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혁신학회 제108차 정기학술발표회. ⓒ신태진 기자

한국개혁신학회(회장 김영선 교수)는 5일 오후 서울 신반포중앙교회(담임 김성봉 목사)에서 제108차 정기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는 조현철 교수(연세대)와 김선권 박사(호남신대)가 맡았고, 논찬자로 장호광(안양대)·유창형(칼빈대)·김재성(국제신대)·김요섭(총신대) 교수가 참여했다.

▲조현철 교수. ⓒ신태진 기자

‘인식’과 ‘경험’으로 ‘믿음’을 판단할 수 있을까?

먼저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대속적 이해가 가지는 신인식의 문제–믿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의 한계성 패러다임(Paradigm)을 중심으로’를 제목으로 발표한 조현철 교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을 재조명하면서,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고찰했다.

조 교수는 “종교인들은 신과의 관계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하기보다 오히려 종교생활의 현상적인 모습만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평가하고 단정해버리기 것에 익숙하다”며 “그 결과 믿음에 대한 끊임없는 판단, 겉보기만으로 행해지는 평가들이 신과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 질문들을 차단해버린다. 결국 ‘신과의 관계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상적 종교생활’에 집착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 스스로 자신이 신에 대하여 ‘믿음이 있다’라고 여길 때, 이는 분명히 자신이 신을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믿음’에 대하여 인간이 ‘인식’하며 그 ‘인식’을 근거로 ‘믿음’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신에 대한 ‘믿음’에 관해서는 인간이 그것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신이 인간의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시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교수는 “이처럼 ‘믿음’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말하는 것은 창조주 앞에 서 있는 피조물로서의 제한된 인간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인간이 주체가 되어 ‘신을 파악’하려고 하고 ‘신을 규정’하며 ‘신을 판단’하며 행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험’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덧붙였다. 조 교수는 “종교집단이 지속적으로 열광적인 ‘종교경험’을 강조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그러한 종교경험이 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해주는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면 그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그러한 ‘종교경험’을 추구하게 된다”며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종교경험에 대한 추구와 갈망은 신으로부터 ‘자유롭게’ 시작된 종교경험을 기다리지 못하게 만드는 조급증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믿음에 대한 경험의 한계성’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종교경험’ 현상에 대하여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오염된 요소는 없는지,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 생겨난 믿음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마주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처럼 ‘믿음’을 재조명한 조 교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또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내용의 모든 말들에서 예수의 죽음이 속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만 여기면서 그 이상의 다른 것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성만찬에서 잔에 대하여 ‘많은 사람을 위하여(ὑπὲρ πολλῶν)’라고 설명한 마가복음의 내용(마 14:24)은 속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를 위하여’라고 설명하는 것을 자명하게 속죄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성에 대하여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며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은 우선 일반적인 의미인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익’이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왜곡된 신의 법의 본질과 마주서도록 하기 위한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이것은 결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신이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시인하기만 하면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익’을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를 위하여’는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결코 천국으로의 ‘무임승차’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범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속’이라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모든 범죄가 소멸되고 그리스도가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여기는 그릇된 ‘구원의 확신’이 기독교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독교의 기초로 여기고 있다. 기독교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 교수의 주장에 대해 논찬자로 나선 장호광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신앙고백)하기만 하면 천국 가는 티켓을 자동적으로 획득하는 것으로 여기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대속적 이해’에서 발견하여 경종을 일깨우고자 하는 논자의 의도는 한편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이를 위해 성경의 정경성과 권위성에 손을 대야 하는지, 그리고 오래 동안 유지되어온 대속 교리를 몇몇 성경구절과 현대신학자의 사상을 근거로 의문을 제기하려는 시도에 논평자는 강한 이의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논찬자인 유창형 교수도 “만약 발제자의 생각이 옳다면 우리는 공관복음서 이후의 성경책들 중에서 대속적인 죽음을 강조하는 모든 책들을 빼내야 할 것”이라며 “아니면 설교할 때마다 피해가야 한다. 이런 혼동을 감당한다는 것은 일반 목회자들에게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신뢰할 수 없는 하나의 견해를 담은 신학책이 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선권 박사. ⓒ신태진 기자

“깔뱅에게서 복음은 언어 아닌 삶의 교리”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선권 박사는 ‘깔뱅이 말하는 ‘잘 정돈된 삶’(la viebien ordonée)으로서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을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깔뱅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잘 정돈된 삶, 잘 정돈된 교회, 잘 정돈된 사회 및 국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며 “기독교인의 삶은 결국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그 인생의 기원과 의미, 목적을 잘 설정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깔뱅은 잘 정돈된 삶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부정’을 말했다. 깔뱅에게서 복음은 언어의 교리가 아니라 삶의 교리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기독교인의 생활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며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함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죽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깔뱅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적 특징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바로 자기부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 미래의 삶에 대한 묵상, 그리고 재화의 올바른 사용이 그것”이라며 “이것은 여전히 오늘날의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본질적 내용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제네바의 종교개혁자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가지는 신비한 교통에 관한 것이며, 삶의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보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계된다”면서 “즉 기독교인의 모든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기독교인의 삶이란 결국 그들의 모든 활동으로 연장되어야 한다. 쉬머(Schümmer)가 주목했던 것처럼 영혼의 활동과 같이 몸의 활동인 예술, 연구, 정치, 사업 등은 성도와 하나님의 교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복음, 그리고 복음의 현재화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것은 결국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변혁하는 데서 그 효과와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