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을 나누던 중 파안대소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좌)와 이재철 목사(우).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 수요성경공부가 열리는 16일 오후 8시, ‘창립 9주년 축하의 밤’ 행사로 이 교회 담임 이재철 목사와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성 베네딕도수도원)가 신앙 대담을 진행했다. 100주년기념교회는 지난해 7월 14일에는 8주년 기념으로 ‘송정미 리바이벌’ 집회를 열었었다.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이해인 수녀는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는 아픔을 겪었다. 세례명 클라우디아의 이 수녀는 1964년 성의여고 졸업 후 성베네딕도수도회에 입회, 1968년 수도자로 살 것을 서원하고 필리핀에 있는 성루이스대학교에서 공부한다. 귀국 후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낸 후 시와 산문 등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2008년 직장암 판정을 받아 항암치료를 받았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둔 최근 <교황님의 트위터>를 펴내기도 했다.

대담은 이재철 목사가 묻고 이해인 수녀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해인 수녀는 의외의 ‘폭풍 수다’로 큰 웃음을 안기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개신교에 대한 이야기에는 특히 조심스러워했다. 이재철 목사는 “신앙의 연륜으로 보나 암 투병 경력으로 보나 대선배님”이라고 했고, 이해인 수녀는 “모태신앙이라 믿으라 해서 믿었고 교리도 잘 모르는데 ‘누님’이라 불러줘서 왔다”고 화답했다.

Q1. 인생이란 무엇인가?

첫 질문부터 묵직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쉬운 것 같지만 답하기는 어려워하는 내용, ‘인생이란 무엇인가?’ 였다. 이 수녀는 “어린 마음에도 한 번 태어났으면 죽어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했다”며 “책을 읽거나 성가를 듣는 가운데, 인생이란 하나의 ‘길’ 같아서 계속 걸어가다 정점에서 끝나면 돌아가야 하는 것 같았다. 기차를 타면 내릴 때가 있듯, 인생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상징으로 다가왔다”고 답했다. 또 “좀 자라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으면서, 인생을 하나의 ‘무대’와 같다고 느꼈다”며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는 문구가 와닿았는데, 돌이켜 보면 ‘무대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이제 출구로 나갈 때가 됐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 순간이 소중하고, 인생은 하나님 주신 선물과도 같은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나 한다”고 덧붙였다.

▲대담을 경청하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 ⓒ이대웅 기자

이 수녀는 “인생은 순례자로서 가야 하는 길, 맡은 배역을 충실히 해야 하는 배우 같은 느낌으로 이해했다”며 “여러 영성가들의 저술에서도 인생을 ‘임시 숙소’로 표현했듯, 반드시 고향이 있어야 하는 쪽으로 귀결되니 위로가 됐다”고 전했다.

칠순을 맞은 지금 인생관이 어떻게 변했느냐는 질문에는 “시를 쓰니 사람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감성이 넘치고 소녀적이고 아름답고 착하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른 채 예쁜 말만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며 “마침 암에 걸리니 ‘이제 고통을 말할 수 있겠구나. 비난하던 이들이 통쾌해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다”고 말했다. 이 수녀는 “수도생활을 40여년간 했는데 지금이야말로 고통을 복으로 역이용해 ‘고통이 복’임을 보여주고 싶었고, ‘암이 생의 전환점이 되어 이전의 삶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기도하게 됐다”고 했다.

당시 이해인 수녀의 암은 말기에 가까웠던 탓에, 유서도 쓰고 마지막 성사도 했었다고 한다. 이 수녀는 “죽을 듯이 아픈데도, 사람들은 제가 시인이라 그런지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몸으로 느낄 때’라며 위로하더라”며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지난 6년간 저 자신의 아픔 때문에 자기연민에 빠진 채로 울지 않았고, 이런 모습이 스스로 기특했다”고 했다. 그녀는 “체면 때문인가 해서 혼자 십자가 앞에도 있어봤지만 전혀 눈물이 나질 않았다”며 “수도생활 40여년의 내공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동료들도 ‘여장부 같다’고 칭찬해 주시니 ‘암에 걸리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수녀는 “암 투병 이후 칠순에 달라진 인생관이라면, 건강할 때 쓰지 않았던 기쁨과 환희, 즐거움과 행복 같은 단어들을 더 많이 쓰게 됐다”며 “고통 속에 복이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느꼈고, 이것이 젊은 날 느끼지 못했던 연륜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이재철 목사는 이에 “인생이 순례자라면 세상을 목적지로 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걸어야 할 길이 분명해진다”며 “세상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걷는 길과, 순례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걷는 길은 분명 다를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 목사는 “수녀님 말씀은 단순히 수도생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순례자로 살아간다면 지위가 높든 낮든 내공과 깊이가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연장선상에서, 수녀님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암 투병은 평소 가지셨던 죽음에 대한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를 물었다.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Q2.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해인 수녀는 “제 인생에서 암에 걸리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한 일이 없었고, 더구나 직장암은 ‘착한 암’이라 해서 죽는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전이가 되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죽음이 추상적인 게 아니라 가까운 손님처럼 다가왔다”며 “이전에 죽음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왔던 것은 지난 2007년 어머님이 95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때로, 남들은 ‘호상(好喪)’이라 했지만 존재의 뿌리인 어머니가 죽음으로 문을 닫으시니, ‘어머니가 가는 세상이라면 나도 갈 수 있겠다’고 친숙하게 생각됐다”고 이야기했다.

이 수녀는 故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 “언젠가는 인생이 끝나고 죽을 것이라 생각하면, 부차적인 것은 다 없어지고 본질만 남는다”를 언급하면서 “원래 어린 시절부터 전쟁을 겪는 등으로 죽음에 대해 많이 묵상해 왔지만, 잡스 같은 훌륭한 사람이 죽음을 묵상하면서 살았다고 하니 저도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죽음을 말할 수 있는 당당함과 유쾌함의 영성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녀는 “요즘은 하루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용서되지 않던 일도,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생각하면 금방 용서가 되더라. 형제를 용서하면서 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작은 죽음’을 체험하면, 더 큰 죽음이 올 때 더 쉬워지지 않을까”라고도 했다.

이재철 목사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 실은 죽음을 생각하는 게 가장 생명을 생명답게 한다는 것”이라며 “저도 작년 4월 암 선고를 받은 이래 단 한 번도 (암 때문에)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감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는 “병 자체만을 보면 절망스럽지만, 이 세상은 순례의 길이고 우리에게는 반드시 나가야 할 출구가 있음을 잊지 말라”며 “그 큰 그림 속에서 생각하면 병도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 목사는 “‘제 인생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마감하게 하실까’ 하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며 “암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겸손하게 제 생명을 생명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셈이고, 그 섭리 속에 제 인생이 생명답게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게 감사의 조건이며, 어둠이 있어야 빛이 비취듯 암세포가 있어 제 몸의 나머지 모든 세포가 생명의 세포로 하나님 앞에서 갈무리되어 갈 수 있다”고 했다.

Q3. 믿음이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해인 수녀. ⓒ이대웅 기자

‘그런데 수녀님, 믿음이 뭐죠?’라는 이재철 목사의 물음에 이해인 수녀는 “저는 어머님께 ‘선택의 여지’ 없이 신앙을 선물로 받았다”며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성당 다니는 게 귀찮고 힘들 때도 많았고, 사랑과 자비와 기쁨의 하나님보다는 잘못하면 벌 주는 엄격하고 경직된 문화에 물들어서 ‘조금 더 자라서 믿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이 수녀는 “그러나 요즘은 ‘모태신앙’이 저를 지켜줬고, 마치 먹어야 할 음식처럼, 입어야 할 옷처럼 믿음이 배어 있음을 깨달았다”며 “정말 믿음은 선물이자 은총이다. 호스피스 병동에 가 보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세례 받으실래요?’ 물어도 끝까지 안 믿는 분들이 계시지 않나. 믿음은 정말 제게 커다란 선물이자 복이고 호흡과 같다”고 말했다.

행복에 대해서는 “수도원에서 엄격히 살다 보니 행복하고 기뻐하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행복은 결국 선(善)이 맺어주는 열매와 같다고 생각한다”며 “수도생활을 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면 행복감을 느꼈다. 시를 잘 쓰는 게 행복은 아닌 것 같았고, 예수님 닮은 마음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도왔을 때 느꼈던 기쁨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이 수녀는 “행복은 멀리서가 아니라, 정말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한다”며 “병원을 들락거리면서는 링거 주사 없이 자유롭게 다니는 것, 슬리퍼만 신다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것조차 기막힌 행복이었다. 일상 안에 기적과 행복이 있는데, 너무 먼 데서 찾았구나 생각했다. 거창한 곳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행복을 놓치고 사는 게 아닐까”라고 전했다.

이재철 목사는 “행복은 말씀처럼 선을 행하고 남을 배려하고 이기심을 버리고 고통을 겪어야 찾아오지, 절대 저절로 오지 않는다”며 “기독교에서 2천년간 ‘황금률’로 정해온 것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였는데, 행복이 바로 그 속에 있다. 행복은 내가 먼저 ‘하고자’ 하면 절대로 멀리 있지 않지만, 그것을 ‘받고자’ 하면 너무나 멀리 있다”고 덧붙였다.

Q4. 화날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살다 보면 화날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하시는가’를 묻자, 이해인 수녀는 “살아가면서 덕이 쌓이는 게 아니라, 성격이 급해지고 화를 더욱 참지 못하겠더라”고 털어놓아 공감을 샀다. 이 수녀는 “하나 터득한 점은 수도복을 입고 있는 순간만큼은 절대 화를 내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제가 설사 ‘의로운 분노’를 냈더라도, 상대편에서는 수도자로서 화를 냈다는 사실만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수녀는 “수녀나 신부, 목사처럼 ‘제복 입고 사는 사람들’은 화 내는 순간 냉담자, 걸림돌을 만드는 것”이라며 “화가 나면 얼른 ‘관 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은 채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화살기도를 드린다”고 밝혔다. 또 “화를 내고 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미리 상상할 경우에도 마음을 얼른 내려놓을 수 있고, 이것도 하나의 연습”이라며 “누가 미운 말을 하면 반대로 말하기도 하고, 아무리 화가 나도 ‘골 때리네, 환장하겠네, 미치겠네, 뚜껑 열리네’ 같은 막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답했다. 그래도 화를 내고 싶다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죠?’, ‘너무 심하지 않아요?’,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겠어’ 등 평범한 말로 순화하는 것도 방법.

그녀는 “한국 사람들은 너무 미치고 죽고 때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부정적인 말들을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잘 정리하려 노력한다”며 “세금 안 든다고 말을 막 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노와 관련해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 전 일화도 곁들였다. “시각장애 여성들이 찾아왔는데, 눈이 안 보이니 100% 제 말을 경청하고 계셨다”며 “우리 건강한 사람들은 대화하면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짓을 하는데, 그 분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듣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잘못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재철 목사는 “사람이 말을 하는데 있어, 그 말이 공기를 진동해서 상대에게 전해지기 전에 자기 청각을 먼저 울린다”며 “내가 하는 말에 내가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목사는 “막말을 하는 사람은 결국 삶에 품위가 없어지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삶 자체가 절제된다”며 “말씀처럼 개인적 분노는 잘 다스려야 하지만, 사회악에는 분노를 느낄 수 있도록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에베소서 4장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6-27절)’고 했는데, 사회악에 대한 분노를 느끼더라도 해가 지기까지 분노의 노예 상태로 있게 되면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이것이 결국 흉기가 되어 죄로 귀결되고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된다”고 강조했다.

Q5.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이재철 목사. ⓒ이대웅 기자

세월호 참사로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었고, 이외에 모든 개인들에게도 존재하는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해인 수녀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더라”며 “치유라는 것은 남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 이미 있는 ‘힐링 파워’를 꺼내서 남은 조금 밖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특히 신자라면, 십자가의 신비를 보면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아프고 슬픈 시를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재철 목사는 이에 대해 “예수님만이 치료하실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만 상처의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그러한 의미만 찾으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 텐데, 나치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간 의사 빅터 프랭클은 그 경험을 담아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매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절대적인 의미를 찾았다고 고백한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돈으로 가치를 따지는데, 가치는 부여하는 것이고 의미는 찾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며 “상처가 영광의 토대가 되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만약 인생의 상처 속에 힘들어 하신다면, 그 상처 속에 하나님 섭리에 의한 절대적 의미가 있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에서 치유가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수녀는 “본회퍼의 <옥중서간>과 우찌무라 간조의 저서들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제시했다.

이해인 수녀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은 되도록 많이 말하지 않은 채 객관화시키고,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큰 일이 난 것처럼 이야기하면 좋겠다”며 “자기연민과 자의식에 빠지지 않는 이러한 노력이 의존적이지 않은 삶을 꾸리게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수녀는 “투병하면서 보니 정말 홀로서기가 필요했다”며 “그래서 환자의 입장으로서만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의 입장을 모두 객관적으로 묵상하면서 며칠 전 시를 쓰게 됐다”고 했다.

이 목사는 “여러분들이 상처를 받았다면 누가 내 옆에 있어줄 것을 기대하기보다, ‘영원한 위로자 되신 주님이 내 곁에서 말 없이 품고 계시구나’ 하고 생각하면 좋겠다”며 “홀로 서야 더불어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공생인데, 그 전제조건은 바로 자립”이라고 했다.

Q6. 이 시대에 대한 질문

이재철 목사는 “수녀님께서 그동안 많은 감동적인 시를 쓰셨는데,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이 갖지 않은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그것이 시로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데, 이 시대를 보시면서 갖고 계신 질문들이 있는가”를 질문했다.

이해인 수녀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고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종교인들이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인류의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라며 “지금도 끊임없이 ‘종교’라는 이름 하에 전쟁을 하고 있고, 남북한도 동족끼리 이렇게 미워하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또 “작은 부분이지만, ‘이 시대 여성들은 왜 외모에 집착하고 예쁘려고만 할까,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질문이 있다”며 “저도 세상에 살았다면, 저렇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고 답했다.

▲이해인 수녀와 이재철 목사, 가톨릭과 개신교의‘신앙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Q7. 종교인들이 개선할 점, 교회의 장단점은?

수녀가 되고 시를 쓰게 된 계기, 황량한 도시 문화 속 ‘그리움’의 존재와 그 극복에 대해 대화한 후 이재철 목사는 ‘모든 종교를 망라해 동시대 종교인들이 스스로 개선해야 할 태도’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이해인 수녀는 “좋은 부분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겸손이 부족한 것 같다”며 “우월감과 독선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배타적인 모습, 특히 평신도들보다 신부나 목사, 승려들이 입만 열면 남을 가르치려 하고, 자기 분야가 아닌데도 너무 쉽게 말하려 하며 친구가 되기보다 군림하려 하는 걸 고쳐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겸손과 받아들임, 이해와 수용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특히 개신교에 대해 이 수녀는 “학교 채플이나 교회 강연을 많이 다니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크게 웃어 주시고 할렐루야도 외쳐 주시고 박수도 쳐 주시는 등 반응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라며 “선교에도 적극적이고, 찬양을 아름답게 드리며, 항상 말씀과 가까이 있고 깨어 있는 것, 친교도 잘 하고 밥도 함께 자주 먹고, 통성기도와 헌금은 우리와 게임이 안 된다. 칭찬할 게 많다”고 했다.

그러나 ‘작정 기도’라는 용어에 대해 “너무 작정하고, 하나님 입장에서 ‘안 들어주면 큰일나는’ 것 같다”며 “‘작정’이라는 말 자체가 겸손이 부족하지 않은가”라고 언급했다. 이 수녀는 “주님의 뜻이 이뤄져야 하는데, 기도하는 우리의 뜻이 이뤄져야 하는 듯한 느낌”이라며 “간증도 좀 겸허하게 했으면 한다. 기독교방송을 보면 간증이 굉장히 드라마틱한데, 하나님이 들으셔도 민망할 정도”라고 했다. 그녀는 “‘꽃도 반만 핀 게 좋다’고, 조금만 감췄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찬양도 씩씩하게 해서 좋은데, 가끔은 작게도 했으면 한다. 이외에는 배울 점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 목사는 이에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을 잘 해 주셨다”며 개신교에 대해 설명했다. 신앙 공동체의 발전 과정을 보면, 제사장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던 구약에서 휘장이 찢어지고 신약에서 교회가 생겨났다. 이후 가톨릭 교회는 구약보다 훨씬 발전됐지만, 여전히 신부 없이 미사를 드릴 수도, 고해성사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1517년 누구든지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고, 목사 없이도 예배드릴 수 있는 개신교가 출발했다. 신앙 공동체 형태 상으로는 가장 진화했으나, 이에 반비례해 성도들이 하나님을 소유하려 한다는 것.

▲이해인 수녀가 대담 후 일어서서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재철 목사는 “개신교 교인들은 모두 각자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고, ‘직거래’를 하다 보니 무조건 ‘내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거나 ‘네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달라지게 됐다”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직접 예배드릴 수 있는 대전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자기 부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내가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없고 컨트롤 당해야 한다는 게 믿음인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며 “그래서 ‘40일 작정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들어주셔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게 믿음이 아니다. 오늘 수녀님께서 굉장히 조심스럽고 시적으로 고상하게 표현해 주셨는데, 깊이 새겨 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재철-이해인 신앙 대담’은 100주년기념교회 9주년을 맞아 이해인 수녀가 지은 시 ‘생일을 만들어요, 우리’를 함께 낭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해인 수녀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시와 그림이 있는 엽서를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