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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는 세계관

데이빗 A. 노에벨 | 꿈을이루는사람들 | 608쪽 | 35,000원

데이빗 A. 노에벨(David A. Noebel)의 <충돌하는 세계관(Understanding the Times)>은, 기독교 세계관을 현 시대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여러 세계관들과 비교한다. ‘세계관 교과서’로 불리는 이 책에서 기독교와 비교되는 사상은 이슬람교, 세속적 인본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뉴에이지, 포스트모던주의 등 다섯 가지이다.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지만, 책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기독교와 위 다섯가지 세계관이 구체적인 학문 분야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대상이 되는 학문은 신학을 비롯해, 철학, 윤리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등 총 10개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10개 학문 분야는 “성경적 기독교 관점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적이고 구원하는 질서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한다”.

저자는 이에 앞서 ‘세계관(worldview)이란 무엇인가? 왜 세계관을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세계관은 “우리가 세계와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이고, “우리가 왜 여기 존재하는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옳은 것과 틀린 것에 차이가 있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이란 그저 고등하게 진화된 짐승일 뿐인가?” 등의 질문에 해답을 제공한다. 결국 우리의 세계관은 “삶의 모든 면모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관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을, 세계를, 또한 하나님과 자연과 당신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을 돕는 뼈대(framework)나 지도를 제공하는 어떤 이념·믿음·신념 혹은 가치를 말한다. 여기서 위 10개 학문이 선택된 이유가 나오는데, 제대로 된 ‘세계관’이라면 저 학문 분야들에 관하여 분명하고 특정한 관점을 내포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세계관을 명확히 표현하고자 하는데, 이는 모든 생각과 관념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고후 10:5)’ 하라는 바울의 훈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슬람교를 비롯한 인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뉴에이지, 포스트모던 등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과 기독교 세계관의 진정한 차이를 이해한다면 이들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이 양립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적 기독교가 비논리적·비역사적·비과학적이라 주장하는 이들 세계관들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세계관들의 단점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저자는 학문적인 관점에서 이들의 특징을 잘 소개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주요 세계관을 비교한 도표.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 세계관만이 삶의 ‘모든 면을 보듬고 있는’ 유일하고도 적합한 ‘믿음 체계’이며, 또한 그것이 개인과 가정보다 거대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파괴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뿐 아니라 역사, 과학, 지각, 진정한 세계의 경험에 있어 가장 적합하다.” 책의 목적은 “포괄적인 유신론적 세계관을 입증하여, 무신론에 대한 모든 의문의 여지를 말소하는 것”이다.

책이 소개하는 각 세계관들을 학문, 특히 특정 세계관과 가장 무관해 보이는 ‘법학’을 예로 들어 대입해 보자. ‘기독교 법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고 변화하는 기반 대신 절대적 기반으로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성품에 기반을 두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선하다고 보시며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한다(미 6:8). 반면 이슬람교에는 상세한 법적 전통이 있고, 무슬림 법학자들의 목표는 법의 제정이 아니라 ‘피크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법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의지와 그분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기독교 세계관과 달리, 이슬람교는 ‘알라께서 그분과 그 성품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며 대신 그 법률을 드러내셨다’고 말한다.

세속적 인본주의 법학은 진화론적 신념에 부합하려 자연법을 내면의 지침으로 재규정하지만, 자신들의 세계관과 법 이론 사이의 일관성을 유지하려 온전히 실정법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딜레마에 빠진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법학은 유물론적 사고와 사회의 진화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므로 법의 기초를 실정법에 의존해야 한다. 이들은 ‘정당(공산당)’에 도덕성과 법의 최종 권위를 부여하는데, 반대 입장을 지닌 이들에게 이것은 편파적이다. 개인의 내면성장에 집중하는 뉴에이지 법학은 그 권위가 개인 내에 있으므로, 외부의 규칙인 법학과 모순된다. 포스트모던주의 법학은 모든 정부와 범죄 수사체계에 대한 냉소를 만들어낸다.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이라는 ‘안경’을 통과한 세계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일러스트=그래픽팀

모든 학문들에 대해 각 세계관을 비교 검토한 후, 저자는 결론을 맺는다. “모든 비기독교 세계관들도 어느 정도의 진리는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로부터 나머지 세계관을 구분짓는 명확한 선은 바로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믿는 바이다. 기독교는 우주의 존재와 그에 관련된 만물을 가장 잘 설명한다.” 10개 학문 분야 모두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경쟁자들보다 밝게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경제학을 실천하는 것은 가장 많은 사람들의 번영으로 이어지고, 기독교 사회학은 실행에 옮기면 강력한 가족을 장려하고 널리 퍼진 마약사용·범죄·실업·질병을 예방한다. 기독교 법학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권을 보장하며, 기독교 신학과 철학은 영의 구원(마 16:26)과 정신의 개발을 가져옴과 동시에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렇듯 모든 학문 분야에서 여타 세계관들보다 기독교 세계관이 ‘우월’하므로, 저자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물러서지 말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현재 기독교 세계관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후퇴하고 있는데, 이를 재석권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상을 옹호하는 것은 도덕성의 부활을, 영적 관심의 회복을, 지적 정직함의 부활을, 용기의 회복을 말한다. 이는 가족의 지지가 필요하며, 우리 교회들의 깨어남을 요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지식을 뒷받침하며, 어린 세대들에게 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얼마 전 나온 <세계관의 전쟁(문학동네)>에 ‘응전’하기 위해 예정보다 서둘러 출간됐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 출간을 기념해 가진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주된 이유는 그들 공적 교육이 세속적·비기독교적·무신론적·인본주의적·마르크스주의적·동성애적 등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교회들이 이러한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이질적인 이념들에 철저히 세뇌당해 스스로를 진화중인 짐승이자 사회주의자이며, 윤리적으로 중립적이고 고도로 성적이며, 낙태옹호론자·기후변화주의자·세계정부 옹호론자 등이라 믿으며 학교를 나서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세계관을 한 마디로 “이념의 묶음”이라고 요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