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검암동 새로운교회).

첫 번째 선악과를 따먹은 대가가 인류의 죽음임을 모르는 성도들은 아무도 없다. 눈이 밝아져 스스로 하나님이 되기 위한 시도로 죽음을 맞이한 인간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낯을 피해 숨었으며, 유리하고 방황하는 자가 되어 육신의 소멸과 동시에 닥치는 불지옥의 영멸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량없는 은혜의 하나님께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 떠난 원죄 문제와 허물로 죽었던 인류를 구원하셨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두 번째 선악과를 따 먹은 모습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던 첫 번째 선악과 사건의 이면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궤계가 숨어 있었다. 끊임없이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이간·획책하는 사탄의 전략은, 인간으로 하여금 두 번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궤계이다.

두 번째 선악과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도 권세를 희미하게 만들거나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궤계이다. 그리스도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난 바 되신 권세이다. 죽음의 권세, 음부의 권세, 하나님을 대적한 권세, 하나님의 사랑에서 인간을 분리시킨 권세자인 사탄은 그리스도 권세 앞에 무너진 어두움이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죽음을 무용지물로 만든 절대자의 포효의 증거이다. 죽음의 세력은 그리스도 권세 앞에 풍전등화처럼 소멸되었다. 그러나 사탄은 자신이 가야 할 불지옥의 인질로 삼기 위하여,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시키기 위한 궤계를 멈추지 않고, 두 번째 선악과를 문명의 이기 속에 깔아놓았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킴으로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능력인 그리스도 권세가 없는, 인간 예수만을 남겨놓는 전략을 사용하여 한국교회의 영적 어두움을 조장하였다.

일부 목회자들은,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동일시하고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들의 이름 중 하나이다. 그러나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창조의 권능이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권세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밖에 소유할 수 없는 권세이다. 어느 누구도 피조물들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고린도후서 4장 4절 말씀은, 두 번째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들의 현재 상태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한 자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성도들은 영혼의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곧 하나님 형상인 그리스도가 회복된 영혼들이다. 영(靈)이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상태가 구원을 은혜로 얻은 증거이고,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 기록 앞에 그리스도 권세만을 뚝 떼어낸다면, 구원을 은혜로 받은 성도들일지라도 힘없는 성도로 전락하게 되고 하나님과 인간을 다시 한 번 분리시킬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선악과를 따 먹게 만드는 사탄의 전략이다.

사탄의 궤계는 오래 전부터 목회자들을 먼저 겨냥해 왔다. 우상숭배 수준의 물질 축적이라는 선악과, 음란의 선악과, 권위의 선악과, 교만의 선악과, 파벌의 선악과를 보기도 좋고 먹음직도 하게 영글어 놓고, 목회자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리스도 권세를 멸시하게 만드는 각종 선악과를 실컷 먹도록 유혹하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배가 터지도록 다양한 종류의 선악과를 따먹었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 찾아오는 졸음 속에서, 겨우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예수는 희미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가 희미해지고 사라진 자리에 세상 물질관과 가치관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때마다 날마다 시(時)마다 타락일로를 걷고 있다.

죄를 짓고도 죄를 모르는 상태, 죄가 관영한 바 된 상태 속에서, 비대해진 죄의 몸통에 붙어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너무 많아, 죄의 그림자는 검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호랑이 없는 산에서 멧돼지가 왕이라고, 토끼가 왕이라고, 다람쥐가 왕이라고 요란법석 또 난리들이다.

첫 번째 선악과와 두 번째 선악과의 공통점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시도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목회자들, 자신의 업적을 남기려는 목회자들, 하나님의 헌금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목회자들, 교회의 비전을 핑계로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 음란과 시기 질투 속에 허덕이는 목회자들, 교회당을 유산 상속의 물건으로 생각하고 있는 목회자들 모두가 두 번째 선악과를 따먹은, 영멸을 보장받은 영혼들이다.

한국 교계의 영적 어두움은 두 번째 선악과를 따먹은, 그리스도가 희미해진 결과들이다. 성경은 온통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들이다.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언약의 말씀이며, 신약 성경은 언약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을 확증한 기록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목회자들의 설교 속에 예수는 등장하지만, 그리스도 권세는 선포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과의 차이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말씀의 하나님이시다.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로고스의 하나님 앞에서,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다. 그리스도 회복만이 하나님과 임마누엘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속이며, 육신의 소욕을 내려놓을 수 있는 대안이다. 많은 총회들이 택정하고 있는 헌법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명시해 놓은 인간들이다. 4장으로 구성된 골로새서의 짧은 기록에도 ‘그리스도’는 20여 차례 선포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복음을 논증할 수 없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허물과 죄로 죽은 첫 번째 선악과를 따먹은 인류를 살려놓으신 권세다.

지금 인간은 두 번째 선악과를 먼저 따 먹기 위한 다툼으로 아비귀환 상태다.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자는 더 먹으려 아우성이고, 아직 맛을 못 본 자는 죽을망정 한번 먹어보고 싶어 몸부림이다. 사탄은 질서를 지키라고 희희낙락하고 있다. “여러분, 과실은 실컷 따먹어도 모자람이 없으니 아무 걱정일랑 마십시오” 소리치고 있다.

두 번째 선악과는 물질 축적을 선두로, 권위와 명예, 안락과 평안, 유산 상속과 어두운 영혼의 대물림 등 다양한 색깔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채 아무도 모르는 유혹의 몸짓을 흐느적거리며 다가온다. 하나님의 진노는 안중에도 없는 마음-두 번째 선악과에 만취된 비틀거림이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