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놀음판 돈은 새벽 문턱 나갈 때 보아야 알고, 한 인간의 성패는 관 뚜껑에 못을 박고 난 뒤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출신이나 성공을 자랑치 말고 잘 죽을 것을 준비하라. 준비된 자만이 잘 죽을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전연 준비하고 있지 않다가 황당한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누구나 어디서든지 죽음을 기억하고 예상하며 준비해야 한다(memento mori). 죽음에 대해 연구해 보자.

①죽음은 때로는 벌이요, 때로는 선물이며 수많은 사람들에겐 은혜다(세네카) ②나는 나의 집을 떠나듯이 인생을 하직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 묵었던 여인숙을 떠나듯이 인생을 하직하고 싶다(키케로) ③돌아 보니 서산에 해 지는데 북소리 둥둥 내 목숨 재촉하네. 황천 가는 길엔 술집도 없다는데 오늘 밤엔 뉘 집에서 쉬었다 가리(성삼문) ④새는 죽음에 가까우면 그 소리가 구슬프고, 사람은 죽음에 가까우면 그 말이 어질게 된다(증자) ⑤죽음을 피하기보다 죄를 삼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토마스 아 켐퍼스)

⑥죽음은 나에게 괴롭지 않다. 왜냐하면 나의 고통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팔라다스) ⑦‘나 온다 운다’ 그것이 인생이며, ‘하품한다 간다’ 그것이 죽음이다(송드 샹세유) ⑧명예로운 죽음은 불명예스런 삶보다 귀한 것이다(소크라테스) ⑨사람은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이다(제임스 보즈웰) ⑩사망은 출생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비밀이다(아우렐리우스)

⑪삶은 죽음의 동반자요, 죽음은 삶의 시작이니 어느 것이 근본인지 누가 알랴? 삶이란 기운의 모임이다. 기운이 모이면 태어나고, 기운이 흩어지면 죽는다. 이와 같이 삶과 죽음이 같은 짝임을 안다면 무엇을 더 근심하랴(장자) ⑫생(生)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의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그 한 조각 뜬 구름의 사라짐이다(기화) ⑬우리는 단지 소작인에 불과하다. 조만간에 대지주가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을 통보해 올 것이다(조셉 제퍼슨) ⑭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하고, 그 끝은 또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마닐리우스) ⑮죽는 것보다는 고통 받는 것이 더 낫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인생관이다.

매 분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매 분마다 한 사람이 죽어간다. 죽음은 영원한 궁궐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이제 어느 사형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감옥 안, 어느 사형수가 어린 딸의 손목을 꼭 쥐고 울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아, 너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내가 어떻게 죽는단 말이냐? 아빠… 아빠….” 마지막 면회시간이 다 되어 간수들에게 떠밀려 나가면서 울부짖는 소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애처로워 간수들도 가슴을 에게 했다. 그 소녀의 아버지는 내일 아침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그것을 신호로 하여 교수형을 당하게 돼 있었다.

소녀는 그날 밤 종 치는 노인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내일 아침 새벽종을 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종을 치시면 우리 아버지가 죽고 말아요. 할아버지, 제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네?” 소녀는 할아버지께 매달려 슬피 울었다. “얘야,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만약 내가 종을 안 치면 나까지도 살아남을 수가 없단다.” 할아버지도 함께 흐느껴 울었다.

마침내 다음날 새벽이 밝아왔다. 종지기 노인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종탑에 이르렀다. 그리고 머뭇거리다 줄을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리 힘차게 줄을 당겨보아도 종은 울리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다시 잡아당겨도 여전히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사형집행관이 급히 뛰어왔다. “노인장, 시간이 다 됐는데 왜 종을 울리지 않는 거요?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지 않소?” 하며 독촉했다. 그러자 종지기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글쎄 아무리 줄을 당겨도 종이 안 울립니다.” “뭐요? 종이 안 울린다니? 그럴 리가 있나요?” 집행관은 직접 줄을 힘껏 당겨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종은 울리지 않았다. “노인장! 빨리 종탑으로 올라가 봅시다.”

두 사람은 계단을 밟아 종탑위로 급히 올라가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종의 추에 매달려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있는 소녀 하나가 있었다. 자기 몸으로 종소리가 나지 않도록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정부에서는 이 소녀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되어 그 사형수의 죽음을 면제해 주었다. 그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어린 딸을 부둥켜 안고 통곡하며 울었다. 보는 사람도 모두 함께 울고 말았다. 그 소녀는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표상이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