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 50:24-25)

요셉은 마지막을 신앙 안에서 아름답게 마친 인물이었다. 처음은 모두가 흠모하는 삶을 살다가도, 마지막을 아름답지 못하게 마친 안타까운 인물들이 성경에 많다. 구약의 대표적인 그런 인물로는 사울과 솔로몬을 들 수 있다. 두 인물 모두 처음에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멋진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 뜻에서 벗어나 스스로 복을 저버렸다. 그에 비하여 마지막까지 신앙의 아름다움을 지킨 인물들도 많다. 구약의 대표적인 그런 인물로는 모세를 들 수 있다. 눈이 흐리지 않을 만큼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던 모세는,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여호수아에게 영도력을 넘겨주고 역사의 무대 뒤로 물러났다. 그가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 편 어느 골짜기에 장사는 되었지만, 그의 무덤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위대한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한 결과로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마쳤기 때문이다.

요셉 역시 마지막이 아름다운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가 보여준 마지막의 아름다움은, 애굽에서 죽어 장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그것은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요셉의 형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요셉은 애굽에서 죽어 애굽의 장례법에 따라 장사되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의 약속을 잊지 않고, 오히려 그 땅을 향한 소망을 간직한 채 일생을 마쳤다. 그는 죽기 전 형들에게 앞으로 있게 될 출애굽 때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 땅으로 옮겨 달라고 유언했다(창 50:24-25). 요셉의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 담긴 그의 유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신앙적 교훈을 전해준다.

첫째로,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출애굽에 대한 기대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이주시키신 것은, 그곳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애굽은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한 잠정적인 수단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스라엘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되면, 그들은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요셉은 그런 하나님의 계획을 전적으로 수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지향하시는 최종 목적지 가나안을 놓치지 않는 신앙적 지혜와 안목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관련이 있다. ‘돌보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파카드’는 ‘찾아오다’ 혹은 ‘소집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찾아온다는 것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감독자로서의 점검을 위한 방문을 의미한다. 그래서 군대의 사령관이 병사들을 불러 모은다는 소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동사가 ‘순찰하다’로 번역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요셉이 출애굽을 언급하면서 ‘파카드’ 동사를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의 애굽 거주가 잠정적 조치임을 강조하면서 가나안이 하나님의 본래 의도하신 역사의 현장임을 지적한 것이다. 요셉은 두 번이나 하나님의 돌보심을 언급하였는데, 모두 강조형태의 동사 구문, 곧 정동사 앞에 독립부정사를 위치시킴으로 동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요셉의 출애굽에 대한 기대가 감상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인 확신의 열정이었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요셉은 당대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애굽에 비하면 형편도 없는, 열악한 환경의 초라한 가나안을 더 선호하는 신앙적 자세를 갖고 있었다. 요셉은 애굽에서 어느 누구도 누려 보지 못한 온갖 영화를 다 가졌던 인물이었다. 요셉은 바로 다음 서열의 총리에 임명되면서, 위기에 처한 애굽을 구출하였던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요셉은 당시 최고 종교 지도자였던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함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회적 신분과 함께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위치에 올랐다(창 41:45, 5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가나안 땅에 오히려 더 큰 소망을 두고 살았다. 땅에서의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의 약속에 더 큰 우선순위를 둔 것이 요셉의 거룩한 모습이었다.

요셉의 가나안을 향한 소망은, 출애굽 때에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 달라는 당부로 구체화되었다. 비록 겉사람에 속하는 해골은 향 재료와 함께 애굽에서 입관되었지만, 속사람의 비전은 가나안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요셉이 보여준 믿음 곧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였다. 요셉의 소망대로 출애굽은 이루어졌고, 모세는 요셉의 유언대로 그의 유골을 가지고 애굽을 출발하였다(출 13:19). 그리고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입국을 주도한 여호수아는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다(수 24:32). 요셉의 가나안를 향한 소망은 자신의 유골이 그것에 장사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가나안을 우선하였던 요셉의 신앙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방랑생활을 할 때에, 그들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지켜주었던 신앙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그 점에서도 요셉은 담장을 넘은 무성한 가지 역할을 하였다(창 49:22).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 회장,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