잘하면 하나님이 그 말대로 축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말은 마귀도 듣지만 하나님이 듣고 계시고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는 것을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한대로 될지어다. 너희 꿈꾼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말한대로 될지어다. 그러므로 말을 참 조심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말씀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도 말씀으로 구원하시고 치료하는 것도 말씀으로 치료하시고 변화를 나타내는 것도 말씀으로 변화를 가져오시고 창조하는 것도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도 말씀으로 물을 포도주를 만드셨지요.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도 말씀으로 하신 것이 밤바다 파도가 일어나는데 말씀으로 파도를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아픈 사람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치료받을지어다. 치료받지요. 말씀으로써 주를 고백하면 구원받게 하지요.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말씀을 우리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시인하면 하나님은 그 말씀을 받아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받지 않고 역사한 적은 지극히 드뭅니다. 말씀을 듣고서 구원하시고 말씀을 듣고 치료하시고 말씀을 듣고 환경을 변화시키시고 말씀을 듣고 창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4차원의 영적인 언어인 성경말씀을 마음속에 많이 읽고 듣고해서 가득 채워 놓으면 이 말씀이 나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3. 자기를 변화시키는 고백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입으로 시인하면 입으로 시인하는 말씀은 70%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로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적고 묵상하고 입술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게 되고 기억나게 하고 역사를 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뿐 아니라 소리 내어 말하십시오. 이사야 53장 5절 같은 말씀은 자꾸 소리 내어 말하면 좋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말을 자꾸 하면 그 말은 살아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갠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하면 그 말씀이 여러분 삶속에 들어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병을 쫓아내고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역사를 말씀이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말을 끊임없이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자기의 삶의 태도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는데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고 그 아내가 90세가 되었을 때 이름을 바꿨습니다. 자식이 없으니까 아브람을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아내는 세라를 사라, 여주로 바꿨습니다. 사람들이 다 웃고 손가락질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여 여주여, 서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불렀습니다. 그 말대로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환경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면 믿음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개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자기 자화상을 바꾸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허물을 씻음 받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 성령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통하여 저주에서 해방시키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주셨다. 나는 복 받고 형통하다. 나는 주님을 통해서 사망과 음부를 이기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가졌다. 입술로 자기를 향해서 이렇게 시인하면 자기의 셀프 이미지를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 이미지가 달라지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사람이 되는 것은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평안하다.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하면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심장병에 걸린 사람, 나는 심장이 튼튼하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 심장이 튼튼하다. 튼튼하다. 6개월 만에 심장병이 깨끗이 나아버린 것입니다. 내 사업은 잘된다. 내 사업은 잘된다.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사업은 잘된다. 내가 사업을 잘하는 셀프 이미지를 갖게 되면 그 자화상을 따라서 사업이 잘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꾸는 것은 자기가 어떠한 자화상을 가지게 되는가 그것을 입으로 자꾸 시인하십시오. 그렇게 아니되었는데도 그렇게 된 것으로 말해야 합니다. 나는 머리가 좋다. 나쁘다고 말하지 말고 나는 머리가 좋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성공한다.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면 성공한 사람이 돼요. 이러므로 자기를 개발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은 입술의 고백이 그것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결론>
말이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절대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여러분 말이 생각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이 꿈을 바꿔 놓습니다. 여러분 말이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이 창조적인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최대의 최고의 힘이 말인 것입니다. 말이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말이 꿈을 꾸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말이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고 말이 창조의 역사를 가져오고 말이 여러분의 자화상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로 축복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보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눅 10:5~6) 그래서 우리가 축복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는데 여러분 이웃을 보고 복 받으세요. 안 받아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돌아와서 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웃을 저주합니다. 욕을 합니다. 그러면 내가 귀로 들었기 때문에 내가 그 저주와 욕이 내게도 동시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항상 축복을 말해야 합니다. 축복의 언어가 자녀를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고 여러분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말이 씨앗이요. 잠언 18장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그러므로 우리가 말을 하면 전부 심어 놓아요. 우리 주변에... 그 심어놓은 씨앗이 열매를 맺어서 나중에 우리가 먹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씨앗으로 심어져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기분 내키는 대로 말을 쏟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믿음의 언어를 사용함으로 우리 삶에 아름다운 말의 열매가 열리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말하는 것이 내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말을 잘 사용하므로 하나님과 여러분과의 관계, 여러분과 이웃과의 관계, 여러분과 여러분 자신과의 관계를 성공적이고 승리적인 환경으로 만들도록 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014년 8월 10일 주일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