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홍 박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제37회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가 ‘경건주의 영성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18일 오후 서울 연지동 기독교학술원 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주도홍 교수(백석대)가 ‘경건주의 영성과 한국교회 -17세기 독일 개혁교회 경건주의의 무신론 이해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으며, 김길성 교수(총신대)와 한영태 교수(서울신대)가 논평을, 차영배 박사(전 총신대 총장)와 박봉배 박사(전 감신대 총장)가 종합을, 차영배 박사가 축도를 각각 맡았다. 앞선 1부 기도회에서는 이영엽 목사(이사장) 사회로 이윤희 목사의 기도, 김경원 목사(한목협 대표회장)의 메시지, 박봉규 목사(사무총장)의 광고 등이 진행됐다.

주 교수는 “17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주의 창시자 테오도르 운데어아익(Theodor Undereyck)을 중심으로 언급되는 무신론주의(Atheismus), 곧 교회 내적(innerkirchlich) 무신론 이야기는 경건주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라며 “당시는 인본주의적 계몽주의가 경건주의와 함께 출현하는 시기로, 30년 전쟁(1618-1648년)을 지나면서 유럽인들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17세기 경건주의는 교회 안팎의 무신론에 대해 분석하면서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리며 개혁을 시도했다. 같은 시대의 루터회 경건주의 창시자 필립 슈페너(Philip J. Spener)도 저서 <피아 데시데리아>에서 ‘진단-비전-처방’의 관점으로 당대 교회를 바라보면서 ①하나님 말씀을 우리 삶에 풍성히 가져오자 ②만인제사장설의 구체화를 실현하자 ③신앙과 지식, 행위의 조화를 이루자 ④논쟁 신학을 중지하자 ⑤신학수업을 경건훈련과 병행하자 ⑥설교는 내적 영적 인간을 겨냥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죄악을 드러내는 하나님 말씀이어야 한다 등 6대 개혁안을 제시했다.

주 교수는 “이러한 17세기 경건주의가 오늘 21세기 한국교회에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일까”라며 운데어아익의 무신론 사상을 중심으로 경건주의 영성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운데어아익도 슈페너처럼 바른 처방을 위해 자신이 속한 교회를 먼저 정확히 진단하고자 했으며, <그리스도의 신부(1670)>, <할렐루야(1678)>, <평신도(1681)>, <어리석은 무신론자(1689)> 등 작품에서 이를 다뤘다.

▲주도홍 교수. ⓒ이대웅 기자

운데어아익은 무신론에 대해 잘못된 신앙의 타성에 젖은 ‘이름 뿐인 크리스천(그리스도의 신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계몽주의자들’, 실생활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숨은 무신론자(이상 할렐루야)’, 문맹으로 신앙적 무지에 머무르고 있는 ‘초보 단계(평신도)’ 등으로 설명했다. 특히 <어리석은 무신론자>에서는 모든 생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론적 무신론’과 교회 내적으로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 가운데 발견되는 ‘실질적 무신론’을 다루고 있다.

주 교수는 “운데어아익에게 있어 무신론자의 반대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라는 뜻의 신테이스트(Syntheist) 라는 용어”라며 “그는 이러한 처방을 바탕으로 ‘교회 속의 작은 교회’ 모임인 소그룹 경건모임을 시작하고, 많은 반대와 오해와 핍박 가운데서도 초지일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운데어아익은 경건모임이야말로 자신의 회심 경험에 비춰볼 때 가장 강력한 이웃사랑의 수단이고, 무엇보다 이웃의 회심과 경건생활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며 이미 성도된 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감사와 은혜에 보답하는 사랑으로 필히 이행돼야 한다고 봤다.

주도홍 교수는 “운데어아익은 교회 내적 무신론자인 실천적·숨어있는·비밀스런 무신론을 추적하여 드러냈고, 이들을 어떻게 진정한 신앙인으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목회 주안점으로 삼았다”며 “이는 다름 아닌 화석화돼 가는 힘없는 ‘습관화된 기독교’를 깨우는 영적 작업인 소그룹 경건모임이었고, 이야말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웃을 위한 사랑의 의무로 강조돼야 할 일이자 교회의 정당한 동의 하에 이뤄지는 ‘교회 속의 작은 교회운동’이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17세기 독일교회가 이처럼 정신적 황폐에 시달렸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도 물질주의·쾌락주의·안일주의·명예주의·다원주의 등 여러 도전 앞에 유혹을 받으면서 깊은 나락에 떨어지고 있다”며 “이제 우리도 바른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한국 초대교회들이 가졌던 순전하고 소박한 영성으로 돌아가, 작은 부분부터 기본을 다시 쌓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기본을 세워 말씀을 함께 공부하며 기도하고 나누는 교회 속의 소그룹 경건모임 도입을 기본으로 다시 시작해, 그런 후 형성된 거룩한 삶을 세상에 모델로 제시하자는 것.

그는 “17세기 운데어아익이 독일교회를 진단하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렸듯, 21세기 한국교회도 먼저 바른 진단을 내리고, 앞선 선진들의 귀한 역사의 교훈을 들으며 지혜를 얻어 기본에 충실한 옳은 처방전을 갖고 실천하여 다시 새로워지는 은혜를 누리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경건주의, 3대 오해 걷어내고 교회갱신 운동으로 새롭게 이해돼야

발표에 앞서 김영한 박사는 ‘경건주의는 교회갱신 운동으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개회사를 전했다. 김 원장은 “경건주의는 종교개혁 정신이 한 세기 후에 고갈됐을 때 삶에 있어서까지 종교개혁을 완성시키자는 교회갱신 운동으로, 하나의 신학적 현상으로 다시 논의돼야 한다”며 “종교개혁이 중단되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종교개혁 정신을 되살리고, ‘교리에의 종교개혁’을 ‘삶의 종교개혁’으로 완성돼야 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경건주의는 영국 청교도주의, 특히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의 청교도 사상과 네덜란드 ‘나데레 레포르마치(nadere reformatie)’ 등을 통해 독일에서 탄생된 것으로, 마인강변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어난 슈페너 중심의 루터교 경건주의와 라인강변 북서부 뮐하임, 카셀, 브레멘 등에서 일어난 운데어아익 중심의 개혁교회 경건주의로 나뉜다.

김 박사는 “한국교회 안에서 경건주의는 단지 개인주의적 신앙운동이나 자유주의를 불러들인 운동, 또는 개인의 공로를 쌓는 도덕주의로 간주돼 왔는데, 이는 경건주의에 대한 3대 오해”라며 “이는 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먼저 ‘경건주의는 개인주의적 신앙운동’이라는 오해에 대해 “경건주의는 교회를 등지고 자기 스스로의 경건을 추구하는 신비적·일탈적 운동이 아니었다”며 “경건주의 운동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운동으로 오늘날 셀(cell)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고, 참된 기독교는 교리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영적 생명력이 생활 속에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자유주의의 계기를 만든 운동’이라는 오해에 대해선 “이는 정통주의의 비난일 뿐으로, 오히려 경건주의 운동은 성경 읽기와 연구를 하는 데 기여했다”며 “경건주의자들은 소그룹으로 모여 경건서적과 성경을 읽고 함께 묵상하면서 은혜 받은 바를 서로 나누는 등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신앙 전통 위에 굳게 서 있었다”고 밝혔다. ‘도덕주의’라는 오해와 관련해선 “경건주의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했으나 단지 도덕의 개선을 추구한 운동이 아니라, 이신칭의를 생활화하는 성화 운동이었다”며 “성화나 성결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자 성령의 역사임을 강조했다”고 반박했다.

김 박사는 “경건주의는 교회와 사회의 갱신운동으로, △인격적 체험적 종교를 가져다 줬고 △청교도 운동의 독일 버전(version)이었으며 △경건주의와 청교도 운동은 동일한 ‘교회 안의 교회 운동’이었고 △성경 연구의 열성을 가져다 줬으며 △한국교회가 자기갱신을 할 수 있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유산”이라고 소개했다. 또 “경건주의는 신비주의가 아니었으며, 내면적 개인의 경건생활에 그치지 않고 사회변혁 운동으로 나아갔다”며 “경건주의는 미완성의 종교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신비주의를 받아들였으나 사변적 경향으로 빠지지 않고 실천지향적으로 나아갔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영한 박사는 “경건주의는 신비주의나 율법주의가 아니라, 종교개혁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는 ‘교회와 사회를 위한 갱신운동’이었다”며 “오늘날 경건주의 정신을 새롭게 하는 한국교회의 갱신이 요구된다”고 당부했다.

기독교학술원은 오는 5월 2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부산총회 이후 WCC의 영성’을 주제로 제21회 영성포럼을 개최한다. 이날 포럼에서는 김상복(횃불트리니티신학대 총장)·박종화(경동교회)·이형기(장신대 명예교수)·이상규(고신대 교수)·김명혁(한복협 회장)·손인웅(덕수교회 원로) 박사 등이 발표할 예정이다. 논평은 권호덕(성경신학대 총장)·이동주(아신대 은퇴교수)·정일웅(총신대 전 총장) 박사가 맡는다. 설교는 이장식 박사(혜암신학연구소장·한신대 명예교수), 축도는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