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은 “영화 출연 동기는 북한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태진 기자

“북한 지하교회 크리스천들의 암담한 고난을 쓴 시나리오 보고 처음에는 마음이 무거워 출연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죄책감이 계속 들었다. 북한에서 실제로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는가.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 나에게도 사명감이 생긴 것이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서 북한 지하교회 크리스천들의 탈북을 돕는 주인공 철호 역을 맡은 배우 김인권은 “북한의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사명감’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고문 장면을 찍으면서 후유증도 생겼지만, 그보다는 북한의 답답한 현실과 북한 크리스천들에 대한 걱정에 많이 울었다”며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북한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인권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시사회에 참석한 지인들 반응은 어땠나.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굉장히 애통해 하셨다. 안 믿는 분들도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마음이 무겁다’고 많이 이야기하셨다. 영화는 (북한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니……. 사람들은 다 죽어나가는데, 그렇다고 영화의 성향이 관객들에게 해결책을 던져 주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현실이 이렇다’ 하고 끝나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몰입도가 세고,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지인들에게는 ‘고생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무거운 주제인데, 출연에 고민이 되지는 않았나.

“처음에 시나리오 소재만 듣고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 기독교 탈북자 문제와 지하교회 문제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도 ‘이런 영화는 나와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나리오를 봤는데 너무 암담했다. 오히려 크리스천들이 이 영화를 보고 상심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됐다. ‘이 정도는 (정서상 배려를) 해 줘야지’ 하는 자상함이 전혀 없었기에 시나리오를 내려놨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안 읽었으면 몰라도, 읽고 나니 계속 죄책감이 들었다. 감독님을 만났는데 실제로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고 하니까 어떻게 외면할 수도 없었다. 결국에는 촬영에 들어갔다. 사명감이 생긴 것이다.

흥행에 대한 부담으로 찍은 것은 아니었지만, 북한의 실정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보니까 맡은 역할에서 장난을 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하기에 정서적 개입을 하면서 부담을 느꼈다. 마치 실화 속의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고문 장면에 대한 부담감으로 미칠 것 같았다. 수용소 신 찍으면서 스스로 머리도 짧게 깎았지만, 촬영 전까지 도망가고 싶었다. 정서적으로 외면하고 싶고 떠올리기 싫은데,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북한의 현실이 이런 것 같다. 생각을 끊고 싶은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니 끊지는 못하고, 점점 통일은 이슈가 되니 부담감이 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 속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주제가 ‘순교’와도 연결이 되는데, 순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에서 헌신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교회에서 중고등부 생활을 했고, 우리 아이들도 교회에서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교회에 출석하게 하고 있다. 초창기에 기독교가 한국의 유교문화권에 들어올 때 많은 순교가 있었다고 들었다. ‘철호는 죽음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고, 죽음을 갈망하는 삶을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기독교는 천국을 소망하는 종교인데, 다시 말하면 죽음을 소망하는 종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죽음으로 남이 더 잘 된다든지 기독교가 전파된다든지 하는 신앙적인 헌신의 개념으로 순교를 생각하고 있다. 순교에 대한 질문은 처음 들었는데, 북한 인권 문제와 지하교회 문제, 남한 교계의 반성 등의 주제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순교와도 연결이 되는데, 순교의 부분은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 순교를 화두로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김인권은 “극중 주철호의 희생은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며, 암담한 현실 가운데서도 희망을 보여준다”고 했다. ⓒ신태진 기자

-‘주철호’는 어떤 인물인가.

“주철호는 마을 사람들을 탈북하도록 돕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말하지만,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부분도 있었다. 이상적인 사도의 모습에서는 벗어난 부분도 있지만, 철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 속에서, 신이 사람을 보내 우리들의 이기적인 욕망의 죄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극 중 철호가 자신의 피를 뽑아 임산부를 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임산부가 낳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영화 밖으로 뚫고 나오며 생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관객들이 철호를 마음 속에 품게 된다는 점에서 ‘하나님이 정말 인간을 보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도 ‘사회 참여 영화’와 궤를 같이하는데, 이런 영화에 관심이 있는 편인가.

“7할 정도는 ‘타짜’와 같이 재미있는 영화를 찍지만, 나머지 3할 정도는 사회성 있는 영화도 한다. 바람직한 것 같다. 이런 영화에 주연을 맡으면 부담감이 있지만 그 부담감이 활력소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남한 교계의 반성’이라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남한 교계의 반성을 촉구하는 대사에 관해서는 ‘넣자’ ‘빼자’ 하는 말들이 여러 번 오갔다. 북한 인권을 말하다가 갑자기 한국의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헉’하는 것이다. 감독님의 요구가 있어서 넣었는데, 제가 보기에도 북한 크리스천들이 저렇게 목숨 걸고 신앙을 지키는데, 저처럼 주말에 차 타고 교회 가서 애들 내려 주고 예배시간 딱 맞춰서 들어가는 신앙이랑 비교했을 때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배우들은 촬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나.

“두들겨 맞고 죽는 것이 배우다. 고생하는 것이 배우의 일인데, 영화 개봉되고 관객들의 관심을 받고 ‘고생 많이 했다’는 말 듣는 걸로 극복한다.”

-‘전국노래자랑’ 촬영 중에 이 영화를 시작했는데, 이경규 대표 반응은 어땠나.

“이경규 대표님께 고마운 것이 전국노래자랑 촬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영화를 촬영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는 것이다. 북한 지하교회와 인권 관련 영화라고 하니 흔쾌히 허락했다. 최근에도 자주 연락하는데, 영화 소재를 구했고 판권까지 샀다고 했다. 영화에 대한 열정은 정말 못 말린다. 대단하다. 저도 적극 응원한다.”

-영화를 촬영하고 나서 북한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생겼나.

“예전에는 그냥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외면하고 지워버렸다. 심지어 ‘소말리아나 남아공에서는 막 죽어나가는데 그것보다는 낫겠지’ 하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여가 무서운 것 같다. 영화에 참여하고 나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뉴스에서 장성택 처형, 케네스 배 소식 등을 들으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항상 마음의 부채가 있다.”

-배우로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아직 배우로서의 매력을 갖추기 전인 것 같고, 사실 배우로서의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배우로서 매력적인 궤도에 올라서려면 경륜이 필요하다. 계속 그렇게 경험을 쌓는 중이다. 안성기 선생님과 송강호 선배를 롤모델 삼아 배우의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