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에 항의하는 기독교인들의 항의집회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13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신천지와 대통령 후보’ 해프닝은 정치와 종교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다.

‘표를 위해서는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든다’는 정치인들에게 ‘가장 확실한 표밭’ 중 하나인 종교계는 분명 매력적인 집단이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은 종교계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왔고,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이 훼손되기도 했고, 기독교계가 양편으로 갈라져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책’을 평가하려는 일부 단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특정 후보에게 ‘줄서기’를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각종 교계 단체들이 특정 후보 지지선언에 나서거나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형식으로 선거판에 발을 들이고 있으며, 이는 진보나 보수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물론 적극 참여하는 흐름만 있지는 않았다. 주요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기독교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 목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엄정 중립을 선언해 ‘신선하다’는 평가를 들었고, 홍 대표회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하에 7대 종단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공명정대한 선거가 되도록 중립을 지키며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에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달 교계 원로들이 모여 결성한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회장 손인웅 목사)도 “세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정당을 만들거나 특정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일을 삼갈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목회자 윤리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교회언론회도 14일 논평에서 “선거가 막판으로 갈수록 편가르기와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는데, 종교계는 세속 권력에 함몰되지 말고 우월한 영적 차원에서 기도하고 정치권이 바른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신천지 관련설로 달아올라… 박빙 선거판 흑색선전 난무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천지일보’ 홈페이지에 배너광고를 한 모습.

특히 이번 선거가 종전과 다른 점은 기독교계의 ‘역린(逆鱗)’이라 할 수 있는 ‘이단’ 문제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선거가 유례없는 박빙으로 진행되면서 흑색선전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결국 유력 후보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신천지’ 교주와 밀접한 관계라는 루머가 사진과 함께 돌기 시작한 것.

난데없는 ‘신천지 관련설(說)’은 선거를 1주일 앞둔 가운데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진행자 김용민 씨가 트위터를 통해 이를 퍼트리면서 단숨에 핫이슈로 떠올랐다.

▲김용민씨의 주장이 담긴 트위터. ⓒ인터넷 캡처

‘신천지’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같은날 국회에서 열린 기독교공공정책 민주통합당 기자회견에서 같은 당 김진표 의원은 관련 질문에 “현재 민주통합당은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으며, 문제제기를 할 법률적 지위도 갖고 있지 않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신천지 신도의 선거활동 개입 논란에 대해서는 해당 정당이 스스로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용민 씨는 취재 결과 아직도 민주당 노원갑 당협위원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새누리당 이경재 장로(중앙선대위 기독교대책본부장)가 신천지 행사에서 축사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급속하게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이해찬 전 대표와 같은 당 장로로서 국가조찬기도회 초대 회장을 지낸 김영진 전 의원이 천지일보 관련 행사에서 축사하는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 상황. 물론 천지일보측은 이와 관련해 “신천지 신문이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그러하다 해서 기독교인들이 이 두 정치인의 축사를 이해하고 넘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천지일보 홈페이지에는 문재인 후보의 선거 광고배너도 노출시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신천지와 연관짓는 허위사실이 확산되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며 “민주통합당이 공당으로서의 체통과 체면을 다 포기하고 기독교에서 이단 판정을 받은 신천지와 박근혜 후보를 연관시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경재 장로도 “본인의 개인적인 과거 일을 들춰 박근혜 후보와 신천지를 연결하려는 행위는 정통 기독교단과 새누리당을 이간시키려는 악의적 행위로, 성숙한 정통 기독교단과 1천만 성도들은 이같은 흑색선전에 결코 현혹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고 발표했다.

결국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독교인들이 경계하는 신천지의 ‘이단성’을 정치에 활용해 기독교인들의 표를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회법과 이단관련 전문지 로앤처치는 이에 대해 “이단조작이 일부 이단감별사들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행해지고 있다”고 일갈했다.

한기총도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와 신천지가 연관이 있다는 루머가 이미 6개월 전 입수돼 여러 경로를 통한 자체 사실관계를 조사한 결과,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고 그러한 루머가 사실무근임을 확인했다”며 “진정으로 대한민국 5년의 미래를 이끌어가고자 한다면 실천가능한 공약과 정책으로 선거를 해야 함에도, 여전히 거짓과 비방으로 상대 허물기만을 고집하는 자들에게는 조금의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이단까지 끌어들이는 정치권 앞에… 기독 유권자의 자세는

기독인 유권자들은 이러한 흑색선전과 유언비어 속에서 어떻게 성경적인 세계관에 좀더 가까운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무엇보다 후보 개인의 ‘종교’가 아니라 ‘정책’으로 판단하고, 들려오는 풍문이나 인터넷 또는 SNS에서 돌아다니는 ‘값싼’ 정보가 아니라 권위있고 균형있는 기독 매체 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줄 알아야 한다.

기독 시민단체들이 제공하는 각종 정보들도 참고할 만하다. 성경적 가치관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현명하게 투표에 임할 것을 호소하고자 결성된 기독교유권자연맹(상임대표 김규호 목사)은 최근 각 후보의 공약과 소속 정당의 입장을 검토한 후 한 후보를 선정해 발표했다. 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똑똑한 투표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이나 북한인권단체들도 각 후보의 공약을 비교 발표한 바 있다.

무조건 정치를 배척하려는 자세도 지양해야 한다. 지난달 한 학술대회에서 종교사회학자 이원규 교수(감신대)는 “정치가 만능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바르게 세우고 이끌어 국민들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할 책임이 정치에 있다”며 “종교계가 정치가 그러한 역할을 하도록 이끌 뿐 아니라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예언자적 역할과 사제적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