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 혼자 가지고 있다면 가치를 누릴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은혜로 주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성도들에게 영생의 소유 가치를 나누는 전도는, 삶이 존속되는 한 행하여야 할 자랑이자 의무이다. 당연히 영생의 생명을 전할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준비는 전도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진리의 생명 전함이 배가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지피지기’ 시리즈를 기고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 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무속’에 대한 접근이다. 무속적 사고와 행위, 샤머니즘적 의식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해 왔다. 유교를 수용하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무속적 행위들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미신·점술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공영 TV 방송 프로그램은 물론, 일간신문 지상이나 대학가에까지 퍼져 있는 미신적 행위들은 하나님을 떠난 영혼들의 무지몽매한 의지적 의식을 장악하고, 많은 금원을 뜯어내며 독버섯처럼 사회 전반을 유린하고 있다. 국가를 끌어가야 할 국회의원까지도 출마 여부를 무속인에게 상담할 정도로 한국인을 패망으로 이끄는 사회악의 근간이 무속이라면, 마땅히 무속을 타파하기 위한 배움으로 영생의 복음을 전하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무속인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귀신 들린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전도 현장에서 ‘하나님을 떠나 귀신을 영접하고 살아가는 자’라는 직접적 해석을 들고 그들과 마주한다면, 격한 역반응을 보일 수 있다.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 집을 늑탈하리요.” 상대방을 장악하고 있는 강한 자 곧 사탄, 귀신을 결박할 수 있는 권세가 그리스도 권세이다.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권세가 있다. 영생의 생명을 전할 상대방의 의식과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전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준비일 수 있다.

무속이란? 무당과 관계된 종교현상을 총칭한다. 무속신앙의 주체인 무당이, 死(사) 제자 신분으로 신도들을 위하여 제의를 베풀어 귀신을 위로하고 사람을 안심시키는 토속 종교 행위라 말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귀신의 발생과 귀신의 퇴치를 위한 행위들을 알아보자.

1. 귀신의 발생

귀신의 발생은 생물과 무생물에 의한 두 가지다. 생물 중 발생 관계가 명확한 것은 사람이다. 여기서는 사람에 국한된 사고만을 기술하기로 한다. 사람이 귀신이라 함은, 죽은 후를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혼과 귀와 백이다. 즉, 사람이 죽으면 천·지·인 세 곳에 걸쳐 존재한다. 혼은 하늘로 올라가니 천(天)에 있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니 지(地)에 있고, 귀는 공중에 머물러 사람과 같이 있으니 인(人)에 있다 한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귀와 백이다. 귀는 인간에게 의탁하여, 살아있는 인간이 지내는 제사를 받고 산다. 백은 땅(풍수학적)에 머물면서, 자손에 영향을 미친다. 백은 땅 속에서 3년 제사를 받고, 귀는 집안에서 4대 동안 제사를 받는다.

여기서 만약 백과 귀가 자손의 조의를 받지 못한다면, 응결하여 귀신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이 죽어 귀가 돼 자손 4대에 영향을 미친다면 오싹하다. 백은 우리가 연구하는 풍수적 측면과 연결된다. 묘자리를 잘못 쓰는 것이 왜 자손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려면, 구체적 설명이 부족하다.

‘귀신이 보인다’ 하면 살아있는 사람의 숫자보다 귀신이 더 많다. 정당한 방법으로 사망하거나 자손의 조의를 잘 받는 귀신은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죽은 후에도 제사를 받지 못하거나 사망 원인과 살면서 행한 일들의 정도 차이로 영향이 다르다. 말하자면 병사, 객사, 초년 사망, 전사, 자살, 모함, 타살 사망자 등이 생에서 사기, 도박, 강도, 지나친 욕심 등의 행위를 했다면, 죽어서 그 한을 풀려고 귀신이 된다.

2. 귀신의 음양

귀신은 ‘신명’과 음양적 측면에서 반대 입장이다. 신명이 양이면 귀신은 음에 속한다. 귀신은 음에 속하기 때문에 그 성정이 음기를 좋아하고 양기를 기피한다. 어둡고 탁한 기운을 좋아하고, 맑고 깨끗함을 기피한다. 결함됨을 좋아하고 원만함을 기피한다. 강한 자는 기피하고 약한 자를 좋아한다. 이 모두 음적 기운을 좋아한다 하겠다.

귀는 음에서 생성되고 거주하는 반면에 신은 양에서 거주하니 곳 하늘이다. 신이 있는 곳은 하늘이고 밝은 곳이다 귀가 파괴를 일삼는다면, 신은 천지 간에서 발전과 건설에 참여를 한다. 신이 사람과 교섭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람이 신을 부르는 것이요, 둘째는 인간이 잘못하면 권선징악의 차원에서 인간을 각성코자 자기 스스로 교섭하는 것이다.

신은 부정을 싫어하기 때문에 부정한 마음과 부정한 행위를 하면 내려오지 않는다. 만약 내려온다면 징벌을 받게 된다. 제사를 지낼 경우에도 성심성의를 표해야지, 마음에 부정이 든다면 감응치 않는다. 각종 의례의 경우 높은 산이나 큰 나무를 택함은 신이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이 닿을 정도의 높은 곳을 택함이 그 이유이다. 의례시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는 등의 청청함을 표시해 두는 이유도, 신은 양에 속하는 깨끗함을 원하기 때문이다.

귀와 신을 이렇케 상반되는 존재로, 신은 행복을 주고 귀는 해를 끼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신에 해를 당할 경우, 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보통 신은 귀를 물리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이른바 귀는 사람의 마음을 틈타 침입하여 위해를 가하지만, 신은 사람의 지성과 정성에 감응하여 그 희망과 목적을 소원케 도와준다. 바로 이 점이 귀신은 무서운 대상이고, 신명은 반가운 대상이 되는 것이다.

행복의 부여자는 곧 신명이다. 신명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 벌이 무서운 경우도 있다. 이를 ‘신벌’이라고 한다. 가령 사람이 신에 대해 불경을 하였거나, 욕되게 하고 더럽힐 경우 등이다. 그에 대한 벌책은 인간에게 주위를 환기시킴과 같다. 귀신처럼 이것을 빙자하여 대접을 받자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뉘우치길를 기다린다. 인간이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뉘우친다면 그 벌책을 소멸된다.

사람이 죽어 귀·혼·백이 된다 함도 이와 같은 이치이다. 혼은 하늘로 올라 신이 되고, 귀·백은 공중과 땅에 머물러 귀가 되는 경우이다. 말하자면 귀와 백의 주체자는 신인 혼인 것이다. 망연자실한 사람을 보고 ‘혼 나간 사람’이라 하고, 신나게 뛰어노는 사람을 보고 ‘신명나게 논다’고 말하는 언어도 이것에서 나온 용어라 사료된다. 사람이 죽어 귀·혼·백이 된다 하니,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행함도 알 수 있다.

3. 귀신의 거주지

귀신은 음기를 좋아하니 음기가 왕성한 물질이나 장소 등에 모이고, 양기가 충만한 곳은 거주지로 선택하지 않는다. 음침한 곳, 어두운 동굴, 바위 틈, 옛날 우물, 오래된 폐가, 산비탈 계곡 등에 모여 산다. 또 오래된 물건 등에서 지내기도 한다. 귀신의 거주지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곳, 양기가 결여되고 음기가 차 있는 곳에 거주하게 된다.

그리고 귀신이 인간에게 잠입할 때는 양이 우세하거나 음양이 조화를 이룰 때는 피해 있다가, 조화가 깨지고 음이 우세할 때 침입하게 된다. 안면에도 음양이 구분되는데, 귀신이 잠입하면 눈과 코는 양이니 피하고, 입과 귀에 머문다. 밤은 음에 속하니 사람이 꾸는 꿈 또한 음에 머무니 귀신의 거래가 빈번하다 하겠다.

4. 무속의 행위

화기법: 불로 공격하여 귀신을 쫒는다.
구타법: 환자를 구타하면 신체에 잠입한 귀신이 도망간다.
경압법: 환자를 놀라게 하면 귀신이 놀라서 도망간다
자상법: 신체일부를 상처를 내어서 도망케 한다. 또 그림을 그려놓고 병난 부분을 칼로 찌른다.
봉박법: 환자의 신체를 대신해서 명태나 종이 등을 따라서 병이 나가라는 법
곡물법: 곡물을 사용하여 퇴치한다.
공손법: 귀신에게 공손히 대하여 존경의 뜻을 표해서 감동을 일으켜서 쫓는다.
부적법: 그림이나 글씨 등을 사용.
음식법: 환자에게 음식을 먹이고 귀신을 위로한다.

교회에서 지금 행하고 있는 ‘심방’은 추수 끝난 마을 집집마다 복을 기원해 주던 무속적 풍습은 아닌지. 일부 교회나 기도원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안수기도 는 ‘구타법’이나 ‘경압법’을 사용하여 귀신을 쫒는 무속적 잔재는 아닌지. 깊이 있는 고찰을 통해 그리스도 권세를 회복하고, 그리스도 권세를 사용하는 길이 가장 위대하고 경이롭고 유일한 진리임을 깨달아야 하겠다. <계속>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