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선교 초기에 동북아 및 중동 지역 선교의 빗장을 열어, 선교사들의 사역을 편하게 해주었던 이무웅 선교사. 그가 다시 한 번 ‘모링가 농장’을 통해 이슬람 선교 패러다임 혁신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송경호 기자

기독교와 이슬람의 지도자들이 함께 평화대회를 개최한다고 하면 과연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것도 철저한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 말이다. 실제 2003년도 진행됐던 ‘세계평화대회’ 이야기다.

9.11 테러 등으로 인해 종교 간 갈등이 고조됐던 당시,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이광자 총장(서울여대)을 비롯해 24개국의 기독교 지도자 300여명과 이슬람 지도자들이 참여한 이 행사는, 양 종교 간 ‘최초의 평화대회’이자 이슬람권 선교의 초석으로 평가받았다.

누구도 믿지 않았던 이 대회를 성사시킨 이는 이무웅 선교사. 이 선교사는 연세대 신학과를 나와 20여년간 60여 국가에서 국제 무역사업을 펼치며, 한국 기독교 선교 초기에 동북아 및 중동 지역 선교의 빗장을 열어 선교사들의 사역을 편하게 했었다. 올해 이슬람 선교 20년차인 그가, 다시 한 번 ‘모링가 농장’을 통해 이슬람 선교 패러다임 혁신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전 세계 각국서 Open Door 및 대정부 협력 사역 등 병행
이슬람 최고 지도자 앞 감동의 찬양, 역사적 대회 성사시켜

무역업 초기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던 이 선교사는, 미국으로 이민을 선택했다. 사실상의 도피였다. 상황이 너무 어려워 죽음을 가정하고 자녀들에게 남길 유언을 생각하다가 “과연 너는 ‘땅끝까지 증인이 되어 달라’는 나의 유언을 기억하고 있었느냐”는 성령의 강한 임재를 경험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선교신학에 매진해 미국 루터란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어떠한 힘에 의해 견인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 선교사는, ‘30/60 Highway’ 이론, 즉 역사는 북위 60도와 30도 사이로 견인되었으며, 그 견인차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인 동시에 이들의 선교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도 동일하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이후 ‘30/60 Highway’를 따라 전진한 그는, 아직 공산권 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이던 당시 중국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따라 사역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미국 St. Paul of Shorewood Lutheran Church 협력목사로서 교단선교부 극동 책임자를 역임하고, 각국에서 대정부 협력 사역과 Open Door 사역, 선교사 정착 및 현지인 경제적 지원 사역을 펼쳐왔다. 또 중국 서안 동인문화대학 공동설립자이자 명예학장, 우즈베키스탄 건국 초기 제2의과대학(국립)과 국립음악대학의 타문화권교류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공산권과 이슬람 사역의 시대적 사명을 깨달은 이 선교사는 특히 이슬람 종주국 이란으로 넘어가 마잔다란 주정부 고문 및 중앙정부 문화부 자문위원으로 있으며 이슬람 선교의 길을 여는 놀라운 역사를 일궈냈다.

한국에서 온 여교역자 순례단과 이란 권력의 핵심인 종교 지도자들을 대면한 이 선교사는 엄숙한 자리에서 ‘담대하게’ 여교역자들이 부르는 찬송을 선물하겠다고 제안해 참석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통역원조차 통역을 거부하는 일촉즉발의 상황. 여성의 규제가 심한 곳에서, 기독 여인들이 이슬람 종교 지도자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10여 곡이 끝났을 때 최고지도자 아야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감동과 눈물의 박수를 쳤고 경직된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이날의 ‘사건’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인식을 변화시켰고 철옹성과 같은 이슬람의 빗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와 이슬람이 함께하는 ‘세계평화대회’까지 이어졌으며 12일간의 행사와 성지순례에 소요되는 1백만 달러의 비용도 이란 정부가 전액 지원해준 것도 물론, 향후 이란 내에 교회 설립까지 약속도 받았다. 대회에는 모하제라니 전임부통령, 문화부장관, 이란 관광청(ITTO) 대표 등이 참여했으며 김상복 목사가 ‘여성의 기본 권리’를 주제로 강연하는 등 혁신적으로 진행됐다.

정국의 급격한 변화로 교회 설립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이란 내 성경유적지를 정리해 순례길을 만들어 정부로부터 Lee's route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던 이 목사의 이슬람권 사역은 최근에 문제되는 Chrislam(기독교이슬람의 변종)과는 관련 없는 순수 이슬람권 선교사역이다.

‘신의 나무’라고 불리는 모링가, 전 세계적으로 수요 급증
농장 통해 자발적 공동체 형성… ‘한 마지기 선교운동’ 추진

▲‘신의 나무’, ‘기적의 나무’라고도 불리는 모링가. 이무웅 선교사는 쎄네협력개발선교회와 함께 모링가선교농장을 개간해, 현지인들에게 생업의 터전을 제공하고 자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슬람권 복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김신숙 선교사 제공

이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기니 등에서 사역해왔던 이 선교사가 쎄네협력개발선교회와 함께 선택한 새로운 도전은 바로 ‘모링가’ 농장을 통한 이슬람 선교다. 농장 사역을 통해 자발적인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방법으로, 원천적으로 차단된 이슬람 선교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확신이다.

출애굽 시대 성경에 나오는 떨기나무와 마라의 샘물에 던져진 이름 없는 나무로 추정되는 모링가는,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의료팀이 오랜 분석과 임상을 통해 놀라운 의학적 효능을 발견해 기적의 나무라고도 불린다. 미 연방정부 보건원이 539가지 인간의 질병에 예방과 치유의 효력을 공인했으며, 국내에서도 고가에 유통되고,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영원히 죽지 않는 세포 소마티드(Somatid)의 구성분자가 모링가에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일본 최고 의료팀에 의해 발표되어 주목 받고 있다.

쎄네선교회는 모링가선교농장을 개간해, 현지인들에게 생업의 터전을 제공하고 자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슬람권 복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의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하며 사막의 녹지화로 현지국가의 경제발전 정책에도 기여하는 등, 이 선교사가 오랫동안 해외 정부들과 교류하며 체득한 전략이 잘 녹아들어가 있다.

모링가는 성장 속도가 빨라 1년에 6회에서 9회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이미 현지에 약 4만 평의 농지를 확보해, ‘한 마지기(200평) 선교운동’을 펼치며 한국교회에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개인 혹은 단체가 한 마지기에 해당하는 US$2500를 후원하면 후원자의 이름으로 사유재산이 되며, 확장력이 빠른 모링가의 특성에 따라 3년이면 8마지기, 10년이면 512마지기까지 증식과 수익이 가능하다. 신앙 가족으로 담아낼 수 있는 공동체는 단순 계산으로 3년에 8가정, 10년이면 512가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모두 개종은 안 될지 모르지만 농장에 머무는 일용직 현지인들은 월 200명이 넘게 되어, 복음의 그물을 친 생명 구원의 어장이 된다”고 전했다. 또 “2년차 이후부터는 자체 선교사를 이웃 나라에 파송하고, 나라 전역 장애아들을 지원하며, 자체적으로 농업 기술학교를 설립·운영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이 선교사는 “이미 해당 국가의 국립리서치센터 농무담당부서에 모링가를 장려 특산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권고해서 시행되고 있고, 오염된 수질 정화와 녹·홍조 제거 등 모링가 활용방안을 수자원 관계 연구관들과 공동 연구하고 있다”며 “현지 농가의 경제적 자립과, 이슬람권 복음화와, 선교의 전초기지 건설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한국교회에 관심과 참여를 요청했다.

문의: 070-7794-3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