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23장 강박증의 유형과 치료적 대응(6)

강박증은 행동과 생각으로 대별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증상도 있다. 행동을 중심으로 하는 것인지, 생각을 중심으로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행동과 생각이 혼재하여 나타나는 증상이기 쉽다. 더욱이 이런 증상은 대개 강박증으로 진단을 내리기 상당히 어려운 점에서 특별한 주의력이 요구된다. 여기서는 그 특이한 강박증을 다루고자 한다.

1. 무질서적 강박증

무질서적 강박증은 강박증의 고정된 특성에서 벗어나는 유형이다. 강박증의 일반적 증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강박증의 행동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겹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무질서적 강박증은 매우 특이한 모습을 갖고 있는데, 강박증이 대체로 질서와 정리정돈을 중요시하는 것에 비해, 그야말로 전혀 무질서한 특성을 보인다. 이런 그들도 타인의 요구에 응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타인들의 요구에 순응해야 할 필요성과 자신을 주장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강렬한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1) 증상의 특징

무질서적 강박증은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증상을 가진 환자는 의무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커다란 압박을 받으면서,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믿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증상이 심한 경우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면서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운 충동이나 사고로 이끌려가게 된다.

무질서적 강박증은 밀론(T. Milon)이 제시한 강박증 유형 중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때로 흔들리는 동요적 상태로 지속되면 자기처벌적 성향을 보인다.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정서 상태를 원상 복귀시키기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다루기 힘든 생각과 불편한 충동의 분출은 이들에게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봉착한 느낌을 줄 것이다. 이 시기 가장 문제되는 것은 내면의 충동과 욕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신이 자닌 도덕적 가치에 압도당하고, 그러한 유혹 속에 자신이 이끌려가고 있다고 인식하는 점이다.

무질서적 강박증은 양면적인 증상을 갖는다. 일반적인 강박증의 증상을 갖는가 하면 전혀 강박증답지 않은 증상도 있다. 강박증이 대개 엄격하고 철저한 면을 갖는데 비해, 그들은 헝클어진 모습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완벽을 추구하다가 일을 시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유부단함을 보이거나, 철저하게 정리정돈을 하다 전혀 정리를 포기하고 내버려두거나, 청결을 위주로 하다가 전혀 치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무질서적 강박증은 어떤 것을 추구하다 한계점에 이르면 그 반대적 현상을 보이는 경우이다.

게다가 무질서적 강박증은 이러한 양가성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외현상 심리적인 통제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심층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과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불확실감이 짙게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무엇에 대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요구받으면 정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상당한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고, 시간을 지연시키며 고통스러워하고, 매우 소심하고 조심스러워져 결정을 미루고 자기 내면의 이러한 혼돈 상태를 위해서 복잡한 생각 속에 빠지기도 한다.

2) 심리적 이해

무질서적 강박증은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생각이 극히 자연스러운 편이다. 정상인의 90% 이상이 이러한 원치 않는 생각들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한편 이러한 생각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례적으로 통제하려는 노력은 보편적인 현상으로서의 침투적 사고를 악화시키는 데 중요하게 기능한다. 이런 현상을 심리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첫째로 극도의 위기감이 지배적이다. 무질서적 강박증은 혼돈적 강박증 중 하나이다. 이들은 엄격하고 철저하게 행동하는 강박증의 특성이 일정 부분 사라진 형태다. 물론 강박적 특성은 처음부터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과정으로 변형된 형태다. 처음에는 어떤 강박증 이상으로 철저하고 엄격한 특성들이 나타났으나, 이런 증상이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치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변화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매우 질서적인 것들이 무질서해진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는 정리정돈이 되어야 하고, 청결하게 되어야 할 상태가 아무데나 널려 있고 불결하기 그지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이제 어쩔 수 없는 힘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들은 자신이 타락하고 있고 악마와 같은 불가항력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환경은 바로 자기 자신이 수용하기 어려운 충동과 욕구를 지닌 악마처럼 여겨지고 있다.

특히 동물을 좋아하는 강박증의 경우 처음에는 애완용 개나 고양이를 한 마리 정도 기르며 청결을 유지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수십 마리를 기르게 되어 청소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 집안이 불결한 곳으로 변해버린다. 이들에게 왜 치우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자신의 엄격함이 혼돈되어 얽혀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창고를 열어보면 정리를 해야 할 물건들로 가득하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집안은 엉망이므로 손님들을 초대할 수 없게 된다.

둘째로 통제 불가능한 상태이다. 무질서는 통제 불능의 상태다. 이들은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해야 함에도 한쪽으로 치우치고 말았다. 이런 상태다 보니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의 통제 불능은 물건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다. 시간을 내 정리하면 간단히 할 수 있는데도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 차츰차츰 하리라는 생각으로 미루게 된다. 지난날 자신을 잘 통제하였던 것과는 달리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언젠가는 정리해야만 한다는 마음을 가진 채 세월만 흘러간다.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철저하게 목표를 세우고 행동하던 사람이 전혀 행동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기 모습이 점차 통제 불가능하게 느껴져 어떤 일을 저지를 것 같은 긴장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들은 극히 작고 세세한 사항들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자기통제를 위한 필사적인 싸움을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나마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내면의 생각, 충동 등 자신에게 속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자기와의 싸움에 몰두하며 이를 통해 통제감을 획득하려 시도할 것이다.

셋째로 양가감정에 지배된다. 무질서는 질서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이들은 질서적이어야 함을 인식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심리를 갖는다. 이들은 반드시 정상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마음의 원함을 갖지만 행동으로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자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점차 더욱 부담감을 갖고 살아간다. 숙제를 받아놓고 놀고 있는 아이들처럼 마음으로 걱정하면서도 시도하지 않는 현상과 같다. 이런 문제는 일단 숙제를 시작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숙제를 시작하면 그 많은 염려와 걱정이 일단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행동하지 못하면서 생각만 하다 보니 거의 신경증적으로만 되어 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마치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과 같다. 해결을 위해 시도해야 할 과정이나 절차들이 꼬이면서 더욱 해결과는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강박증에서도 무질서적 강박증은 가장 어려운 경우이지만, 치료에 장점도 있다. 환자가 포기하는 상태에 도달해 치료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도와준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다만 그들의 심리적 문제를 잘 설득하는 것이 조건이다. 현상적으로는 거의 포기 상태이면서도 아직 심리적으로 자신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방어벽이나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3) 치료적 대응

무질서적 강박증은 일종의 혼란적 증상이다. 그러기에 강박증상의 이런저런 모습을 갖게 된다. 때로 외현적인가 하면, 내면의 심리 증상이 혼재되는 경우이기도 하다. 물론 심리적 강박증의 생각들에서도 씻기와 같은 외현적인 강박행동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떨쳐버릴 수 없는 성적인 생각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경우, 이로 인한 죄책감과 불안감을 씻어내기 위해 손을 씻거나 하루에 수차례 샤워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도 강박증 환자들의 마술적 사고가 작용하고 있는 점에서 다음 몇 가지에 치료적 중점을 두고자 한다.

첫째로 긴장이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들은 외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워 보여도 내면으로는 긴장하고 있다. 이런 특성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고 의무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커다란 압박을 받으면서,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믿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심한 경우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며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운 충동이나 사고로 이끌려가게 된다. 이런 특징은 밀론이 제시한 강박증 유형 중 가장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이다.

이들은 때로 이처럼 흔들리는 동요 상태가 지속되면 자기처벌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다름 아닌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정서 상태를 원상으로 복귀시키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다루기 힘든 생각과 불편한 충동의 분출은 이들에게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봉착한 느낌을 줄 것이다. 이 시기 가장 문제되는 것은 내면의 충동과 욕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신이 자닌 도덕적 가치를 압도당하고, 그러한 유혹 속에 자신이 이끌려가고 있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로 양가감정을 이해시켜야 한다. 무질서적 강박증은 이미 이중적 심리를 갖고 있다. 한쪽으로는 해결을 원하면서도 한쪽으로는 포기하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치료자가 쉽게 나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상당한 설득이 요구되는데,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성 있고 유익한 일인지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치료자의 제안에 동의할 수 있고 순순히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치료자는 이런 경우에도 서두르는 것을 삼가야 한다. 치료자가 서두르면 이들은 불안감을 갖는다. 강박증은 우울적 성향도 갖지만, 일종의 편집적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강박증에서 편집적 경향은 치료자가 갑작스럽게 진행하려는 데서 자극되기 쉽고 그렇게 유발되는 편이다. 이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심리적 분열의 경계에 서 있다는 급박한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경우, 정신병 증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이러한 강박 성향을 전조로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내면의 분노감을 표현하지 못한 채 씁쓸히 되씹어 삼키고,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며 자기 상태에 대한 혼란감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때때로 이런 혼란된 강박증은 강박증상과 정신분열증 등의 혼란스러운 상태와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들이 만약 강박증상에만 치중되어 있다면, 그 혼돈의 핵심은 내면의 욕구 및 충동에 대한 심한 양가감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셋째로 일단 행동을 시작하라. 행동의 시작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즉 상황의 해결을 위해 적절히 대처하는 행위를 시도한다. 강박증은 유형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행동의 대처는 그대로 통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다. 행동은 일단 환경을 통제하는 방법이면서 심리적인 효과를 거두게 된다. 어떤 강박증 유형이든 특유의 의례화된 대처행동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강박사고에 대한 대처 통제행동이 겉으로 드러나는지 그렇지 않은지 차이가 있지만, 개인의 과도한 통제행위가 나타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아이를 갑자기 칼로 찌를 것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어머니가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건강하게 뛰어노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 생각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이것이 하나의 강박행위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통제는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대개 생각을 통제할 것인가, 환경을 통제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순수 강박사고나 내적 강박행위에서 등장하는 강박사고의 내용은 주로 가혹한 자기 비판적 생각,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미래의 불쾌한 일에 대한 생각, 누군가를 해치거나 죽이는 생각, 비도덕적이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생각, 갑자기 음탕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외치는 생각, 매우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는 생각, 범죄적인 충동행위에 대한 생각 등이다. 이런 현상은 있는 자리에서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환경을 바꾸어 생각을 통제하는 방법이 더 나을 것이다.

2. 혼란적 강박증

혼란적 강박증은 행동과 심리 증상이 혼재되어 있다. 행동에 외부적 강박증상이 나타나면서도 심리적 강박증에도 시달리는 경우다. 어떤 경우 반복행동이나 확인행동, 정리정돈이나 수집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외부적 행동은 여지없이 강박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생각 속 강박증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행동하지 않으면서 심리적으로만 괴로워하는데, 이런 경우 마치 정신분열의 해리증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해리증상은 정신이 갈라지는 증상으로, 어떤 때는 정상적이다가 어떤 때는 분열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이다. 이런 것을 정신이 헷갈린다거나 왔다갔다 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때는 외부적인 행동적인 증상을 보이다 어떤 때는 내면적인 심리 증상만을 나타내는 경우이다.

1) 증상의 특징

혼란적 강박증은 외부 행동과 내부 심리증상이 겹쳐서 나타난다. 어떤 때는 강박증상인 외현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이런 경우 우유부단함을 보인다든가, 자주 씻으려고 하거나 자주 확인행동을 한다. 그런가 하면 물건을 수집하려는 경우도 있고, 그것을 정리하거나 청결하게 하려는 행동도 보인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전혀 그런 측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강박증이 아닌 것처럼 보이거나 생각될 것이다. 그러다 심리적 강박증만을 되풀이 하는 경우도 이때는 심리적 움직임이 강박적으로 되는 경우이다. 이런 것은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행동하는 현상이다. 이들의 증상은 마치 일정 기간 외현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심리적인 강박증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한 주간 동안 외현적 강박증을, 또 한 주간은 심리적 강박증을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심리적인 강박증상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특정한 심적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강박사고에 대처한다.

이들의 증상은 씻고 확인하고 반복하는 행위가 겉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강박행위가 내면에서 지속되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강박증 유형과 유사한 점이 많다. 행위 대신 강박사고에 대항하는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는 강박행위나 내적인 강박행위 모두 불편감을 감소시키고, 안정감을 되찾기 위한 의도로 수행되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동일한 강박증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 강박증은 대개 과도한 양심불안과 관련되는 편이다.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행동한 것과 동일하게 양심의 가책을 경험하고 있다.

2) 심리적 이해

혼란적 강박증은 행동과 심리 측면으로 구분해야 한다. 이들은 어떤 때는 행동에 집중하고, 어떤 때는 심리에 집중하기도 한다. 행동과 심리는 심리학에서 하나의 문제로 보고 있지만, 여기서는 그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다루고자 한다.

첫째로 행동이 심리를 드러내는 경우이다. 외현적 강박증은 내면에 숨기고 있는 심리적 강박증을 나타낸다. 행동은 내면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행동이 반드시 내면의 심리를 드러내는 경우는 아니다. 특히 행동에 치중된 강박증 환자들에게서 더욱 그렇다. 이들의 강박행동은 거의 습관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동은 단순하면서도 집요하게 실행된 삶의 부분이다. 어떤 경우 특이한 행동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칼 융(C. G. Jung)의 여성 환자의 예를 들 수 있다.

칼 융의 여성 환자는 정신병원에서 40년을 살다 죽었다. 그녀는 입원했던 오랜 세월 계속 구두를 깁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환자의 병인을 밝히지 못했다. 그 환자의 기록카드에는 그런 단순한 행동을 수십 년 동안 반복하고 있다고만 적혀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융은 죽은 여환자의 오라버니를 만나고 그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가 젊었을 때 구두수선공을 사랑했지만,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그녀는 계속 구두를 깁는 흉내를 내게 되었다. 여환자의 행동은 사건과 관련은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 여환자의 심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즉 행동의 반복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행동이지만, 지금도 그녀의 심리를 대변한다든가 지금 심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의 행동은 이미 오랫동안 자신도 모르게 행동해온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신이 충격을 받던 그 시점에서 그 행동은 반복되는 일이 되었다.

둘째로 생각이 이상한 행동을 유발시킨다. 강박사고는 또 다른 이상한 행동을 유발시킨다. 이는 행동에 앞서 생각이 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다. 즉 오염이 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보다는 오염된 상태를 정화하려는 노력이 강박적 씻기 행동이다. 실수나 사고에 대한 의심 자체를 떨쳐버리기보다는 원하는 상태로 되돌리고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이는 심리적 강박증에서 자신의 심리적인 사고 그 자체를 떨쳐버리거나 억제하기 위해서 과도한 통제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강박증은 그 환자의 강박사고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그 증상의 강박적 사고는 그대로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강박행동이 어떠한 형태를 나타내는가의 문제는 그 환자가 어떠한 강박사고를 지녔는가와 관련된다. 행동은 사고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유리조각이 떨어진 것 같은 의심이 드는 환자는 직접 쓸고 닦고 확인해야 하며, 신성모독적 생각이 떠오르는 환자는 속으로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내적인 싸움을 하거나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처행동인 것 같다.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은 그 증상의 가치관, 윤리의식, 성격, 생활양식 모두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내면세계의 복잡한 반응이 아닐까.

셋째로 생각이 행동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낸다. 순수한 강박적 사고와 심리적 강박증은 일정 부분 동일한 측면이 있다. 이런 문제는 강박증의 특이한 면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행동하지 않고서도 행동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강박적 행동의 대상이 되는 생각은 앞에서 제시했던 외현적 강박행동을 수반하는 강박사고에 비하여 생각 자체가 매우 고통스럽게 경험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씻고 확인하고 정리하고 수집하는 식의 강박행동을 일으키는 강박사고들은 그 내용 자체가 혐오스럽다기보다는 주로 그 생각이 유발된 외적인 작은 상황 자체가 보다 불편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염된 것 같다, 실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뚤어지고 흐트러졌다’와 같은 강박사고들은 그러한 자극 상황에 대한 일종의 해석이다. 이런 생각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그다지 혐오스럽게 경험되는 것들은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 순수하게 심리적인 강박증에서는 ‘생각 자체’가 매우 혐오스럽게 경험되며, 통제행동 역시 생각 자체를 떨쳐버리거나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반면 외현적 강박행동을 수반하는 강박증 유형에서는 비교적 개인의 과도한 통제 노력이 생각 자체에 주어지기보다, 관련된 상황을 통제하고 안전하게 복구하고 예방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3) 치료적 대응

혼란적 강박증은 어디에서 유발되는가? 왜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유지되고 더욱 악화되는 원인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과 연구 근거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 갑작스럽게 떠올라 마음을 흐려놓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여기에는 성적이거나 공격적인 내용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성적인 것과 공격성은 프로이트가 제안한 두 가지 근본적인 인간의 무의식적 충동이다. 현재 정신분석의 무의식적 충동에 대한 이론은 이해하기 어렵고 논란의 여지도 많다. 그러므로 다음 3가지를 중요시하여 치료할 수 있다.

첫째로 행동의 습관을 파악해야 한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행동하는 습관적인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행동은 내면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행동이 반드시 내면의 심리를 드러내는 경우는 아니다. 이들의 강박적 행동은 거의 습관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동은 단순하면서도 집요하게 실행되어온 삶의 부분이다. 어떤 경우 특이한 행동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전술한 칼 융의 여환자는 그 좋은 예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구두를 깁는 행동을 반복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행동은 이미 오랫동안 자신도 모르게 행동해온 것으로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반복적인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고 별다른 의미 없이 행동하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의미 없이 행동하는 것을 통하여 무의례적으로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그다지 의례적인 것이 아니므로 적절히 개선내지는 수정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그렇게 되면 행동의 수정은 심리를 변화시키는 결과도 있게 된다. 실제로 혼란적 강박증의 특징 중에서 이런 문제를 주목한다는 점은 새로운 치료의 전환이 될 것이다. 이는 그 행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행동과 의식의 관계, 행동과 심리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신경증 증상을 주목해야 한다. 혼란적 강박증은 신경증적 면이 있다. 순전히 심리적인 생각을 시도하거나 행동적인 강박증을 시도할 경우다. 심리적인 강박증이 나타날 경우에 더욱 그렇다. 어떤 대학생은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하루에도 몇 시간씩 뇌리에서 논쟁을 반복한다. 이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한 생각과 논리의 꼬리가 두세 시간을 물고 늘어졌다. 간신히 기독교가 사악한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불안감이 가라지고 안도감을 찾게 되지만,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목소리가 고개를 쳐들어 끝도 없는 내적인 싸움이 재개되었다. 멈추고 싶은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현상이 바로 신경증이다.

신경증은 잘못되는 생각이라고 깨달았지만 그것을 멈추지 못해 심리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이런 생각을 멈출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원치 않는 성적인 내용의 생각, 공격적이거나 난폭한 내용의 생각, 신성모독적이거나 도덕 관념에 배치되는 생각 등이 주로 대상이 된다. 이것들은 공통적으로 생각 자체가 매우 혐오스러우며,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내용의 생각들이 많다. 또 죄책감을 일으키는 도덕관념에 위배되는 내용이 많다. 보통 이처럼 침투해 들어오는 생각들이 성가신 강박사고로 발전하는 경우는 그 내용이 그 증상의 가치나 신념체계와 상반된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역설적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혼란적 강박증은 생각에 집중되면 순수한 강박사고 형태를 띤다. 즉 이들은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생각되는 현상이다. 성적인 공상을 밥 먹듯 즐기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해로운 일을 하는 것은 큰 죄악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남자에게 주변의 가까운 여자와 원치 않는 성적인 관계를 갖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 하며 머리를 흔들었지만, 그다지 그 생각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별로 이 생각에 신경이 쓰이지도 않고 이 생각을 반드시 떨쳐버려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문득 앞사람의 뒤통수를 구둣발로 찍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우욱’ 머리가 아찔해지면서 현기증을 느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하면서 생각을 떨쳐버리려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꾸 신경을 쓰면서, 이 생각이 또 떠오르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을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사람을 쳐다볼 때마다 의식되고 신경이 쓰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염려하고 있으면 틈새를 놓치지 않고 바로 앞사람을 가격하는 생각이 또 떠오른다. 점점 이 생각으로 몹시 신경이 쓰이고 죄책감마저 든다. 이 생각을 떨쳐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생각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졌다.

3. 결론: 성장 과정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강박증에 안 빠져

지금까지 우리는 무질서적 강박증과 혼란적 강박증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무질서적 강박증에서는 강박증의 고정된 특성에서 벗어나는 유형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이는 강박증의 일반 증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강박증의 행동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겹쳐는 혼재적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유형이 해당되었다. 그런 점에서 무질서적 강박증은 강박증에서 매우 특이한 모습을 갖고 있었는데, 강박증이 대체로 질서적이고 정리정돈을 중요시하는 것과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타인들의 요구에 순응해야 할 필요성과 자신을 주장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 강렬한 갈등을 경험하는 특징이 있었다. 여기에는 부차적으로 증상의 특징, 심리적 이해, 그리고 치료적 대응이 함께 다루어졌다.

혼란적 강박증에서는 행동적인 증상과 심리적인 증상이 함께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의 행동에는 외부적 강박증상이 나타나면서도 심리적인 강박증에도 시달리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반복적 행동이나 확인행동, 정리정돈이나 수집증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런 외부적 행동으로는 여지없이 강박증으로 볼 수 있지만 어떤 때는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생각 속의 강박증으로 괴로워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행동하지 않으면서 심리적으로만 괴로워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마치 정신분열의 해리증상이 나타나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었다. 해리증상은 정신이 갈라지는 증상으로 어떤 때는 정상적이다가 어떤 때는 분열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증상의 특징, 심리적 이해, 그리고 치료적 대응이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우리는 강박증상의 12가지 유형을 다루었다. 이렇게도 다양한 강박증은 그대로 인간의 경직된 정신의 문제를 통하여 드러날 수 있는 유형을 보여준다. 이런 유형에 따라 각기 증상의 특징, 심리적 이해, 그리고 치료적 대응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강박증의 원인과 치료는 한 가지일 정도로 간단할지 모른다. 그것은 어떤 유형이든 성장과정에서 발생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에서이다. 그것은 성장 과정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이다. 그들이 만약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성장했다면 강박증과는 거리가 먼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고통이 연속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의 문제를 알고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사랑한다면, 열등감이 사라지고 그들의 무기처럼 내보이는 지배력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누가 보기에도 부드럽고 유연한 사람이 될 것이다.