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9장 광장공포증의 유병률과 특징

광장공포증은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공포감이다. 이 공포증은 대처할 수 없는 어떤 일이 갑자기 일어날까에 대한 공포감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공포감은 특히 장소와 관련되는데, 이는 피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넓은 길거리 등에서 심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공포가 심해지면 광장공포증 환자는 정상적인 활동을 거의 할 수 없게 되며, 집밖에 나가지도 못한다. 이런 공포감이 광장공포증으로 진단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에 앞서, 광장공포증의 유병률과 특징을 고찰한다.

1. 광장공포증과 유병률

광장공포증은 장소에 관련되어 나타나는 공포감이라 했다. 광장공포증은 사람이 많은 곳, 즉 사람이 붐비는 길거리나 백화점이나 광장, 터널 속을 가는 것, 다리를 건너가는 것, 승강기를 타는 것, 또는 버스, 지하철, 기차 등의 대중이 이용하는 교통 매체에 의해 일어나는 공포이기 때문이다. 밖에 나갈 때는 친척이나 친구가 반드시 동반해 주기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무능감 때문에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하는 경우도 흔히 있으며, 어떤 의례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확인강박증 등이 수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상은 악화와 경감 상태로 반복돼 나타나기도 하고, 완전히 나아지고 가벼워지는 기간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증상의 정도는 공포의 대상이 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광장공포증으로 진단을 받았더라도 공포를 경험하는 양식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광장공포증을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려고 시도해 왔지만, 아직 광장공포증의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사람마다 겪는 증상도 다르고, 학자마다 주장도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의 진단체계로 광장공포증은 공황장애를 수반하는 경우와 공황장애를 수반하지 않는 경우로 구분되지만, 학자에 따라 공황발작을 촉발시킬 만한 외부 사건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구분하고, 주된 증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이런 광장공포증의 유병률과 관련해 보면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발생적 상황

광장공포증 유발 상황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것은 공포감이 일어나는가의 문제로 구분되는데, 자연발생적 상황과 상황에 따른 촉발적인 공포이다.

20여년에 걸쳐 공황을 연구하고 광장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든 클라인(M. Klein)은 공포감을 크게 둘로 구분한다. 하나는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저절로 생기는 자연 발생적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상황이나 자극으로 생기는 상황에 따른 촉발적 공포이다. 발로우(D. H. Barlow)는 이를 더 세분화하는데, 공포감을 일으킬 만한 외부 단서가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공포감을 예측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공포감을 초래할 만한 외부자극도 없고,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공포이다. 이것은 클라인이 말한 자연발생적 공포와 같다. 둘째, 뚜렷한 외부 단서는 없지만 본인이 예측할 수 있었던 공포이다. 왠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하던 환자가 공포를 경험했지만, 무엇 때문에 공포감을 일으켰는지 확인을 못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셋째, 상황 단서에 의해 공포가 촉발되고,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서 공포감이 일어날 것이라 충분히 예상했던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상황 단서는 있지만 자신이 공포감을 예상치 못한 경우도 있다. 뒤의 두 가지는 클라인이 말한 상황에 따른 촉발적 공포증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구분은 현재 사용중인 국제적 진단 지침에서 공포를 자연발생적인 것, 상황에 의해 촉진된 것, 상황에 의해 야기된 것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것과 비교된다.

2) 증상에 따른 광장공포증의 구분

광장공포증은 공황을 수반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된다. 공황을 수반한 광장공포증은 공황발작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공황발작은 특이한 증상이 두드러지는데, 전형적인 신체 증상이 두드러지는 고전적인 공황발작, 예기불안이 두드러지는 예기적인 공황발작, 그리고 파국으로 치닫는 생각이 주요 증상인 인지적인 공황이 있다. 공황발작이 시작되는 증상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 첫 유형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최초로 나타나고, 곧 숨이 차면서 신체적인 감각이상이나 기절, 죽을 것 같은 증상을 차례로 느끼는 경우로, 이 유형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두 번째로 유형은 진땀이 나면서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으로 발작이 시작되는 경우로, 이 사람들은 현기증을 느끼면서 발작이 시작되고, 그러면 곧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을 쉬는 것이 어렵고 기절하거나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세 번째 유형은 가슴이 조여들면서 호흡곤란을 최초 증상으로 느끼는 환자들이다. 이들은 호흡곤란이 느껴지면 팔다리가 뜨겁게 달아오르거나 싸늘해지면서 기운이 쭉 빠지고, 뒤이어 심장이 곧 멎을 것 같이 심하게 뛰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네 번째의 유형은 팔다리가 저려오면서 공황이 시작되는 경우로 매우 드문 경우이다.

위의 조사는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만든다. 그것은 모든 유형에서 최초의 자각 증상은 신체 증상이었고, 기절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와 같은 인지 증상을 맨 마지막으로 보고했다는 점이다. 발로우 등의 연구에 의하면 최초로 공황발작을 경험한 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6.5%의 환자들은 신체증상으로 공황발작이 시작되었고, 30.3%가 상황적인 촉발요인에 의해 공황발작이 시작되었으며, 6.1%가 걱정과 같은 인지증상으로부터 공황발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자각증상으로 신체증상은 중요한데, 이런 차이는 그 대상에 따른 연구이다.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겪었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광장공포증의 진단을 받고 장기간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연구에서 각각 다른 결과를 산출한 것으로 드러난다. 첫 공황발작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공황발작을 겪다 보면 신체감각이 곧 공황발작을 촉발하는 자극이 될 가능성이다. 이는 광장공포증이 공황장애를 수반하느냐 않느냐의 구분으로 인해 매우 다른 증상을 발견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3) 광장공포증의 유병률

광장공포증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이 공포증은 교육정도나 성격 특성과 관계없이 종족이나 문화를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장애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광장공포증은 심리적인 압박의 상황에서 일어난다. 실제로 광장공포증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해야 할 사회공포처럼 강한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편이다. 그러나 특별한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경우도 10%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단순한 공황발작에 비해 광장공포증이라는 진단을 받는 기준은 더 엄격하기에 그 비율이 현저히 낮아지지만 그렇다고 적은 비율은 아니다.

세계적인 역학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1.5-3.5%는 일생에 한 번은 광장공포증 진단을 받으며, 1년을 기준으로 하면 전체 인구의 약 1.5%는 광장공포증으로 진단을 받는다. 미국과 캐나다의 연구를 보면 33%의 인구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공황발작을 겪었으며, 이들 중 11%는 연 3-4회 공황발작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 공황발작이 있었던 환자는 2차로 우울증이 생기거나 공포증적인 불안 혹은 사회공포증과 같은 증상들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만큼 광장공포증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세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진단기준을 가지고 1986년 서울대 의대에서 조사한 역학 자료에 따르면, 평생 광장공포증 진단을 받는 사람이 서울에서는 전체 인구의 1.1%, 지방에서는 2.6%였다. 세계적 진단기준은 1994년에 바뀌었는데, DSM-IV에 따른 조사에서는 비율이 더 높아져 서울에서는 전체 인구의 1.8%, 지방에서는 3.9%였다. 수치상으로 서울만 해도 약 20만명 정도가 광장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역학조사에 의하면 광장공포증 발병 연령은 24세를 전후해서 생긴다. 광장공포증 환자들 중 4%는 10세 이전 첫 공황발작을 경험했다. 불안장애를 갖는 청소년의 13%는 광장공포증이었다는 조사결과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할 때는 기억이 많이 왜곡되므로 자료의 신빙성은 격감된다. 광장공포증의 발병 시기에 관련해서 아동은 성인에 비해 인지 능력이 덜 발달되어 있어 신체감각을 치명적인 것으로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적다.

또 아동은 사춘기에 호르몬에 의해 두드러진 신체적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아동기는 광장공포증의 핵심요소인 신체감각의 변화 및 이에 대한 파국적인 해석의 토대가 빈약하고, 그만큼 공황발작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다. 마찬가지로 나이 들어서 광장공포증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다. 드물게는 70세 이후에 광장공포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성인기 후반 공황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대개 증상의 수도 많지 않고 회피행동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들은 나이와 더불어 심장 기능이 떨어진다거나 시력감퇴, 혹은 넘어져서 골절당하는 것과 같이 실제로 신체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느끼면서 공황발작을 경험한다. 그러기에 나이 들어 발병한 광장공포증의 경우에는 호흡이나 이완훈련, 노출치료 등 공황치료에 효과적인 전통적인 방법들이 잘 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장공포증에 걸리는 성별의 차이는 흥미로운데, 여성이 남성의 2-2.5배나 많다는 점이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공황발작이 없는 광장공포증의 경우 59%가 여성이며, 공황발작이 있는 광장공포증의 89%가 여성이라는 경우도 있다.

광장공포증 환자들은 처음에 병원을 찾아가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대개 자신의 증상을 심장병이나 혈압, 또는 호흡기 계통의 이상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많은 검사를 받아 보아도 신경성이라는 진단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연구에 의하면 내과 환자의 6.5%는 광장공포증 진단기준에 부합되고 있다. 그리고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관상동맥검사를 받은 환자들 중 관상동맥에 문제가 없는 환자들의 1/3이 광장공포증이었고, 심장내과 환자의 10-14% 정도가 광장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보고도 있다. 실제로 광장공포증이라는 확진을 받은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70% 이상이 평균 10명 이상의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다.

2. 공황발작의 촉발요인과 경과

광장공포증은 공황발작을 수반하는 경우도 많다. 공황발작은 광장공포증 환자들의 중요한 특징이지만, 모든 광장공포증이 반드시 공황장애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은 광장공포증과 공황발작을 관련시켜서 이해하는 이유이다.

1) 공황발작의 촉발요인

광장공포증 환자들 중 약 70%는 공황발작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범불안장애를 경험하고 있었다. 첫 공황은 대인관계 갈등이 있거나 질병, 이별, 경제적인 파산, 상실위협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며, 특히 부부 갈등이나 고부간의 갈등처럼 가까운 대인관계 마찰이 첫 공황발작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첫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시점으로부터 1년 이내에 스트레스를 얼마나 겪었는지의 조사에서, 광장공포증 환자들의 64%, 정상인의 35%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보고하여 부정적인 스트레스 사건과 공황발작 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갑자기 술이나 담배를 끊을 때 공황이 촉발될 수도 있는데, 만성적으로 불안을 달래기 위해 술이나 줄담배를 피우던 사람들 중에도 갑자기 금주와 금연을 하다가 공황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깜빡거리는 빛 자극도 불안을 유발시키며 간질발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여성의 경우에는 월경주기나 임신 등 성호르몬이 공황발작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월경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는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빈도가 평상시보다 두 배 가량 높은 반면에, 임신상태에서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교감신경계의 반응성이 떨어지기에 공황발작이 차단되거나 감소한다. 외국의 연구에서 광장공포증을 가진 여성들 중 2/3는 임신기간 동안 공황발작이 차단되거나 감소되었다.

2) 광장공포증의 경과

광장공포증은 만성적 진행과정을 밟아 수년 간 지속되기도 하므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치료에서 매우 중요하다. 광장공포증이라 해서 모두 똑같은 과정을 밟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공황발작을 겪는 상황이 다르고, 장애가 진행되는 속도도 다르며, 어느 정도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광장공포증이 오래 지속될 경우 흔히 만성적인 불안신경증이 유발되거나 우울증, 알콜중독, 광장공포증이나 사회공포증, 건강염려증, 혹은 성격의 변화도 일어날 수 있는데, 어떤 합병증이 일어날지는 치료의 방법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공황증상이 나타나는 초기 단계에서 환자는 공황발작이라 규정할 만큼 여러 증상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때는 가슴이 두근거린다든지 숨이 답답해지는 것 같이 한두 가지 증상만을 경험하므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기는 수도 있다. 이것은 공황발작이라 부르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에, 제한된 증상만을 가진 작은 발작이다. 작은 발작이 공황발작이나 광장공포증으로 발전하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바도 없다. 국내외 연구에서 이 같은 경험을 하는 환자들은 전체 인구의 15-33%정도 된다. 증상이 나타나는 초기 단계가 지나면 더 많은 증상을 동반하는 강한 공황발작이 일어나 대부분 병원을 찾게 된다.

그러나 검사를 받는 동안 증상이 가라앉고 검사결과도 이상이 없기에 정상적으로 병원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첫 발작을 경험한 뒤 정확히 얼마 뒤에 재발한다는 기준은 없지만, 수주 이내에 다시 공황발작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다. 공황발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 대부분이 검사결과는 정상이라는 얘기를 듣지만, 강렬한 죽음의 공포를 겪었기에 끊임없이 건강을 염려하며 그런 염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또한 반복해서 공황발작을 경험하면 공포증이 생긴다.

공포의 대상이 확대되면 회피행동이 두드러진다. 회피행동은 개인의 사회생활에도 많은 지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부득이 출장을 가거나 약속시간에 거래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점차 밖에서의 활동 반경이 줄어들고 안전한 곳만 오가게 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회활동은 크게 위축되고 만다. 회피행동이 심해지면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해 더욱 부담을 느끼고 누군가 곁에 있어야 외출할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 줄 사람이 필요한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면 우울증이 찾아오기 쉬운데, 이는 광장공포증 환자들의 30%에서 우울증이 나타났다는 이유이다.

이들은 그동안 해오던 일을 계속할 수 없고, 생활이 제한되면서 만나는 사람도 점차 감소하게 되면 누구나 우울해질 것이다. 얼마간 공황발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분이 나아지기도 하지만, 다시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무기력해져 이제 여기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하게 된다. 물론 이런 경우 우울증이 광장공포증으로 유발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장기간 광장공포증에 시달리다가 우울해진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광장공포증과 우울증이 동시에 유발되는 경우도 있다.

3) 광장공포증의 합병증

광장공포증은 만성화되면서 유발되기 쉬운 합병증이나, 증상에 따라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장애들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들을 광장공포증의 합병증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장애들이 광장공포증으로 인해 생기는지, 아니면 광장공포증과 상관없는 증상이지만 우연히 함께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런 합병증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우울증의 촉발이다. 광장공포증과 우울증은 흔히 함께 나타난다. 광장공포증 환자들 중 약 30%에서 많게는 70%까지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광장공포증과 우울증이 한 뿌리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인데, 실제로 우울증과 광장공포증은 우선 생물학적인 배경이 비슷하다. 마치 조증과 우울증 상태에서 나타나는 증상은 정반대이지만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양극성 기분장애인 조울증처럼 광장공포증과 우울증도 증상은 다르지만 밑바탕은 같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광장공포증 치료에서는 항우울제가 사용된다는 점도 그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같은 약물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고 해서 반드시 원인이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광장공포증 치료에 사용되는 항우울제인 이미프라민은 야뇨증의 치료에도 사용되지만, 이런 약물이 광장공포증과 야뇨증의 치료에도 사용된다고 해서 광장공포증과 야뇨증이 같은 부류의 장애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우울증과 광장공포증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또 광장공포증에서 보이는 우울증은 자살 생각이라든가 정신-운동 기능의 속도 저하와 같은 전형적인 우울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공황발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우울증과 광장공포증이 같은 부류의 장애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뚜렷한 증거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수면이 박탈되면 우울 증상은 일시적으로 완화되지만, 공황발작은 더 자주 일어난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우울증과 광장공포증은 비슷한 장애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장애일 가능성이 높으며, 광장공포증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은 광장공포증이 지속됨으로써 이차적으로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알콜중독의 문제이다. 술은 용기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 할 때나 두려운 상대를 만나기 전에 속내를 드러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면 겁나는 것도 없고 떨리는 것도 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술은 예기불안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이런 점에서 광장공포증 환자들은 공황발작에 대한 불안을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술을 마시는 경우를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광장공포증 환자들 중 24%는 알콜 중독이라는 보고가 있는가 하면, 여성의 경우 알콜 의존성을 보이는 비율이 통상 4.4%인데 반해, 광장공포증 여성 중 알콜 의존성을 보이는 여성은 19%나 된다.

술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완화시켜 주는 효과도 있지만, 의존성이 생긴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단 한 번 술에 의지해 불안을 극복한다고 해도 다음번에는 더 많은 술을 마셔야 그만한 효과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마시는 술은 자가 처방이 아니라 알콜 중독이라는 수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로 질병에 대한 공포의 문제이다. 광장공포증 환자들은 삶을 위협하는 장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치료자를 찾는다. 이들에게 질병의 공포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불안의 공포감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신체의 공황장애 현상은 그런 공포감을 가중시키는 측면도 있으므로 단순히 생각으로만 느끼는 공포감과 신체적인 현상이 수반된 느낌은 다른 것이다. 신체적인 감각이 더욱 직접적이므로 압도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들은 실제로 공황 발작이 일어나기 전부터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건강염려증 환자들처럼 광범위하게 질병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심장 계통의 이상이나 호흡기 계통의 이상을 걱정한다. 그리고 건강염려증 환자들이 걱정하는 증상들은 대부분 자율신경계통의 장애가 아니기 때문에 불안에 의해 상태가 더 악화되지는 않는다.

넷째로 성격의 변화와 관련되는 문제이다. 광장공포증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성격 변화는 회피적인 특성과 의존적인 특성 그리고 연극적인 성향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특히 광장공포증 환자들의 경우에는 의존적인 성격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렇게 성격변화가 나타나면 치료에 대한 태도는 달라지므로 치료의 경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런 성격의 변화를 두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격의 변화가 증상이 있기 전에 있는 것인가 증상의 후에 일어나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또는 더 나아가 성격이 그런 증상을 유발시키는 것인가에도 일정 부분 관련된다. 이런 견해들에는 일치를 보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 성격 변화가 공황장애를 촉진시키는 요인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격 변화를 광장공포증이 오래 지속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는 편이다.

정신 증상에서 합병증은 정신의 특성상 흔한 일이다. 정신의 특성은 두부를 자르듯이 자를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증상들도 얼마든지 나타나게 된다. 이런 특성은 주된 특성을 정확하게 진단해야할 이유이다. 광장공포증은 불안과 관련되므로 여러 질병이 어느 정도 관련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불안은 심리학으로는 부정적인 특성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정신 질병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의 특성이 어떤 점에 두드러지느냐에 따라 그 증상에 가까운 질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3. 정리: 광장공포증의 유병률

지금까지 우리는 광장공포증의 유병률에 대하여 기술했다. 광장공포증은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공포감이라고 했다. 이 공포증은 대처할 수 없는 어떤 일이 갑자기 일어날까에 대한 공포감이라는 점에서였다. 이런 공포감이 특히 장소적인 것과 관련되는 것인데, 이는 피할 수도 없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넓은 길거리 등의 장소에 대한 심한 공포감이다. 이러한 공포가 심해지면 정상적인 활동을 거의 할 수 없게 되며, 집밖에 나가지도 못한다. 이런 공포감이 광장공포증으로 진단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에 앞서 광장공포증의 유병률에 대하여 고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