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한특수츄레라 노영옥 대표이사는 충신교회 안수집사로 섬기고 있다.

육상운송 전국종합물류시스템 물류전문업체 (주)대한특수츄레라(www.daehanlogis.com)를 운영하는 노영옥(55·충신교회 안수집사) 대표이사는, 1984년 운송업계와 인연을 맺어 29년 동안 물류업에 종사한 물류전문가다.

그는 1995년 블로오션이었던 중량물 특수화물운송을 전문화해, 당시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던 트레일러 차량을 한데 모아 단일화했으며, 전문노선화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로 대형화물차량에 대한 정부 단속이 심해졌던 당시에는, 그의 말이 곧 커리큘럼이 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물류실무 전문위원, SCM(The Korean Society of Supply Chain Management)학회 이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동국대 식품물류학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또한 2004년에는 물류정책공로 서울시장상, 한국물류대상 특별상(중소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수상), 대한민국 물류대상 매일경제신문회장상, 2006년에는 한국물류대상 건설교통부장관표창, 2012에는 지식경영인 물류부문 대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한국유통학회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노영옥 대표를 만나,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떻게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나?

“어려운 시절 전남 영광 백수에서 6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홀로 연년생인 6형제를 키우는 게 버겁고 힘드셨다. 집안 사정 때문에 어머니는 1년 후에 중학교에 진학해라 하셨지만 (친구들 보기에) 자존심이 상했다. 자존심 강한 소년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상경해 신문배달, 구두공장, 약국 종업원 등 닥치는대로 일했다. 어려웠지만 하나님도 만나고 공부도 더 하게 됐다. 군대에 약학대 나오고 신학대 다니던 선임자가 있었다. 그 친구가 군대 동기 중에 모범이었고 신앙도 모범이 됐다. 그 친구에게 참 감사하다. 지금은 선한교회 장로님으로 헌신하는데 만나면 기분이 좋다. ‘신앙을 갖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생각한다.

제가 살던 동네 영광 백수에는 당시 ‘주먹 좀 쓰는 사람’이 많았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 내 책가방을 들고 다닌 친구가 있을 정도였다(웃음). 고향에서 정식으로 공부했으면 좋은 길에 못 들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오기를 참 잘했다. 하나님께서 훈련을 잘 시켜주셔서 이렇게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훈련 시키셨듯 그런 훈련이 있었지 않나 한다.”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모세, 요셉, 다윗, 욥도 어마어마한 고초와 훈련을 겪고 오만고생을 다 했다. 서러운 일도 많이 당했다. 반지도 깎고 세공공장도 하는 데서 주인 아들이 기계를 갖다 대서 지금도 왼쪽 어깨에 흉터가 있다.

당시에는 산업화시대 공돌이, 공순이가 많았는데 그게 서러움이었다. 공돌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고 야간학교도 다니고 태권도, 유도도 꾸준히 했다. 공부하지 않으면 공장을 들어가더라도 절대 좋은 데를 못 들어가서 학력에 대한 서러움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물류전문가가 됐다.”

-동국대에서 외래교수로 일하고 있으신데,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서게 됐나.

“중학교, 고등학교는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해 마쳤다. 학부는 방송대학 중어중문과를 나오고 중앙대에서 경영학 석사(유통산업 전공), 유통경제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인하대물류전문대학원에서 물류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올해 말경 논문이 완성될 것 같다. 공부하는 것을 쉬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연구나 수업 준비로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을 때가 많다.

동국대에서는 식품산업과에서 식품물류관리론 외래교수를 3~4학년생 대상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 강의 제안이 왔을 때는 불교학교라 가지 않으려고 했다.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캠퍼스를 올라가는데 목탁소리가 나서, ‘내가 올 곳인가’ 싶어 그냥 내려왔다. 충신교회 당시 담임이던 박종순 목사님과 상담 후에 강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총각 때부터 30년 신앙생활한 충신교회에서 메인 3부 찬양대장 2년, 앙상블대장 3년, 5부 벧엘찬양대장, 청년1교구 부장 2년 등을 마친 후에 외래교수로 나가게 됐다. 하나님께서 훈련시킨 다음 강의를 나가게 하신 것 같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는 말씀을 늘 외우고 다닌다. 이 말씀이 큰 힘이 된 것 같다.”

-학생들을 많이 전도한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인가?

“늘 편안하게 이야기하는데……. 교회 오란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전도를 많이 하게 되더라. 청년부 강윤호목사님 말씀이 전도왕이 될 정도로 한 학기가 끝나니 12명이 오더라고 한다. 교회 오면 점심도 사주고 하니 와 봐야 손해 날 것 없어 오는 것 같다. 그리고 권위적이지 않으니 오는 것 같다(웃음). 하다 보니 교수가 학생들 전도하기에 참 좋더라. 공부도 가르치고 좋은 길로 인도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저도 좋다. 캠퍼스 전도사다. 세상에 나가서도 그런 비전을 주시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떻게 하기에 학생들이 교회로 직접 찾아오는가?

“인생은 딱 1번이니 열정적으로 꽃 피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학기가 시작하면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목표가 뭐냐?’, ‘비전을 세우라’고 한다. 비전이나 목표가 없으면 세워주고, 차후에 어떻게 하라고 학기 내내 강조한다.

청년들을 보면 늘 ‘계획을 세워라’, ‘30년,20년,10년 후, 5년 후 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선포하라’고 한다. 말이 믿음에 생명력을 넣어준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를 먹고 사니 자기 자신을 축복하고 미래를 축복하라고 한다. 그래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큰 일을 할 수 있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쉬운 일이 하나 없다. 인내의 원리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게 늘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멀리 가려면 혼자 가는 것보다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친구가 비지니스 파트너도 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강의 듣는 학생 중에도 40명 중 8명이 중국 학생인데, 다른 학생들에게 5~10년 후에는 세계 부자 5명 중 1명은 중국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중국인을 사귀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전한다(웃음).

그리고 가면 갈수록 전문화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혼자 외로울 수 있지만, 정상에 가면 모인다. 그러면 더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실력을 쌓아놓고 준비해 놓으면 도움을 요청하고 찾아온다. 그러면 큰 그늘이 되고 사람이 몰리게 돼 있다.”

-청년들의 멘토가 되셨다.

“청년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멘토가 필요하다. 생활하는 데 경제적 멘토도 필요하고 행정적 멘토도 필요하다. 의학계, 법조계 등 다양한 분야에 멘토가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는 교회 장로님들이 많이 계시니 늘 따라다니며 배운다. 그런데 좋은 것만 배워야지, 목사님, 전도사님, 권사님도 완전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지 신앙생활이 흔들리지 않는다.”

-교수, CEO 등 고위층 전도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다.

“저는 크리스천인 것을 오픈시킨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와 학생들 모임에서 술을 먹이면, 중간에서 교회 다니는 친구가 술을 안 마셔도 되게 막아준다. 지도교수가 술잔을 주니 청년회장 출신이 얼굴이 벌게서 먹고 있다.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막아준다. 인하대에서도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러니 그들도 좋아한다. 

인하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이들과 교수들이 같이 모여 골프를 치면, 사람들이 자기가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를 못한다. 제가 먼저 편안하게 찬양대장이고 안수집사라고 말하면, 그때 다들 교회 다닌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거래처 사장을 만나도 술을 먹이려고 난리지만 결국 음료수 잔이다. 기업체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가도 자연스럽게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인정하고 한다.

그리고 저랑 같이 식사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같이 기도해야 한다. 학생들도 여럿 모아놓고도 같이 기도한다. 늘 자신있게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야 전도가 되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다. 

중앙대에서 내 박사논문 지도교수는 천주교 출신이었다. 그와도 기도하고 같이 식사했다. 지금은 그도 교회에 나온다. 기사들과 모여 식사할 때도 식당에서 기도한다. 불교도나 무신론자라도 내가 하자고 하면 다 한다. 그러면 그들이 기억한다. 우리 회사를 떠나더라도 ‘저 사람 기도 받고 하니 사고가 없다’고…….

크리스천으로서 모범을 보이려고 한다. 나로 인해서 ‘크리스천이 돼 가지고……’ 하는 말을 들을까 봐, 나로 인해 실족케 될까, 먹어도 되지만 구분해서 먹는다.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대하면서도 언어 자체도 조심한다. 그런 달란트가 있는 듯하다. 아는 장관도 교회 행사 있으면 초대하고, 그러니 비서와 같이 오더라. 고위층 그런 분을 교회에 많이 데리고 왔다. 어느 그룹 회장도 나오고 있다.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써주신 것에 감사하다. 늘 행복하고 감사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꼬리 되지 아니하고 최고자들 만나서 교수들, 사장들, 학생들 전도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쓰셔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나 한다. 우리 어머님이 저를 가난하게 키우신 것도 감사하다. 비바람 눈보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어려움 통해서 훈련 시키셔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