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막 3:1-5)

오늘 말씀의 제목은 “네 손을 내밀라” 오늘 특별히 마가복음 3장 1절로 5절 말씀 가지고 “네 손을 내밀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따라하겠습니까? “네 손을 내밀라” “네 손을 내밀라”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 참 큰 축복입니다. 몸의 장애를 갖고 있으면 그것이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몸의 장애보다 더 심각한 것이 마음의 장애입니다. 끝없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나는 버림받았다.” “쓸모없다.” “나는 상처투성이 인간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동안에는 그 삶에 아무런 희망도 꿈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앙생활 하면서 영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사라진 사람들입니다. 감사, 감격이 사라진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나오고 있는데 예배는 드리고 있는데 구경꾼이 되었어요. 예배드리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감사와 감격으로 드려야 될 예배를 그렇게 드리지 못하고 “벌써 주일이 되었나. 그래도 교회 빠질 수 없으니 가야지.” 이런 마음으로 나와 있다 하면 우리는 심각한 영적인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는 한 분도 안 계실 것이라고 제가 믿습니다. 저쪽에 가면 한두 사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런데 오늘 말씀 보니까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 그러한 은혜로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 한쪽 손 마른 사람
첫째로 한쪽 손 마른 사람에게 대해서 함께 생각을 합니다. 마가복음 3장 1절은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회당은 유대인들이 예배드리는 장소요, 오늘로 말하면 교회와 같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교회에 지금 들어오셨다고 하면 또 예수님이 여기 서 계신다고하면 제일 먼저 누구를 보시겠습니까. 병든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이렇게 손 마른 사람처럼 사람들에게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하고 늘 무언가 눌려 사는 사람들을 먼저 보셨을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손 마른 사람은 돌을 다듬는 석공이었다고 합니다. 연장을 다루고 돌을 잘 다듬어서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드는 그러한 석공인데 그만 사고로 그랬는지 무엇으로 그랬는지 오른손을 다치고 말았어요. 석공이 돌을 다듬어야 될 손이 다쳐서 마비가 돼 버리고 마니까 손을 쓰지 못하게 되니까 왼손만 갖고는 돌을 다듬을 수가 없어요, 제대로. 그래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좌절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팔이 갑자기 마비가 되어서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보세요. 집에 가장이 나가서 일을 하지 못할 때 그 가정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가장은 가장대로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오셔서 그 손 마른 사람을 보시고 그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운명이 바뀌는 거예요.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교회 내에 영적으로 손 마른 사람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 감격 없이 교회 나오는 사람들. 그러니까 은혜를 받을 때는 열심으로 봉사하고 또, 열심으로 가르치고 특별히 악기를 다루는 재능을 주신 분은 열심히 나와서 연주하고 그렇게 섬겼는데 어느 날 시험에 드는 거예요. 감사가 사라진 거예요. 감격이 사라진 거예요. 그래서 그 손이 마비되어서 봉사도 제대로 하지 아니하고 교회도 열심히 나오지 아니하고 자꾸 모임에 빠지고. 그렇게 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냐면 예배가 멀어지니까 주님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멀어지니까 결국 교회 구경꾼으로 있다가 교회를 떠나가기까지 하는 그러한 일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면에서 지금 내가 영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고 마비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내가 알게 모르게 영적으로 장애가 왔습니다. 어느 날부터 예배를 드리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눈물이 사라졌습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많은 축복을 받았는데 그 축복에 그냥 취해서 축복을 움켜쥐고 살다가 손이 마비가 되어버렸어요. 손을 펴지 못해요. 여러분, 축복은 나누어주라고 주신 것이에요. 그럼 더 주시고 또 더 주시는데 움켜쥐고 마비되는 순간부터 축복이 멈춥니다. “주여 우리가 영적으로 마비된 부분이 있으면 이 시간 치료하여 주셔서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금 나의 손이 섬기는 손이 되게 하시고 충성하는 손이 되게 하시고 기도하는 손이 되게 하시고 감사하는 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떤 절망과 문제와 어려움과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 빌립보서 4장 4절을 보면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이 기쁨이 사라졌다고 하면 여러분은 지금 마비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설교를 들을 때 사람들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 저거 누구 이야기인가보다.’ 그거 아닙니다. 내 얘기입니다. 내 얘기. “주여, 오늘 이 시간 내 마음에 주님의 기쁨이 샘솟듯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게 하여 주옵소서.”그런데요, 이 교회 안에 이렇게 회복되어야 될 손 마른 사람같이 마비된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또 한편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늘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2.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우리 두 번째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마가복음 3장 2절을 보니까,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이 사람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셔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예수님에게 쏠리게 되니까 그때로부터 굉장히 예수님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본인들보다 말씀도 더 권위 있게 잘 가르치고 본인들은 하지 못하는 그 놀라운 기적을 행해서 많은 병자를 고치고 사람들이 막 구름떼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이 우리가 가진 모든 권위를 다 빼앗겼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든지 저 예수를 없애야만 우리가 우리의 위치를 다시 찾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늘 부정적인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지 흠집을 잡아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영적으로 손이 마른 자들이었어요. 당시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를 드리는 가장 대표되는 지도자였고 서기관은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성경 선생님들이었고, 바리새인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자기들이 의인이라 생각해서 늘 우리는 행함에 조금도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요, 사람들이 다 듣는 데서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십계명을 다 지킵니다.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을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립니다. 난 저 죄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스스로 의로워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우리를 예수의 피로 덮으셔서 의인으로 보시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의롭다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을 때에만이 의로운 사람으로 주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들이 결국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어요.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자처했던 저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는 그러한 잘못을 했어요. 얼마나 모순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야단치시고 그들에게 경고하셨어요. 마태복음 23장 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이 저들을 책망하시길 “이중인격자들아! 너희들은 마치 회칠한 무덤 같구나.” 무덤을 갖다가요, 예쁘게 단장을 하고 하얀 회를 칠해서 아주 겉으로 볼 때는 깨끗하고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썩은 시체가 있는 거예요. 냄새가 나는 썩은 시체가 있는 거예요. “너희들이 마치 그렇구나. 겉은 잘 꾸미고 거룩, 거룩하게 하고 다니지만은 마음은 교만한 마음, 시기, 질투로 가득해서 썩은 시체처럼 되었구나. 너희 이중인격자들아!” 주님께서 저들의 잘못된 신앙, 위선적인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인정을 받아야 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무엇을 책잡으려 했느냐? 예수님이 안식일 날 병을 고치시느냐? 안 고치시느냐?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 그들이 지키는 계명에 따르면, 안식일의 규정에 따르면, 안식일 날 죽을 사람을 살리는 것은 되도, 죽지 않을 병은 안식일 날에 고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손 마른 사람은 마비만 되지 죽을병이 아니니까 만약 손 마른 사람을 고치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다. 얼마나 이들이 잘못된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했는지 모릅니다. 마가복음 3장 4절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저들이 지금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 악을 행하는 것, 어떤 것이 옳으냐? “네, 선을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면 병을 고치실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병만 고쳐보시오. 우리가 문제를 삼아서 이제 우리가 이단자로 처벌할 것이요.” 그런데요. 참 그들의 안식일 규정 가운데 안식일 날 양이 어디 웅덩이에 빠져 죽게 되면 양은 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11절로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보시고 탄식하시고 손 마른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죽일 생각을 했어요. 보세요. 마가복음 3장 6절에,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안식일 날 병을 고쳤다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해요. 헤롯당은 당시 헤롯왕을 옆에서 섬기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종교지도자들 즉,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요. 늘 갈등이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려고 이제는 둘이 힘을 합해서 어떻게 죽일까? 원수같이 지내던 저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데에는 한마음이 되었어요. 악한 사람들이 악한일을 할 때는요 자기들이 손을 잡고 악한 일을 해놓고 또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왜 이 헤롯당 사람들은 예수님을 싫어했느냐? 자기들이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따라가니까 위협을 받은 거예요. 또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사랑을 받아야 되는데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사랑을 받으니까 자기들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예수님을 못 박았는지 아세요?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 이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이 세상 살아갈 때 가장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사는 것을 늘 우리가 주의해야 됩니다. 예수 믿고 나서 우리 눈이 예수님 눈으로 바뀌어져야 해요. 예수님의 눈은 사랑의 눈입니다. 용서의 눈입니다. 절대긍정의 눈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해요. 그러나 죄인의 시각, 마귀에 속한 악인의 시각을 가지면 늘 부정적입니다. 늘 원망합니다. 늘 불평합니다.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이나 애굽에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가는데 20세 이상의 장정이 60만 명입니다. 그 60만 명 가운데 가나안 땅에 정착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 없어요. 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다 그 부정적인 보고를 따라갔기 때문에 저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다 죽게 되었고 긍정적인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과 후손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에 늘 우리 자신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긍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부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시각을 가지고 보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는 멀리해야 하지만 죄인은 불쌍히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주의 사랑으로 품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잡아줘야 하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욕하고 쫓아내면 그들이 교회에서 쫓겨나면 갈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캔사스 시의 구속교회 담임목사이신 팀 셔틀(Tim Suttle) 목사님은 [퍼블릭 지저스]라고 하는 그의 책에서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우리는 교회에서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이 모두 ‘체념’을 말할 때에 우리는 ‘부활’을 이야기하고, 세상이 ‘절망’을 말할 때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현실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비전을 표현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말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변화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할렐루야. 우리가 긍정적으로 살아야 돼요.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면 모두가 상처투성이가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늘 남편이 의로운 잣대로 부인을 야단치면 그 가정이 편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예요. 부인이 늘 의로운 잣대로 남편을 야단치면 부부싸움이 끊임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어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어제께 제가 결혼 주례를 했는데요. 신부가 예비 판사예요. 신랑은 또 훌륭한 직장인인데 가만 보니까 부부 싸움하면 백번 싸우면 백번 다 지겠어요. 판사가 얼마나 말을 잘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아주 신신당부했어요. 절대 말싸움하지 말라고. 싸움해봐야 지니까 아예 싸움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제가 신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남편하고 부딪히지 말고 남편 뜻을 따라주라고. 결국 남자는 나중에 여자가 하는 대로 다 하게 되어있으니까 처음에 잘 맞춰주라고. 부부 싸움할 때 부인이 곧 판사가 될 사람이니까 첫째로, 둘째로, 셋째로, 따지면 어떻게 할 거예요? 여러분 교회에서 그렇게 되면 상처 안 받는 사람이 없어요. 구역원이 구역장을 뭐라고 그러고, 구역장이 또 구역원을 뭐라고 그러고. 또 성도들이 주의 종에 대해서 뭐라 그러고, 주의 종이 성도에 대해서 뭐라 그러면 상처투성이인 것입니다. 우리 사랑의 말을 합시다. 용서의 말을 합시다. 서로 품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한마음으로 주의 일을 합시다. 여러분 부정적인 생각들을 깨뜨리고 긍정적인 생각들로 바뀔 때 은혜가 임합니다. 소아마비로서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 최승원 선생님. 강원도 강릉 탄광촌 벽지에서 태어난 우리 최승원 씨는 네 살 무렵 중증 소아마비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그의 소원은 한번 본인의 힘으로 몸을 뒤집어보는 것입니다. 식물인간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승원이를 업고 학교에 다닙니다. 눈이 오는 날 눈길에 넘어져서 다쳤을 때에는 엄마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죽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 은혜가 임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꿈을 가지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왜 난 이렇게 하나님 날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나는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나는 절망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긍정적인 자화상을 갖게 되니까 거룩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아주 훌륭한 성대를 주셨어요. 그것을 알게 된 목사님이 “자네 성악을 좀 해봐.” “어휴 제가 몸도 불편한데.” “자네 목소리가 너무나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목소리니까 그 재능으로 성악을 좀 하라고.” 그래서 스물네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성악을 시작했는데 참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지나가면서 성악과 수석을 하고 주변에서 “야, 너 몸이 그런데 제발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는 그 모든 부정적인 이야기 편견을 딛고 일어나서 결국 성악가들이 꿈꾸는 최고의 무대인 미국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콩쿨에서 동양인 남자 최초로 우승을 하여 세계무대에 우뚝 서게 됩니다. 할렐루야. 이런 고백을 합니다.“저에게 이런 시간이 올 거라고 절대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15초 이상 설 수 없는 신체의 장애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절대긍정의 믿음의 시각을 가지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노력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한계의 자리에서 저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주님의 손으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셔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본다고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세요. 손 마른 사람은 그곳에 왔다가 주님을 만남으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비판적으로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주변에도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어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이 들려주신 그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용서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치료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희망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기쁨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사람들 말 듣고 너무나 쉽게 좌절하고 낙심하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3.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손
세 번째로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손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마가복음 3장 3절에,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자, 이분은 오른손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이렇게 일어서는 것 굉장히 부끄러워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 장애를 가리고 다니려고 그러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늘 뒤에 숨어 있었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가운데 와서 서라. 한 가운데 서라. 한 가운데 일어서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갖고 왔든지 믿음으로 일어서라. 절망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일어서라.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일어서라. 어떠한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서라. 일어서라. 꿈과 희망을 갖고 일어서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무기력한 그 모습에서 다시 일어서십시오. 절망과 고통과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염려, 근심, 걱정의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의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과거의 상처와 충격에서 일어서십시오. 일어서는 순간 이전 것이 다 지나가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일어나셔야 돼요.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믿음으로 일어서면 주님이 여러분을 꽉 붙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일어선 그 손 마른 사람에게 주님 말씀하십니다. 3장 5절에, 네 손을 내밀라 (그 뒤이어서,)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할렐루야! 사실 일어서라 할 때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손이 마비되어 있는데. 근데 그 또 손을 내밀라 그래요. “아이구, 이 비틀어진 손을 어떻게 내밀어요?” 순종하지 않고 안 내밀었으면 그는 그대로 손 마른 사람으로 평생 살았습니다. 그런데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손을 내밀 때 손이 회복되었더라.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의 믿음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찬양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회복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치료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주님의 손은 치료의 손이십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손이십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손이신 것입니다.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삼분지 일이 병을 고치시는 사역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 24절을 우리 다 같이 함께 봉독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그들을 고치시더라!” “그들을 고치시더라!” 할렐루야! 주님께 나오기만 하면요 어떤 병이든 다 고침 받아요. 마음의 병, 육신의 병, 환경의 가난과 저주의 병 다 치료함을 받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그 나병환자들, 옛날에 우리가 문둥병이라 그러고 아주 사람들 곁에도 오지 못했고 고통당했던 분들 한센이라고 하는 분이 그 고치는 약을 만들어내서 한센 씨 병이라고도 하는데 이제 더 이상 그 나병이 퍼지진 않습니다. 근데 예수님이 그 누가복음 5장 보면 나병환자가 나올 때 그의 손을 대어 고쳐주세요. 누가복음 5장 13절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다가가지 않는 나병환자에게 주님 그를 가까이 오게 하셔서 그에게 손을 대시고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 지금도 주님이 우리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교회는요, 영적인 병원이에요.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주님이 우리 마음의 병, 육신의 병, 가정의 병, 환경의 병, 관계 사이의 모든 병 다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의 손이 기적의 손이예요. 아들 잃고 슬피 울며 장례식 행렬에 나가던 나인성 과부를 사랑하셔서 관에 손을 대셔서 그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예수님, 오늘도 절망에 처한 우리를 살려주십니다. 꿈과 희망을 주십니다. 일으켜주십니다. 회복시켜주십니다. 그 손은 동시에 제자의 발을 씻기신 겸손의 손, 섬김의 손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그 치료의 손, 섬김의 손을 힘입어서 그 손의 은혜로 여러분도 손을 펴고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치료하며 사랑을 베풀며 주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나가는 축복받은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군대에서 스물두 살 육군 소위시절 수류탄이 터져서 오른팔을 잃었던 조서환씨의 간증이 있습니다. 지금 애경그룹과 KTF(KT의 전신)에서 수많은 히트상품을 배출하며 마케팅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이분은 군대에서 오른손을 잃어버리고 의수를 하고 나왔는데, 자 직업군인으로 군대에서 이제 그의 일도 끝났지. 집은 가난했죠, 학력은 없었죠.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했는데 이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났어요. 그 결혼할 땐 예수 잘 믿는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부인이 눈물로 기도하며 남편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온갖 헌신을 아끼지 않으니 감동을 받아서 자기가 다시 도전합니다. 인생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다시 대학시험 준비를 해서 왼손밖에 쓰지 못하지만 대학 입학을 하고 졸업을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예요. 팔이 한 쪽이 없으니까 회사의 면접 보고나면 그다음 다시 오라는 소식이 없어요. 면접관들이 ‘그런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아마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나 새벽기도에 나와서 아내와 함께 눈물로 기도하니까 주님이 막 마음에 희망과 용기를 주셨어요. “절대 포기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할렐루야! 그래서요 다음에 면접을 보는데 “사람이 손만 갖고 일합니까? 머리로 일해야죠! 제가 제 능력을 가지고 이 회사에서 크게 공헌할 수 있습니다!” 아 얼마나 당당하게 말하는지 애경그룹 회장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로 인해서 그로부터 30년간 한손으로 마케팅 업무를 지휘하며 아주 큰 성공을 이루었는데요, 현재 중국에서 10조원 매출을 달성하는 목표로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손이 없어서 사람들이 싫어하고, 사는 게 엄청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저만의 생각이었습니다. 약점으로 자신감을 잃었다는 건 핑계입니다. 전 손이 없었기에 지금껏 인생의 마라톤을 매우 보람차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제 인생에 개입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고, 고난 속에서 기도의 힘을 확인하며 순종과 인내의 영성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남이 나를 생각할 때 지금이 가장 불행하다 생각하겠지만, 믿음으로 나아가면 가장 값진 새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절망으로 마비된 손을 내밀어라! 슬픔으로 마비된 손을 내밀어라! 상처로 마비된 손을 내밀어라! 내가 너를 치료해줄 것이라! 내가 너를 회복하여 줄 것이라! 내가 너를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오늘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영적으로 손 마른 사람같이 된 우리들, 또 육신적으로 눈에 보이는 장애와 마음의 장애를 갖고 있던 저희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손을 내밉니다.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치료하여 주셔서 우리 일생이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일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4년 4월 6일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