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구역장 교육을 마치고 목양실로 들어왔다. 잠시 후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들어가도 돼요?” 권사님 한 분이 계셨다.

“어서 오세요. 권사님.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요?”
“‘아니에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무슨?”
“**수술 잘 되었나요?”
“예, 수술은 잘 하고 회복을 기다리고 있어요.”
“너무 적은 것이어서 부끄럽지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는데….”

권사님은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면서 말했다. “절대로 이름은 거명하지 말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토요일 저녁, 나는 전도사님에게 전화를 했다.
“어느 성도님이 **수술비를 좀 보태고 싶다고 하면서 봉투를 가지고 오셨는데, **에게 주일 예배 후에 목양실에서 좀 뵙자고 말씀드려 주세요.”

주일 3부 예배 후에 전달해 주기로 했다. 주일 2부 예배를 마친 후에 나는 권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다. “권사님, 그래도 이름이라도 알려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랬더니 권사님이 신신당부를 했다.
“그분이 다음에 저희들을 보면 불편해질 거에요. 그냥 무명으로 전달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그 권사님의 형편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을 도울 만큼 넉넉한 경제 여건이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돈을 내놓았다. 주님의 사랑 때문이리라. 자그마한 선심을 쓰고서 자기 이름 내려고, 사진 찍고 명함을 내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권사님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확언하건대, 하늘의 상급이 크리라.

지난 주일 저녁 사역자반을 마치고 집으로 왔을 때였다. 교육위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어느 집사님이 고등부 학생 **에게 장학금 100만원을 전해주고 싶어하는데, 목사님께서 목양실에서 기도하시고 전달해 주시면 어떨까요?”

그 학생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현재 서울기계공고를 다니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등부 부장을 맡았던 집사님이라, 그 학생의 사정과 형편을 매우 잘 알고 있는 분이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래요. 무척 감사한 일이네요. 주일예배 후에 그렇게 하죠”

“집사님은 제가 목사님에게 전달해서 장학금을 전해주기를 원하는데, 제 생각에는 집사님이 함께 계셔서 그 학생에게 격려를 해 주면 더 힘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목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제가 집사님과 통화를 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세 사람이 함께 모였다. 집사님에게 그 학생에게 덕담을 한 마디 하게 한 후에 기도를 해 주고 장학금을 전달해 주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예수님의 사랑의 심장을 가진 소중한 분들 덕분에 목회자로서 마음이 매우 기뻤다. 대단한 건 아닐지 몰라도, 삶의 현장에서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려고 애쓰는 이런 분들이 있기에 주님은 웃으시지 않을까?

어느 날 한 소녀가 산길을 걷고 있었다. 나비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소녀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비를 구해주었다. 소녀의 팔과 다리는 가시에 긁혀 피가 흘렀다. 그때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나비가 순식간에 천사로 변했다. 천사는 소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나를 구해준 것이 고마워,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

소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살게 해주세요.” 천사는 “알았다”며 소녀의 귀에 무슨 말인가 소곤거리고 사라졌다. 그 후 소녀에겐 일평생 늘 행복이 떠나지 않았다.

어느새 그 소녀는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죽기 전에 그 행복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비 천사를 구해 준 적이 있지. 그 대가로 나비 천사가 나를 평생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주었어. 그때 천사가 내게 다가와 내 귀에 대고 ‘나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지금 나를 구해준 것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꼭 도와주세요. 그럴 때마다 행복 에너지를 많이 보내드릴게요.’라고 속삭이고 떠나갔어.”

월요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됐다. 죄가 없으신 분이 불의한 자들에 의해 고난을 받으셨다. 왕이신 주님이 인간들에게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자신의 몸을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죄에 대한 대가를 자신의 몸으로 지불하신 것이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온 인류가 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있음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길은 자기 생명까지 나누는 삶이었다. 생명까지는 아닐지라도 가진 것의 일부라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나누는 삶, 그게 진정한 제자의 길이 아닐까? 그게 십자가를 지는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