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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

한스 부르스마 | CLC | 488쪽 | 20,000원

<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원제 Violence, Hospitality, and the Cross)>는, 제목 그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을 신적 폭력과 하나님의 환대 행위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은 <십자가와 구원의 문화적 이해>와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적 입장에서 전통 신학의 구속 이론들을 살피면서 ‘개혁주의 속죄론’을 되짚고 있다.

저자는 대리적 속죄와 도덕 감화론, 승리자 그리스도 등 <십자가와 구원의…>에서도 살펴본, 세 가지 전통적 속죄 모델들이 모두 하나님을 ‘폭력’에 연루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그 속죄적 죽음 안에서 환대(歡待)의 십자가형(cruciform) 얼굴을 깨달을 수도 있지만, 우리를 위한 이런 환대는 십자가 위에서 죄 없이 죽은 하나님의 아들과 그 죽음에 내포된 ‘폭력적 배제’도 연관될 수 있다는 것.

이처럼, 저자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의 사랑하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실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회피하거나 하나님의 ‘환대의 사랑’만을 반복해서 주장하지 않고, 이 물음에 정면으로 부딪쳐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응답하고 있다. “나는 환대를 이스라엘, 교회, 온 세상의 삶 속에 체화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은유로 본다. 그리고 환대가 불가피하게 폭력을 수반하고 있음에도, 환대로서의 온전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바이다.”

저자는 이러한 ‘신적 폭력성’을 이른바 ‘이중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에서도 찾고 있다. 칼빈주의는 이중예정론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도록 택자를 강제하신다는 사실과, 어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환대에서 영원히 배제된다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이를 ‘제한적(limited) 환대’라 표현하면서, 이는 하나님의 중심부 한가운데 폭력을 상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에는 연구의 중심인 세 가지 전통 속죄 모델들을 자세히 살피면서, 르네 지라르의 모방 폭력(mimetic viloence)과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 이론을 다루는 등 최근의 물음에도 답하고 있다. 특히 현대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제기되는 ‘형벌 대속론’이 기독교 공인 이후의 권력 합의의 변화가 아니라, 이미 교부 시대부터 존재했음을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와 구원의…>에서처럼, 형벌 속죄론에 대한 칼빈주의 전통의 이해는 엄격한 교환경제적 견해로 십자가를 보게 하기 때문에, 사법화·개인화·탈역사화의 경향에 빠질 수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개혁주의 속죄론’이라는 부제와 달리, N. T. 라이트 등의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의 입장에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신적 추방’의 처벌로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세 가지의 전통적 속제 모델이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오늘날 교회에서 ‘구속적 환대’가 지속돼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환대 공동체로서 교회는 설교를 비롯해 세례와 성만찬, 죄의 고백 등을 통해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고 회복하게 되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 섬겨야 한다는 것. 여기서 교회는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저자는 교회를 넘어 공공의 영역에서도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저자는 덧붙이면서, ‘참된 인간성 상실 없는 폭력의 종말’을 꿈꾼다.

“우리의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다. 그것은 구속적이다. 주인인 하나님 스스로 우리의 고통이 그리스도의 고통의 일부가 되게 하였고, 그럼으로써 고통받는 세상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