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창세기 10:22)

엘람 후손들의 정착지

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다. 그 중 엘람(Elam)은 장남이었다(창 10:22; 대상 1:17). 엘람은 셈(Shem)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손들의 이름을 성경에 남기지 않고 있다. 이것은 엘람의 후손들이 일찌감치 셈 공동체와 멀어졌음을 암시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성경이 언급하지 않는다. 이들 엘람의 후손들은 아라랏 산 남동부인 지금의 이란 땅으로 갔다. 이란 남서부 고원 지대인 쿠지스탄 평원과 자그로스 산맥 근처가 그들의 초기 정착지였다. “엘람”의 뜻이 “높은 땅”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곳은 풍부한 지하 광물과 천연 목재를 가진 곳으로, 동서남북의 교통로 역할을 하면서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였다.

최초 세계대전의 중심 인물, 셈의 후손 그돌라오멜

성경은 엘람왕 그돌라오멜이 아브람 시대 가나안을 침략한 동맹군의 지도자였다고 소개함으로, 이들 엘람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흥왕하면서 만만찮은 정치적 결사체를 이루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창 14:4, 5). 그돌라오멜의 ‘그돌’(Kudur, Kutir)은 ‘종’(servant)을 나타내는 단어로, 그돌라오멜은 신의 후손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돌라오멜은 시날왕 아므라벨(바벨론), 엘라살왕 아리옥과 고임왕 디달과 연합군을 조직하여 가나안 땅을 침략한다. 이 전쟁은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세계대전이었다. 가나안 침략의 핑계는 소돔과 고모라가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배반한 것에 대한 응징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소돔왕 베라, 고모라왕 비르사, 아드마왕 시납, 스보임왕 세메벨, 그리고 벨라 곧 소알왕이 가나안 연합군이었다. 이 최초의 세계대전은 그돌라오멜 연합군의 대승으로 막을 내린다. 소돔과 고모라 병사들은 싯딤 골짜기의 역청 구덩이에 빠지고 살아 남은 자들은 주변 산으로 도망쳤다. 소돔과 고모라의 재물과 식량은 모조리 그돌라오멜 연합군의 차지가 되었다. 이 소돔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재산을 약탈당하고 포로가 되었다. 아브람은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야음을 틈타 네 왕을 기습 공격한다. 다메섹 북쪽 호바까지 추격한 아브람은 조카 롯과 롯의 식솔들과 약탈당한 재물들을 모두 되찾아왔다. 아브람이 적은 인원의 사병으로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기습 공격하여 성공한 것은 분명 단순한 사건이나 우연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었다. 성경은 아브람이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오면서, 소돔왕 뿐 아니라 살렘왕이자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을 만난 사건을 소개한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을 축복하며 아브람의 승리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린다. 아브람은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이 사건 전반은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엘람의 땅으로 돌아간 그돌라오멜은 초기 정착지를 중심으로 점점 더 그 세력을 확장한다. 이후 엘람족은 메대족(야벳 아들 마대의 후손)을 병합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은 메소포타미아 동쪽에 위치한 수사 혹은 수산까지 진출하여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살던 바로 그곳이었다.

성경 속의 엘람족

성경이 엘람의 직계 후손들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그 삶의 편린들을 살펴볼 수 있는 구절들은 남겨 두었다. 성경은 엘람 사람들을 활을 잘 다루는 사람들로 소개하며(사 22: 6; 렘 25:25), 이방 나라들을 잔인하고 난폭하게 다루는 족속으로 묘사한다(겔 32: 24, 25). 엘람왕 그돌라오멜의 침략 본성은 그 후손들에게서도 결코 식지 않았다. 또한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였을 때, 유대인들 일부가 엘람 땅으로 이주하였음을 시사한다(사 11:11). 유대인들은 엘람 뿐 아니라 앗수르, 애굽, 이디오피아, 바벨론, 히맛, 그리고 지중해 여러 섬과 해안 지역으로 흩어졌다. 엘람이 가고 싶은 땅이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찾아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후에도 엘람 땅으로의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는 이어졌다. 성경은 오순절 날 모인 사람들 중에서 페르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을 엘람인(Elamite)이라 불렀다(행 2:9).

성경에 예언된 엘람인 고레스(Cyrus)

고레스는 “태양, 보좌”라는 뜻이 있다. 그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창설자요 페르시아의 황제였다. 특별히 그는 고레스 2세 또는 고레스 대왕으로 불린다. 따라서 할아버지 고레스 1세(주전 668)나 젊은 고레스(주전 431-401)와는 구분해야 한다. 오늘날 고레스(주전 576 또는 590-주전 530)는 이란인들에게 이란(페르시아)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 그는 고레스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헤로도투스는 고레스에 대해 아버지 캄비세스 1세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의 통치자가 되었다고 했다. 고레스 통치 9년, 그는 야벳의 아들 마대 후손들이 세운 메대 왕국을 병합하여 통일 왕국을 이룬다(참조 단 5:28). 진정한 페르시아 왕국의 출발이었다. 고레스는 서쪽 리디아(Lydia) 왕국과 동쪽 파르티아(Parthia)를 합병하였으며,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넘어 인도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 불경한 일을 저지른 바벨론의 벨사살 왕을 제거하고 바벨론을 점령한 것도 고레스였다. 바벨론에 입성한 고레스는 놀랍게도 바벨론 사람들에게 관대하였을 뿐 아니라 그곳에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결국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다(대하 36:22, 23; 스 1:1-4). 이때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따라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5천여 명에 달하였다(스 2:64, 65). 심지어 고레스는 느부갓네살이 솔로몬 성전에서 약탈한 성전 기물을 되돌려 주었을 뿐 아니라(스 1:7-11, 6:5) 유대 민족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물질적으로 돕기도 했다(스 6:4).

고레스가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그러웠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사야는 고레스가 열국을 정복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회복할 자라고 예언했었다(사 45:1). 또한 고레스는 ‘기름부음 받은 자’요,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목자’라고 불렸는데(사 44:28, 45:1),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받을 것임을 뜻했다. 고레스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41장부터 46장 11절, 48장 15절까지 이어진다. 자기가 태어나기 150년 전, 패전 노예민족 유대 나라의 이름도 모르던 이사야라는 선지자의 예언서에 자기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고레스는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아마 전율을 느끼지 않았을까? 고레스에 의한 포로 귀환정책은 예레미야에 의해서도 예언되었다(렘 25:12-13, 29:10).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에 대해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기름부음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성전 재건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이루실 것이다(사 45:1-13, 44:28). 이렇게 고레스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였다. 요세푸스는 고레스가 이 예언서를 읽고 하나님의 권능에 경탄하여,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려는 열망과 야심이 그를 사로잡았다(Antiq. Ⅵⅰ.2)고 기록하고 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주전 605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왕실에서 봉사하며 생존해 있었다(단 1:21). 고레스가 점령지 바벨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정책을 펴는 가운데, 바벨론의 고위 관리였던 다니엘의 지혜로운 처신은 고레스가 유대 민족에 대한 우호 정책을 펴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고레스의 친 유대 정책은 고레스 사후에도 지속되어, 고레스의 후계자 아닥사스다 1세(주전 464-423)는 특별 법령을 제정하여 고레스의 정책을 계승하였다(스 7-10장; 느 2:1-8; 단 9:25). 물론 아닥사스다 1세의 친유대 정책에는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 왕(주전 486-464)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아닥사스다 왕 때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귀환이 이루어졌다.

엘람족과 그 미래

엘람의 후손들은 일찌감치 같은 셈의 후손인 아르박삿의 후손 아브라함과 조우하면서, 이스라엘과의 그 질긴 인연을 시작한다. 엘람족은 마대의 후손 메대 족과 병합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이루면서 고레스와 다리오 1세(주전 522-486),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1세 등을 통해 일찍부터 유대 민족과 접촉하면서 성경 속에서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란이라는 국명을 가진 나라로 동서양의 길목에 자리 잡은 엘람족은, 오늘날까지 같은 셈족인 이스라엘과 팽팽히 맞서는 나라로 남아 있다. 성경은 엘람의 후손들에 대해, 잔인하고 난폭하여 할례조차 받지 못하고 전쟁에서 칼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어리석은 족속으로 소개한다(겔 32:24). 성경은 생전 남을 해(害)하고 온 세상을 두렵게 만드는 폭력적 인생들에 대해, 죽음과 심판을 망각한 수치스런 자들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엘람의 후손들이 바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다(겔 32:25). 하지만 엘람 뿐 아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어리석은 세력들이 또한 얼마나 많던가! 세상 뿔과 권력이란 그저 잠시 잠깐이요 허망할 뿐이다. 기억하라!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의 심판 앞에 두려워 떨 날이 올 것이다(렘 49:34-38). 물론 동토에도 언젠가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 하나님은 이 잔인한 엘람 민족에게도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고 그 땅을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였다(렘 49:39). 이란의 평화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자!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